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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효설 Jul 30. 2023

D+7. 이번 주의 호캉스를 포기한 이유

욕조가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

 스폰지밥을 좋아하는 내가 러쉬 콜라보를 놓칠 리 없지! 배쓰밤과 버블밤을 사고 나올 때까진 좋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자취방엔 욕조가(욕조는커녕 샤워부스도) 없고, 본가의 욕조는 너무 작았다. 내가 배쓰밤을 쓰기 위해선 욕조가 있는 숙소를 잡거나 남의 집을 이용해야만 했다.

 호캉스가 처음은 아니다. 반년 전 아무 이유 없이 호캉스를 떠난 적 있다. 회사가 부실해지기 시작하면서 연차 소진을 위해 나흘 정도 휴가를 낸 시기였다. 자취방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도, 내가 20년 넘게 살아온 마을의 모습도 질렸다. 눈앞에 쌓인 빨랫감과 청소거리에 몸서리 치던 나는 충동적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와인을 사러 나갔다. 나도 호캉스를 한다면, 남의 도움만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보낸다면 정신도 회복되고 몸과 마음도 다시 튼튼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무작정 떠난 호캉스는……너무너무 좋았다. 그렇게 목욕을 오래, 또 자주 한 건 처음이었다. 배쓰밤과 버블밤을 가지고 놀고,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서점에서 사 온 책 한 권을 독파하고, 뽀득하게 몸을 닦고 나와서 하얀 이불에 온몸을 맡기는……정말 안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보길 강력히 권하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러쉬에 들리는 마음이 가벼웠던 건 사실이다. 까짓 거 호캉스 한 번 가면 되지. 이제 백수라 남는 게 시간인데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고 호텔을 예약하려는 내 손이 굳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돈도 문제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질문을 무시할 수 없었다.

 

 네가 뭘 했다고 호캉스를 가?

  

 호캉스는 호텔과 바캉스를 합친 말이다. 호텔은 호텔이고, 바캉스는 네이버 사전 기준 [주로 피서나 휴양을 위한 휴가]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호텔에서 보내는 휴가가 호캉스다. 일반적인 회사원이라면 짧게는 사흘, 길게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얻을 테고, 그 기간 동안 철두철미하게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직장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매일매일이 휴가인 백수가 아닌가. 누군가 나에게 글 쓰라며 돈을 쥐어주지 않는 이상 나는 백수다. 풀어야 할 피로도 없고 쌓인 스트레스도 없다. 예전에 떠난 호캉스는 내가 직장인이었고, 스트레스가 극단으로 달했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휴가'도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선물'도, '기념'도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이기에 돈을 쓰고 호캉스를 떠나고 싶어 이것저것 핑계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배쓰밤과 버블밤은 써야 할 것 아닌가. 첫 번째로 생각난 핑계는 글을 쓰기 위해 떠나는 호캉스다. 나 자신을 이른바 '통조림'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다 끊어버리고, 호텔에 일박이일 갇혀있는다면……? 꽤 괜찮은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분명 사전을 검색해야 한다면서, 메신저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어야 한다면서 인터넷에 연결할 게 틀림없다. 확신할 수 있다. 그럼 이 핑계는 안되고. 두 번째 핑계는 기념을 위해 호캉스를 떠나기. 그러나 내 생일과 내 최애 가수의 생일은 4월, 최애캐의 생일은 7월 21일. 이미 모두 지나버려서 내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7월 31일, 언니의 생일이 있긴 하지만 함께 호캉스를 떠나는 게 아닌 이상 핑계가 될 순 없다……. 그럼 기념을 위한 호캉스도 실패다.

 이런저런 핑계를 다 갖다 붙여도 내가 호캉스에 갈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가지 못할 이유만 계속해서 생겨났다. 가장 기본적으로 돈이 문제였다. 아무리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고 해도 백수는 백수,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작가지망생. 이 타이틀은 나를 지갑에 단단히 묶어버렸다.

 결국 호캉스를 포기하기로 했다. 다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호캉스를 더욱 기대되게 만들었다. 어떻게? 호캉스 그 자체를 '보상'으로 만들었다. 어디선가(아마 타이탄의 도구들 같다) 읽은, '보상은 문제가 아니다. 보상이 문제가 되는 건 습관이 될 때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목표를 다시 잡았다. 내 글을 팔아 돈을 번 그날, 호텔을 예약하기로. 어차피 배쓰밤과 버블밤은 써야 하는데, 기왕 쓸 거 기념비적인 '첫 번째로 글을 판 순간'에 쓰면 좋지 않을까. 내 글을 팔아 돈을 벌어 호텔을 예약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폰지밥 에디션의 배쓰밤을 사용한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나 같은 ADHD 환자들은 먼 미래를 꿈꾸기보다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는 게 낫다고 한다. 어차피 먼 미래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틀림없이 올해 안에 있을 호캉스를 생각하면 즐겁다. 신나는 호캉스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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