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8.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를 듣는다는 건
끝나지 않는 외국어 학습의 굴레
나는 영어를 못한다. 12년 정규 교육과정을 모두 밟았음에도 할 줄 아는 영어는 I'm fine. thank you! 정도다. 졸업과 취업에 영어점수가 필요하지도 않아서, 그 흔한 토익 점수도 없다. 요즘 애들은 초3 때 이미 영어를 마스터한다는데……. 꼭 그런 소문(?)이 아니더라도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다. 사실 목표 없이 재미로만 공부를 한다는 건 나 같은 어른에겐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시험을 준비하긴 싫고,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고(돈도 없고)……. 그래도 영어정도는 하고 싶다.
영어를 처음 배웠던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영어를 못했다. 영어라는 과목 자체에 흥미가 가지 않았다. 수능에서도 부끄러워 말 못 할 정도의 낮은 등급을 받았다. 언어 영역에 취약한가 싶다가도 국어와 사탐 점수는 잘 나온 것을 보아, 영어도 하면 잘할 것 같은데……'잘할 것 같은데'의 상태로 졸업해서 2n살이 되었다. 외국어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 제2, 제3 외국어까지 필수인 시대가 되어버렸다. 나는 왜 영어에 흥미가 없을까? 가장 큰 이유는 당장 쓸모가 없기 때문이겠지. 영어를 공부한다고 해서 당장 등단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인 친구가 있거나 외국 연예인을 덕질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늘 영어를,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었다. 일단 멋있다. 아무렇지 않게 외국인과 대화하는 나, 생각만 해도 너무 멋있고 뿌듯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잘하면 얻을 수 있는 자료의 양이 다르다. 전 세계에 한국어로 된 자료는 전체의 1%도 안된다고 한다. 영어를 할 줄 알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보고 들을 수 있다. 또, 언어의 세계를 넓힌다는 건 뇌를 다양하게 쓴단 얘기다. 새로운 언어를 학습함으로써 다양한 표현을 습득할 수 있다.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 중, 좋아하는 책이 두 권 있는데 한 권은 '그래서 오늘 나는 외국어를 시작했다'이고, 한 권은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다. 전자는 영어를 포함한 다양한 외국어를 배우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고, 후자는 좀 더 학습법을 알려주고 동기를 부여해 주는 책에 가깝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김민식 작가님의 다른 책 '매일 아침 써봤니?'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공부법을 의심하지 않고 공부하는데 비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공부방식을 의심하고 고치느라 공부할 시간을 허비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엄청 뜨끔했다……. 영어 공부법 책을 계속해서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마치 학창 시절의 나와 똑같아서. 요즘은 의심을 접고 100일 회화를 외우는 중이다. 머리가 굳었는지 쉽게 외워지지 않는다. 100일 동안 매일 외운다 치면 이 글쓰기 프로젝트가 끝나는 10월을 지나 11월쯤 한 권을 마무리할 수 있다. 지금 속도로 외우면……불가능하다. 하지만 꼭 11월까지 마무리해야 할까? 영어를 2n 년 동안 못했는데, 한 두 달 더 못한다고 큰일 나진 않겠지. 내가 좋아하는 김하나-황선우 작가님들도 천자문을 공부할 때 훨씬 더 많은 기간을 소비해서 공부했다 하고, 홍콩 사람들은 영어를 단기간에 학습하지 않고 평생 배워야 할 학문으로 여긴다 한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영어공부에 임해 본다. 그렇지만 12월 안엔, 올해 안엔 100일 회화를 졸업하고 싶다.
미드나 영드, 영화엔 크게 흥미가 없지만 팝송을 듣는 건 좋아한다. 보통 작업브금으로도 팝송을 깔아놓는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래도 물론 좋아하지만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기 때문에 집중하기 어렵다. 하지만 팝송은 가사가 안 들려서 그냥 흘려보낼 수 있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노래 가사가 들리는 날이 오려나? 어느새 알아듣고 있는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기대된다. 그때가 되면 일본어 노래를 듣고, 일본어가 들리기 시작하면 중국어 노래를 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