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 꼭 많이 쓰지 않아도 돼
한 편의 분량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나.
작심삼일이라더니 삼일 만에 쓰기 싫은 마음이 가득 찼다. 딱 100자만 써보자. 하고 키보드 앞에 앉으니 100자만 쓰긴 아쉬운 것 같고, 그럼 조금 더 써볼까…….
보통 에세이나 칼럼 한 편의 분량은 A4용지 두 장 정도 된다고 한다. 이 점을 맨 처음 알고 나서 내 안에 고정관념이 생겨버렸다. [글은 무조건 A4용지 두 장 분량은 써야 한다]라는 고정관념. 이는 완벽히 글쓰기의 장벽이 되어버렸다. 한 번에 A4용지 두 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는 건 가능하지만, 그걸 매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세상 어딘가엔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겠지, 하지만 난 아니다. 어차피 실패할 바엔 시작도 안 하는 게 좋겠다 싶어 결국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자기 계발서에 늘 나오는 말이 있다. 시작의 장벽을 낮출 것. 팔 굽혀 펴기를 딱 1개만 해보자. 그럼 10개, 100개를 하게 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에이, 어차피 100개 해야 한다고 생각할 텐데 몸이 움직이겠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운동하기에서 가장 힘든 건 헬스장까지 가는 일이고,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건 워드를 키는 것이다. 딱 100자만 쓰자.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 몸이 움직였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꽃병의 물을 갈아줄 것이다. 원래 줄기도 잘라줘야 하지만, 꽃병의 물만 갈아줘야지……. 혹시 모르지 않나, 물을 갈아주겠다고 움직였는데 줄기까지 정리할지. 일어난 김에 그릇 한 개만 닦을까. 그럼 싱크대 정리까지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 생각하면 어쩐지 설렌다.
얼마만큼의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정말 무섭다.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분야가 더 두렵다. 예를 들어 내가 전혀 할 줄 모르는 뜨개질이나 목공 같은 일이라면 체험하는 일만으로 즐겁겠지만,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글쓰기나 노래 부르기 같은 일은 좋은 결과를 내야 할 것만 같다. 이 사실은 또 장벽이 되어 나를 가로막고……하여튼 글을 쓸 이유는 한 가지도 없지만 글 쓰지 않을 이유는 수백 수천가지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오늘 100자 쓰기에도 성공했으니 뿌듯하게 잘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