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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Jul 03. 2020

나의 첫 설거지

난생 처음 남의 집에서 설거지를 했다

아줌마가 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남의 집에서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다. 남의 살림에 손대는 게 아닌 것 같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는 설거지 같은 거 티도 안 나는데 하기 싫은 마음이었지 싶다. 그래서 손님으로 가게 되면 늘 주방에서 멀찍이 앉아 있곤 했다. 그릇을 내 오거나 상을 치우는 일은 해도, 설거지는 내 몫이 아니라고 여겼다.


아이의 어린이집 엄마들 중 하나인 S언니는, 우리 집에 오면 꼭 설거지를 해주고 간다. 한 번은 밥 잘 얻어먹고 해 주고 가는 설거지라서 '고맙다' 얘기하고 말았는데, 다른 한 번은 밥도 안 먹고 그냥 잠깐 놀러 와서는 이틀을 방치해둔 지저분한 설거지를 모두 해주는 거다. 부끄러운 마음에 '괜찮아, 제발 하지 마요.'라고 얘기했지만, '나도 설거지 이렇게 두고, 무기력하게 있는 날 있어.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라며 그 많은 설거지를 냄비까지 싹 가져다 치워주고 가는 언니였다. 부끄러운 마음은 잠깐이고, 너무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뤘던 설거지를 싹 해주고 가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어제는 아이의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가볍게 점심거리를 사들고 방문한 자리였다. 갑자기 찾아간 우리를 반기며, J언니는 마당에 튜브 수영장을 준비해주었다. 그때 선뜻 설거지를 할 마음이 생겼다. '수영장까지 준비해주는 언니에게 설거지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싶었다. 그렇게 나이 마흔에 남의 집에서 처음으로 설거지를 해봤다. 무척 어색하고 무안했지만, 다행히 자연스러웠다. 양도 얼마 안 되는 설거지에 J언니도 반가운 기색이다. 다행히 날 말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받는 게 싫었던 마음처럼, 이렇게 사소한 무언가를 해주는 것도 참 어려웠지 싶다. 생색나고 티 나는 뭔가를 사다 주는 건 잘하면서도, 설거지 한 번이 그렇게 어려웠던 건 모자란 나의 자존심이었다. 겉보기에 그럴싸한 것만 하고 싶은 어린 애 같은 생각이었다.


J언니가 싸준 김치와 갑오징어 부침개를 잔뜩 싸 들고 집으로 온다. 저녁에 김치와 부침개를 먹으며 나의 첫 설거지를 생각한다. 갑오징어의 무게와 설거지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며 혼자 배시시 웃는 날이다. 조금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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