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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Jul 03. 2020

동정받기 싫은 마음

동정과 애정에 대한 구분

차를 타고 남편과 집에 돌아오는데, 남편이 한마디 한다. 


"당신 요즘 성격이 많이 좋아졌어."

"응? 회사를 안 나가서 좋아진 건가?"

"아니, 예전엔 누가 이유 없이 잘해주면, 예민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넙죽넙죽 잘 받아서."



누군가 이유 없이 잘해주면, 참 불편했다. 분명 속으로 다른 생각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얻을만한 게 있으니 잘해주겠지 싶어서 도리어 그 사람을 멀리하곤 했다. 한 번은 같이 여행을 함께 했던 승객이 인솔자에 대한 팁으로 나에게 100불을 주었는데, 그 100불이 불편해서 여행 내내 그 승객과 거리를 두었다. 좋은 여행을 하려고 선뜻 100불을 주었던 그분 입장에서는 내가 얼마나 못마땅했을까.  


이사한 동네에는 오지랖이 아주 넓은 이웃이 있는데, 동네 아이들을 봐주기도 하고 모임에서 먹을 것을 준비해주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창문이 열려있기도 하면 몰래 와서 창문을 닫아주기도 하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이사 후 몇 달은 '그 사람 분명히 꿍꿍이가 있을 거야'라며 그들을 멀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오해는 자연스럽게 풀렸지만, 내가 거리를 두는만큼 그들은 내가 참 불편했으리라.


누군가에게 벽을 허물고 살갑게 대하기까지 나는 참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속으로 수없이 계산하고 오해하면서 그들의 선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부분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벽을 허물긴 하지만, 오해 속에서 좋은 사람을 놓치고 그 만남을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처가 많았던 회사 생활을 겪은 후에 생긴 습성이라 그때 받은 상처로 인해 생겼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이랬던 내가 조금은 변했다니, 좋은데? 




지난주 집에 다녀갔던 친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자로 30만 원을 보냈다.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집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돈을 보내는 사람들의 얘기는 한결같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 핑계를 댄다. 내가 무안할까 봐 그런다. 


"형부가 보내라고 했어."

"괜찮은데, 고마워. 잘 쓸게."



언니네도 살림이 넉넉해진지 몇 년 되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어려울 때 선뜻 돈으로 도운 적이 없었는데. 일말의 자존심이 한 가락 나오듯 감정이 울컥했다가, 곧 생각한다. '30만 원 정도야 뭐 어때. 나도 나중에 언니를 도울 날이 오겠지.' 그래, 내가 변했구나. 며칠 전에는 친정에서 전화가 왔다. 역시 다른 사람 핑계를 대는 친정 엄마다.


"아빠가 너한테 200만 원 보내라고 해서 보냈어." 

"응? 그걸 왜 보냈어."

"너 힘들 것 같다고 아빠가 보내래."

"괜찮아, 엄마. 나 200만 원 없어도 잘 살아." 

"아빠가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기분이 착잡했다. 불혹의 나이에 부모님에게 생활비까지 받아야 하나. 코로나 때문에 벌어놓은 돈을 까먹으며, 대출금과 국가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부모님에게 손 벌릴 정도는 아니었다. 또다시 일말의 자존심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곧 사야 하는 것들이 생각난다. 세탁기도 먼지가 계속 묻어 나와 새로 사야 하는 형편이었고, 손님으로 초대받아 갔던 집의 샌드위치 메이커가 너무 탐이 나던 참이었다. 기쁜 맘으로 샌드위치 메이커를 주문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정말 고맙다고, 잘 지내고 있으니 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화를 드렸다. 나에게 200만 원을 보낸 아빠의 홀가분한 마음이 전화로 전해졌다. 


 그래, 이건 애정이구나. 그들의 마음을 '동정'이라 생각했던 나였다. 사람들의 애정을 동정으로 여기며, 나 그렇게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 버티는 내가 보였다. 결국은 내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거구나. 


아빠만큼 홀가분해진 마음이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으니, 그들의 애정도 이렇게 홀가분하게 받아들여지는구나. 사랑받아 기쁜 나날이다. 어려운 만큼 누리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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