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 오랜만에 정신과에 갔더니
온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녀야지
어째서 오랜만 시리즈가 되어버린 거지? 부디 읽는 분들은 병원도 운동도 꾸준히 다닙시다! 6월에 갔어야 할 병원을 8월 1일에 갔다. 당연히 교수님께 왕창 혼났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건 4월 말. 병원의 3개월은 무척 긴 시간이다. 3개월이 뭐냐, 한 달도 긴 곳이 병원이다. 병원에서 일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병원에 안 온 3개월을 곱씹어봤더니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에서 잘리고, 백수가 됐다.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죽은 듯 많이 잤고 죽고 싶을 정도로 잠들지 못했다. 병원이나 나에게나 긴 3개월이었다.
사실 어제도 병원에 갔는데, 교수님이 휴진이셨다. 9시 땡 하자마자 산뜻하게(?) 진료를 받고 근처의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려던 나의 계획이 틀어졌다. 근처 마트 푸드코트에 가려 했으나 10시 오픈이었고, 돌고 돌던 내가 당도한 곳은 맥도널드였다. 맥모닝을 씹으며 분노를 삭였다. 내가 맥모닝 먹으려고 지금……. 하늘이 나의 긍정 에너지를 실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어디 해보자. 맥모닝도 먹으려면 시간 조건을 맞춰야 하는데,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같이 더운 날 버스를 탈 수 있는 돈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비록 진료를 받진 못했지만 아직 먹을 약이 남아있어서 감사합니다. 신기한 건, 이런 게 진짜 도움이 된다는 거다. 억지로 하는 거라 해도, 부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하더라도 끝엔 어쩐지 기분이 좋다. 그래, 맥모닝 맛있잖아? 맛있는 거 먹었으니까 됐지 뭐.
당일 접수인지라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대기시간 긴 걸 못 참는 내 친구는 예약 안 하고 병원에 가는 일이 없다는데, 나는 기다리는 걸 잘 견디는 편이라 이따금 이렇게 병원에 간다. 직장인일 시절부터 그랬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상대가 약속시간에 늦는 일에도 별로 화내지 않는다. 책 좀 읽고, SNS 하고, 팟캐스트 좀 듣다 보면 금방 가는 게 시간인 걸. 오늘은 정주행 중인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대기판에 내 이름이 뜨지 않아 불안하던 찰나에 내 이름이 올라왔다.
내 담당 교수님은 절대 말을 착하게 하는 법이 없다. 정신과 의사인데 저렇게 말해도 되나……싶을 정도의 발언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담당의를 바꾸진 않았다. 오늘은 요즘 잘 지낸다는 나의 말에 내가 지난 4월에 얘기한 자살시도에 관한 말을 꺼내셨다. 말투는 가벼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기분 나쁘다. 차트에 적혀있을 나의 자살시도에 관한 이야기. 교수님의 말엔 '예전에 너 그랬잖아. 잘 지낼 수 있으면서 그땐 왜 그랬어?'라는 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상태가 좋아진 게 눈에 보이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자.
오늘 교수님 타이핑 좀 치시더라. 정신과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라고 말하면 빨라지는 타이핑을 구경하는 게 재밌다. 교수님은 잡스러운 내용까지 많이 쓰는 타입일까, 아니면 의학용어로 간단하게 써놓는 편일까. 나의 질병에 관해선 뭐라고 적혀있을까. 남들의 차트는 수없이 많이 봤지만 정작 내 차트는 본 적이 없다. 3개월의 근황이 짧게 담겨있을 내 차트가 궁금해졌다. 아마 오늘의 차트엔 이런 내용이 담겼겠지. 낮에 더 이상 안졸리다고 함. 수면장애가 언제 있었냐는 듯 나는 아침에 잘 일어나게 되었고, 낮에 졸지 않게 되었다. 깨진 수면패턴으로 불면증을 겪고 나니 과수면장애 증상이 나았다. 이독제독이다.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거야?! 각성제를 처음 먹어봤을 때의 기분을 매일 느낀다.
오늘 처방받은 두 달 치 약에서 각성제가 빠졌다. 각성제가 빠지니 약값이 10만 원 덜 나왔다.(그래도 11만 원 나왔다……) 이렇게 약 하나를 졸업하는구나. 어쩌면 휴학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졸업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씩 정신과를 다니면서 증량만 해왔지, 감량은 해본 적 없기에 어쩐지 뿌듯했다. 창구의 약사님도 이제 서서히 감량하시나 봐요! 라며 축하해 줬다.
정신과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약을 투약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맨 처음 병원에 들어갔을 때의 나는 정말 곧 죽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아직 독립을 못했던 시절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테다. 성인이 되었는데, 이제 내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데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의원 급에서 종합병원 급으로 옮길 때의 나는 가장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삶을 꾸렸다. 차근차근 약을 맞춰갔고, 나는 독립했다. 그리고 2년이 된 오늘, 약을 감량했다.
이제 더 이상 절망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어릴 때도, 지금도 알고 있다. 차근차근 약을 감량하다 보면 언젠가 끊을 날도 올까? 그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