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숲이 될 때까지

by 코뿔소

산불은 대개 4~5년을 주기로 계절처럼 피할 수 없이 찾아옵니다. 모든 것을 지우지만, 그 잿더미 위로 다시 새순이 틔는 것을 봅니다. 학교도 그랬습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주기로 입학과 졸업을 반복했죠. 제 마음에도 그만한 간격을 두고 불이 났습니다. 불은 오래된 생각을 태우고 졸업장을 줍니다.


10대의 저는『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의 말이 머리에 박혀있었습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이야.” 꽤 오래 방황했고, 꽤 오래 그림을 그렸습니다. 시를 쓰기도 했고 사랑에 목매기도 했습니다. 우스운 반항도 즐겼습니다. 고등학교 앞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며 얕은 철학과 시사 상식을 늘어놓곤 했습니다. 세간에 이슈가 터지면 제 의견을 물어보러 오는 친구들의 관심이 좋았습니다.


대학에 들어서며,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용문이 아니라 원전을 읽었고, 수능 경제가 아닌 현실 경제를 들여다보았죠. 해상도가 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어린 시절의 제가 고작 수십 픽셀로 이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려 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역으로 얕은 지식을 들킨 친구들을 논리로 몰아가는 악취미도 있었습니다. 어느 교수님은 “내공이 남다르다”라고 평해주셨지만, 저는 그 내공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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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했죠


세상은 졸업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복잡해졌습니다. 사업을 시작해 성공하고 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접어봤습니다. 회사도 다녀봤습니다. 논리나 이론이 닿지 않는 영역이 많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겪고 나니 그 간극은 충격이었습니다. 완벽한 기획서가 ‘두껍지 않다’는 이유로 탈락했고, 술자리 농담 하나가 수십억 단위 프로젝트를 따오기도 했죠. 철학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엔, 당장 풀어야 할 일들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복잡했습니다. 4년 동안, 저는 하루도 쉼 없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효율을 위해 요일별 옷을 정해놓고, 노래들을 시간에 강의를 듣고, 30분 단위의 플래너를 품고 살았습니다. “맡으면 절대 대충 하는 일이 없다”는 평으로 버텨온 시간입니다.



그리고 요즘, 제 마음에 다시 산불이 났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히 천천히 번지는 불이었습니다. 그동안 일을 사랑한다고 믿어왔지만, 사실은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기 겁났다는 걸 깨닫습니다. 일 앞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 바깥에서는 좋아하는 노래 하나 없는 흐릿한 사람이니까요. 아무도 제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 적 없는데 어디서 시작된 걸까요. 그 많은 평가들은 무엇을 위해 가슴에 모아 온 걸까요.


공허함은 생각보다 깊었고, 잃어버린 감정들과 놓쳐버린 순간들은 뒤늦게 무게를 더해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어딘가에 쏟는 애정은 결국 누군가에게서 받은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아침 인사, 할머니의 따뜻한 밥, 강아지의 온기, 친구들의 응원. 내 선택을 지지하는 이들이 보태준 힘을 과연 나는 어디에 쏟고 있던 걸까요. 예쁜 풍경을 보고도 예쁘다 말하지 못한 시간들. 인정하는 것은 두려움의 연속이었지만, 그 두려움이 곧 더 늦기 전에 돌아서야 한다는 신호였기에 빠르게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그 귀한 사랑이 바닥에 버려지는 모습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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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채워지는 사무실

그래서 보이는 건 다 바꿨습니다. 사무실은 제 눈에 들도록 리모델링했고, 일을 잘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골프와 영어는 그만두었습니다. 그 자리는 좋아서 하는 격투기와 일본어가 차지했습니다. 노래가 좋아서 보컬 학원에 다니고, 카메라를 사서 길고양이를 찍습니다. 노트북 되는 카페를 찾아다니던 습관은 버렸고, 이제는 제 눈을 사로잡는 공간을 찾아 먼 길을 다닙니다. 사람들과 노는 시간도 온전히 즐깁니다. 노트북과 차를 집에 두고, 대낮의 와인 한 잔 합니다. 때로는 세 잔. 흥미 없는 대화에 일 생각을 하던 습관도 놓아보았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표정을 살피니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제 나약함보다 딱 한 뼘 더 빨리 자란 덕에 이 불길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멍청한 선택은 그 자체로 멍청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습니다. 이제 겁이 나면 겁을 먹고, 후회스러운 일은 세차게 후회하려 합니다. 실수한 이력이 있어도 저는 잘 살 수 있습니다. 지난 4년, 잘못된 목표에 매달렸고, 그로 인해 제 20대는 흐려졌습니다. 누군가는 “그래도 커리어와 돈, 인맥은 남보다 낫잖아”라며 다독입니다. 무척 고맙고, 또 맞지만 제 스스로는 알고 있죠. 일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최선의 삶으로 남고 싶은 나약함에서 비롯되었음을요. 다른 길이 너무 멀고 낯설었던 탓에, 저는 스스로에게 워커홀릭이라는 명찰을 달아주며 버텼던 겁니다.


하지만 결말이 보였고, 나는 그 결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제 없습니다. 작은 구석부터 좋아하는 색을 입혀갑니다. 내려놓으니 보이고 들립니다. 얼마나 많은 다정한 풍경과 말들이 제 옆을 맴돌다 떨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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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관심을 갖는 고양이

최선일 필요가 없다고 마음먹으니 과거를 더 인정할 수 있었고, 인정으로부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다 떠난 줄 알았던 이곳에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옵니다. 받아주지 않을 것 같던 인사도 결국은 답장을 받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 고양이가 인사합니다. 갑자기 친절해지고 둥글어진다고 나무라는 사람(동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반길 뿐이었죠. 사실 제 입장이어도 반가울 것 같은데 그 안에서는 왜 그리 생각이 많았는지. 너무도 고맙고, 가슴 벅찬 일입니다.


숲은 여기서 시작입니다.

안녕, 그리고 반갑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이 마음으로.

DSC00285_1.JPG 정자동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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