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주의)우울증/자/살/가정폭력
항우울제를 이틀 정도 안먹었더니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항우울제를 갑자기 중단하면 어지럼증, 소화불량, 수면장애 등의 신체적 증상을 겪게 된다고 한다. 이 중 내가 겪는 금단증상은 어지럼증이다. 하루종일 눈앞이 빙빙 돌아서 술취한 사람 마냥 돌아다녔다. 지금 써내려가는 문장도 사실 맞는 형태를 띄고 있는 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나마 다 부서진, 아마 내가 모르고 밟았을 약을 입에 털어넣은 뒤라 겨우 한 문장씩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원래는 약을 꼬박꼬박 먹는 사람인데, 이번에 예약날짜를 놓치고 금전적 상황으로 병원가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약이 떨어지는 상황이 펼쳐져서 이렇게 되어버렸다. 절대 정신과를 두려워한다거나, 약 먹기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신과는 어릴때부터 이비인후과만큼 익숙한 곳이었다. 나는 언제나 우울증 환자였고 정신병자였다. 친구들, 선생님,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지만 부모만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긴,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하면 자신들이 범인이라는 걸 시인하는 셈이니, 그들로서는 필사적으로 부정할 수 밖에 없을 테다. 성인이 되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다름아닌 정신과였다. 내 돈으로, 내 힘으로 내 병을 고치겠어. 그러나 내 마음 속의 병은 생각보다 깊었고 치료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보단 마음의 당뇨라는 말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울증이 낫기를 포기한 상태다. 어떤 이는 우울증이 완치되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나는 우울증 이전의 삶이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자살 고위험군이었다. 보통 친구들은 또래상담을 거친다고 하는데 나는 또래상담은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위클래스는 하등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초등학생때 깨달았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위클래스에 드나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제발, 누구라도 알아줬으면 했다. 살고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날 돕지 못했다. 아니 돕지 않았다.
최근 교사의 권위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 절로 비웃음이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사에게 요구하는 분의 절반이라도 부모에게 요구했더라면, 학교폭력을 신경쓰는 절반만큼 가정폭력에 신경쓴다면.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부모가 되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왜 교사에게만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걸까.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 전에 결국 나는 성인이 되어버렸다. 병원에서 받은 병명은 끝이 없었고 약은 매번 늘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약을 하루만 빼먹어도 눈앞이 어질어질 도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원망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이제 내 인생에서 아무런 상관 없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 오늘의 글은 망했다. 이게 다 항우울제를 먹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