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 백수가 되자마자 한 일
이따금 심심풀이로 보는 건 좋더라
갑자기 불쑥 퀴즈! 백수가 되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두구두구두구……정답은 바로 타로점 보기! 백수가 되자마자 친구와 함께 타로점을 보러 갔다. 유명한 집을 찾아간 것도 아니고, 그냥 동네에서 오래된, 자주 보던 점집을 방문했다. 잘하는 곳이니까 오래됐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사주나 타로를 깊게 믿는 건 아니지만, 가끔 심심풀이로 보는 건 좋아한다. 잠깐 TMI를 말해보자면 내 사주엔 흙과 나무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를 증명하듯 본가는 20여 년째 이사한 번 안 갔고(그 덕에 집은 포화상태다) 좋아하는 것부터 친구들까지 인생의 중요한 것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단단한 사주지만 재미는 없다고 한다. 그럼 나는 와! 단단한 사주구나! 하며 좋아하고 재미없다는 말은 무시해 버린다. 선택적 수용이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이번 타로의 질문은 제가 회사에서 잘리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는데, 잘 될 수 있을까요? 였다. 마치 사업을 시작하기 전 굿을 하듯, 개업식에서 제사를 지내듯 비장하게 질문을 던졌던 나.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던 점술가는 내 생년월일을 듣더니 올해 잘리는 사주네,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생시까지 말하진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잘렸다고 말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라고 반신반의하며 타로카드를 뽑은 뒤, 첫 번째 카드를 뒤집는 순간 나는 탄식을 뱉었다.
사실 에세이를 쓰면서 '탄식을 뱉었다'라는 표현을 쓸 일은 별로 없는데 그때의 내가 뱉은 건 정말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사람이 참수당하는 카드였다. 내가 카드를 보고 굳어있자 점술가는 '거봐, 내 말이 맞지.'라는 표정으로 그렇죠? 잘렸죠?라고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네, 잘렸네요……. 바보 같은 대답밖에 할 말이 없었다.
카드는 총 세 장을 뽑았고 풀이를 들어보면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카드는 여인을 유혹하는 사내의 카드였다. 여인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몸은 사내에게 기대고 있지만 얼굴은 새초롬한, 전형적인 밀당의 기술을 선보이는 모습이었다. 점술가는 그 카드를 보며 내가 갈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고 싶지만 아직 믿을 수 없는 상황. 그야 그렇겠지.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살만한 돈을 벌어보지도, 공모전에 입상해 보지도, 그렇다고 등단을 하지도 않았다. 갈등하는 게 당연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 글 팔아먹고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지만 나는 어쨌든 글 쓰는 노동자가 되고 싶었다. 아니 되고 싶다. 글쓰기와 관련된 거라면 뭐든 좋으니 일단 글로 한 푼이라도 돈을 벌고 싶다. 내 책도 내고 싶고, 북토크도 사인회도 해보고 싶다.
세 번째 카드엔 함정에 빠진 사내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주변을 빙 둘러싼 구경꾼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카드가 말하는 나의 미래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점술가가 말하는 미래는 꽤나 긍정적이었다. 함정에 빠지게 만든 건 나 자신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갈등하다간 자신을 함정에 떨어트릴 거라고 말했다. 어차피 사주가 회사에서 얌전히 일할 팔자는 아니라고 덧붙이며. 내 사주에 필요한 건 인내라고 했다. 내년부터 잘 풀릴 거라고 점집을 나서는 내 등에 대고 말했다.
인내가 필요한 사주라는 말은 많이 들었다. 들을 때마다 인내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나? 싶지만, 내가 택한 일은 정말 인내가 필요한 게 맞다. 긴 무명의 시간을 견뎌야 하고, 운 좋게 책을 내더라도 팔리지 않음을 감수해야 하고. 세상에 작가만큼 인내가 필요한 직업이 또 있을까. 결국 나는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글을 써야 한다.
'인내'를 사주가 찾아줬다면, 내가 직접 찾은 건 '꾸준함'아닐까. 매일 꾸준히 한 편의 글을 써서 올리기, 매일 꾸준히 소설을 써서 투고할 준비를 하기. 매일 책을 읽고 글을 보는 눈을 키우기. 꾸준함을 갖고 인내한다면 뭐든지 가능할까. 그건 앞으로 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