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부장님 앞자리에 배정받았다. 처음 그 자리에 앉았을 때는 그 자리가 주는 무게감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내가 속한 팀은 15명 정도의 디자이너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중 신입사원은 총 다섯 명이었다. 다섯 명의 신입사원 중 나만 유일한 여자였는데, 아마도 그 점이 나를 그 자리 고정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부장님 앞에 스물다섯 살 풋풋한 신입사원이 꽃처럼 앉아있는 모습을 그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꽃보다는 풋내 나는 잡초에 가까웠다.
내가 속한 팀은 원래 없었던 팀이 입사 즈음 신설된 것이었고, 부장님 또한 다른 부서에 계셨던 분이었다. 부장님이 어떤 분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자리 배정에 고려될 리 만무했다.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지금 내 남편보다 조금 젊은 부장님은 까마득한 윗사람이었다. 부장님 앞자리가 주는 위압감과 무게감은 어찌나 컸는지 간식 하나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중간에 개별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어 별실로 출근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출근이 꿀 같았다. 하지만 두어 달 만에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부장님 앞자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부장님 앞으로 들어오는 전화를 놓치지 않고 잘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내가 받은 전화를 부장님 전화기로 돌려야 했는데 전화를 돌리다 실수로 중간에 통화가 종료되고 말았다. 부장님은 장난 섞인 소리로 ‘그 전화가 엄청 중요한 전화였으면 어떡해?’하며 다음부터 실수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무척 창피해서 부장님 앞자리에 앉았던 1년 내내 나는 전화기를 굳게 사수했다.
그리고 1년 후 정말 꽃 같은 여자 직원이 다른 팀에서 우리 팀으로 이동해왔다. 드디어 무거웠던 나의 짐을 내려놓고 부장님과 아주 멀리 떨어진 자리로 배정을 받았다. 1년 동안 고생해서 받은 상이었지 싶다. 물론, 그 자리에서도 막내 사원으로서 가까운 자리 선배들의 전화를 모두 받아서 연결해야 했지만, 그 무게는 부장님의 전화에 비하면 깃털처럼 가벼웠다.
일 년 동안 부장님 전화받느라 힘들었다고 얘기했을 때, 그 꽃 같은 여자 직원이 톡 쏘아붙였던 게 생각난다. 다들 하는 건데 그게 뭐 그렇게 특별나게 힘드냐고. 생각해보니 그 직원이 나를 싫어했던 그 사람이다. 결국 그녀도 부장님 앞자리가 나만큼 싫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