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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롯데프리미엄 Apr 08. 2020

두 얼굴의 댄서 '댄스플'

모두의 사진관 4화: 직장인 취미 생활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보편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모두의 사진관. 제4화 '직장인 취미 생활 인터뷰'에서는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본인만의 특별한 취미를 가져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여성 3인을 만나보았습니다.


"퇴근 후에도 취미 생활을 통해 저의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어요.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 독하게 연습하고, 호흡 맞추고, 때로 갈등하고 부딪히지만, 서로 맞춰가며, 엄청난 성취감을 얻습니다. 이만한 취미생활이 없죠."


댄스 동아리 '댄스플'의 구성원 중 3명인 이들은 다양한 직업과, 다 다른 퇴근 시간 심지어 거주하는 지역도 다릅니다. 최근 들어 많은 회사들은 퇴근 시간과 워라벨을 보장해 주고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를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퇴근 후 그녀들을 움직이는 원동력과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 고세인


댄스 동호회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했었어요. 당연히 전문적으로 배워볼 생각도 못 했고, 오히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시선에 의해 저의 내재된 ‘끼’라고 할까요? 쑥스럽지만 그런 것들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자랐어요. '어디서든 튀면 안 되고 무난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었죠. 뭐랄까 ‘어머 어머, 쟤 왜 저래?’라는 말을 듣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춤을 추고 싶어도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다 26살쯤부터 정말 흔히 하는 ‘한 번 사는 인생인데’라는 말을 모토로 하며 그동안 억눌렀던 것을 다 하기 위해 춤도 시작하게 됐어요. 전혀 시작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드디어 내가 춤을 배울 수 있구나'라고 설렜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실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면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내 작업물에 변화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는 것을 지양하게 돼요. 또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어떠한 정답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내 그림이 진짜 좋은 그림인가에 대해 자책도 하고 슬럼프에도 쉽게 빠지는 것 같아요. 아마 춤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확실히 집에서 그림만 그리다 춤을 추고 나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어서 그 답답함이 풀리더라고요. 춤을 시작하기 전엔 굉장히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고 자주 우울감에 빠졌었는데 춤을 추고 난 후론 그런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춤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제일 매력적인 것은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거죠. 추면 출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평소에 몰랐던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확실히 전 춤을 추고 나서 아주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성격으로 바뀐 것 같아요. 지금 예전 춤 영상들을 보면 춤을 시작하고 한 달 후의 저와 지금의 제 표정이 많이 다른 걸 볼 수 있어요. 이미 그 표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변했는지 보이는 것 같아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추억이 많을 것 같아요.


사실 이번 모두의 사진관 촬영이 가장 큰 에피소드이자, 앞으로도 추억에 남는 일인 것 같아요. 우선 저희는 늘 기존의 안무를 배우거나 따서 추는 게 일반적이어서 안무를 창작해서 춰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촬영이 매우 특별하지 않았나 싶어요. 다들 노래는 뭘로 할지 여기에 무슨 안무를 넣으면 좋을지, 또 화보라는 분위기에 맞게 동작은 어떤 게 좋을지 셋이 얘기하면서 짜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동시에 공연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공연보다 이 화보 촬영으로 짠 안무가 더 재밌을 정도였어요. 분명 한 5년 뒤에 보면 흑역사 일 것 같은 춤이었지만 그래도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 재밌고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하면서 신나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 김민희


현재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시나요.  


저는 롯데백화점 본사 MD전략팀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회사원입니다. 저희 팀의 업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백화점의 신규점이나 대규모 증축 혹은 리뉴얼 시 콘셉트를 수립하고, MD 블록 플랜을 짜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니 매우 거창하게 들리네요. 하지만 규칙적인 9 to 6 근무와 남들이 쉬는 주말에 똑같이 쉰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는 보통의 회사원입니다.

사실 현재 보직에 발령받기 전, 점포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평일에 쉬거나, 휴무가 고정적이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그땐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춤을 배우는 이 동호회는 꿈도 못 꿨을 것 같아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문득문득 찾아오는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그만두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잖아요? 본사에 와서 주말 근무를 하게 되면서 저만의 취미를 갖고, 그 취미인 춤이 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었어요. 삶에 자극과 활력이 주어지니 직장에서도 더 열심히 일하고 태도도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춤에 대한 정의를 한다면요.


제가 생각하는 춤의 매력은 다양성인 것 같아요. 같은 춤 같은 동작이라도 어떤 사람이 추느냐에 따라서 느낌과 무드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각자의 개성이 춤에서도 오롯이 들어가게 되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게 다가와요. 그리고 제가 추는 똑같은 춤이라도 저의 감정과 표현하려고 하는 느낌에 따라 또 다르게 표현이 돼서 매력적이에요.

동호회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희 동호회는 1년 중 3월에 한 번, 핼러윈 시즌에 한 번으로 크게 1년에 2번씩 여러 팀이 모여서 그동안 준비했던 안무를 선보이는 공연을 해요. 작년 핼러윈 공연 때 저랑 은아를 포함해서 15명 정도의 친구들이 공연을 준비했답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모여서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공연 당일에는 핼러윈에 어울리는 좀비 분장을 화려하게 하고 공연장에 딱 섰죠. 그날 20팀 정도 중에서 저희가 제일 첫 순서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너무 긴장한 탓일까요? 아니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만 앞서서 그런 것일까요? 공연 20초가량 남겨두고 중간에 엄청 심하게 발목을 삐끗했어요. 순간 너무나도 아팠고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 공연을 무사히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참고 끝까지 아무렇지 않게 마무리했답니다. 끝나고 발목을 보니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았어요. 그날이 토요일이었는데 일요일에는 거의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월요일에 일어나자마자 정형외과를 갔고 다행히 골절은 아니어서 3개월 정도 보호대를 차며 생활했네요. 춤도 강제로 한 두 달 쉬게 되었어요. 역시 몸이 건강해야 취미활동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도 그때 팀원들과 연습했던 순간들, 음악이 딱딱 맞아 들어갈 때면 느껴지던 전율, 그때 팀원들 눈빛을 봤을 땐 정말 감동이었어요.


앞으로 또 다른 도전을 하려고 하는 게 있나요.  


당장은 다른 분야로는 새로운 도전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직까지 춤을 배우고 추는데 보내는 시간이 정말 좋고, 그리고 춤에서도 실력을 길러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초보이기 때문이죠. 지금은 저희 동호회에서 걸스힙합과 얼반 댄스를 주요 장르로 배우고 있는데, 다른 장르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화려한 손동작이 특징인 왁킹 같은 아메리칸 스트리트 장르를 배워보고 싶네요. 미래에는 제 무릎과 발목 관절이 버텨주는 한, 취미로 계속 춤을 추고 싶어요. 실력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고, 그래도 춤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더라도 남편과 자식과 함께 춤을 즐길 수 있는 그런 흥이 넘치는 가정을 꾸리는 게 제 소박한 바람입니다!


■ 김은아


현재 하시는 일이 궁금해요.  


소프트웨어 개발자입니다. CRM 시스템 개발을 하고 있어요. CRM은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의 약자로, 고객관계 관리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영업사원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예요. 저희 회사는 Salesforce라는 CRM 플랫폼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는 제 첫 직장이고, 벌써 입사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네요. 제가 하는 일이 가장 성취감이 있고, 뿌듯할 때는 처음 설계부터 개발까지 스스로 다 이루어 갈 때인 것 같아요. 빠르게 변화하는 IT업계 특성상 도태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아요. 직춘기(직장인 사춘기)라고 하잖아요. 업무 외에도 해야 할 것은 끝도 없이 늘어가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그때 춤을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도 저의 일은 다른 직무에 비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거의 없어 감정노동이 적고, 코로나 19와 같은 상황에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점 등 장점도 많은 것 같아요.


외국은 춤을 즐기는 문화지만 우리나라는 춤에 재능이 있거나 장기 자랑으로 만 쓰이는 거 같아요. 동호회 시작하기 어렵지 않으셨나요.


어렵진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 시기에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은 욕구가 커서 큰 고민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막상 처음 신입 오리엔테이션 때 거울 속의 몸치 박치인 제 몸뚱어리를 보면서 자괴감이 들긴 했지만, 동호회의 첫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댄스플은 매주 수업 말고도 공연이나 버스킹, 영상 촬영 같은 프로젝트들을 많이 해요. 그중에 핼러윈 공연이 있는데, 신입 OT 한 뒤에 가장 먼저 했던 게 그 핼러윈 공연 스태프로 참여하는 거였어요. 용마 랜드를 대관해서 설치한 야외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됐어요. 스탭도, 댄스플 팀도 모두 핼러윈 분장을 하고 준비한 공연을 하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그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요. 그때 함께 했던 스태프들도 잠깐 사이에 많이 친해져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게 되었답니다. 그때 SNS에 ‘나도 내년엔 핼러윈 공연 나가야지’ 하면서 피드를 남겨놨었더라고요. 일 년 뒤에 정말 공연하고 나서 그걸 봤는데 감회가 새로웠어요.

세 분은 어떻게 친해지게 되셨나요.


저희 안 친해요. 하하. 농담이에요. 사실 계기가 딱히 있진 않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든 거 같아요. 보통 한 팀이 20명으로 구성되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친밀해지지는 않더라고요. 모든 사회생활이 그렇듯 가까워지려면 서로 노력해야 되는 것 같아요. 언니들도 저도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어색한 상태에서도 친해지려고 얘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춤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고 들었어요. 먼저, 몸은 만지고 두드리고 흔들면서 몸의 감각을 깨워요. 두 번째 요소 시간은 시간이라는 요소 속에서 느리게, 빠르게, 정지, 이동 같은 템퍼를 접하죠. 그리고 공간은 공간을 인지하고 활용하고 그 속에서 몸을 움직여요. 네 번째는 관계인데, 춤이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했을 때 아주 강력한 게 이 관계 요소라고 합니다. 어우러져야 하고 저희는 그런 어우러짐을 배웠어요. 마지막으로 에너지입니다. 앞의 네 가지 요소가 어우러질 때 좋은 에너지가 샘솟아요. 점점 더 저희는 에너지를 느끼고 있어요.



슬기로운 취미 생활로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그녀들. 게다가 그녀들만의 케미를 느낄 수 있는 인터뷰를 통해 저 또한 회사 생활을 다시금 되새김질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거창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소소한 취미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에디터 조유미, 이현수

영상 김응환, 문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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