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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효설 Aug 08. 2023

D+16. 우리 집 고삼

수능이 100일 남았다면서요?

 뭘 쓸지 모르겠어서 브런치를 둘러보는데, 고삼에 관한 글이 메인에 올라와있더라. 고삼……힘든 시기지, 나도 엄청 힘들었었고, 추억 아닌 추억을 곱씹는데 우리 집에도 고삼이 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주인공은 내 동생, 수능을 보지 않아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격동의 고삼. 나도 공부 더럽게 안 했으면서, 동생을 만나면 공부는 안하냐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고삼이라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지 싶다. 고삼의 내가 보면 코웃음을 칠 거다.

고삼 때의 나, 일단 완벽하게 멘탈이 터져있었다. 우울증에 식이장애, 수면장애까지 겹친 나를 부모는 끝까지 외면했다. 그때 적절한 치료를 받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모의고사 성적의 절반도 나오지 못한 수능 성적표를 들고 대학에 가네마네 재수를 하네마네 싸웠던 기억은……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자살 충동을 넘어 살인 충동까지 들었던 추억. 추억이라고 해도 되나, 이거. 내가 망쳤던 길을 동생이 다시 밟지 않길 바랐다. 부모는 내 수능을 망치고도 그대로였다. 결국 동생이 듣고 싶다는 인강을 내가 대신 끊어주고, 교재를 대신 사주었다. 룸메이트는 대치동으로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데, 나는 무료 강의를 찾아보았던 기억. 학원을 끊어달랬더니 할인을 받겠다고 굳이 지인의 학원을 찾느라 몇 개월을 허비한 기억. 수능완성을 사주지 않아서 몇 주 동안 친구들의 책을 복사해서 수업을 들었던 기억. 누군가에겐 그걸 버틸 수 있는 멘탈이 있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얻었던 정신병을 치료하느라 오랜 세월이 흘렀다. 물론 치료 과정에 부모의 도움 따위는 없었다. 멀리 돌아서 제자리를 찾고 나니, 내 동생이 고삼이 되어있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동생에게 대신해주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네가 있어서 좋아, 널 응원해. 공부가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했으면 좋겠어. 같은 별 거 아니지만 따뜻한 말들. 고삼의 나에겐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 있다면 나 자신을 꼭 안아주고 싶다. 그게 안되니 대신 동생을 한 번 안아줘 본다.

 고삼이란 정말 특별한 시기인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된 것 같은데, 사회적으론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시기. 마지막으로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때. 졸업사진을 찍고 민증사진을 찍고, 아직 쓸 수 없는 민증을 만져보고. 부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이 나처럼 악몽 같은 고삼이 아닌, 추억할 수 있는 고삼을 보내길 바란다. 공부가 전부는 아닙니다. 수능을 죽도 모자라 삼층밥을 지어버린 저도 어떻게든 먹고살고 있어요. 중요한 건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이렇게 응원할게요.


p.s.

마침 날짜를 확인해 보니 수능이 100일 남았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고3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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