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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신우 Oct 08. 2024

우리의 이별 장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책과 영화를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챙겨보곤 한다. 로맨스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야기 속에는 이별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들을 보면서 이별에도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의 이별 장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래 함께 지낸 연인도 시간이 흐르며 ‘우리가 이별할 때가 되었구나.’를 예감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말없이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또 어떤 커플은 예상지 못한 이별을 맞이하기도 한다. 한쪽이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거나 가족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한쪽은 준비되지 않았지만, 한쪽은 이미 준비된, 그런 이별도 있다. 나처럼 말이다.

사실, 나의 이별 장면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슬프다’기보다는 ‘아프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한 번도 이별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아니, 지금도 가끔 그 이별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다. 오랜 시간 나로 인해 힘들고 아픈 것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나와 헤어질 준비를 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때 그냥 나를 놓았다. 그 사람에게 이 이별은 많이 슬프지만 그래도 조금은 정리된, 후련한 이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닥친 커다란 충격과도 같았다. 나는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만남과 이별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놈은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대두분의 이별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유효기간 없이 간직한 채 고통을 견뎌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일 뿐 괜찮아지지는 않는다. 나처럼 남겨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이별했다. 이제야 그 사실을 인정했다.


나의 이별 장면이 너무 아파서 나는 밤마다 울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니 살 수 있을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한 번 보고 덮어버리면 되는 책이나 영화처럼 나의 이별도 그렇게 한 번에 덮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여전히 자주 아프고, 인정은 했지만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낯선 일상의 연속이다. 이 장면은 계속해서 떠올라 나를 자주 괴롭히곤 한다.

그러나 이 낯선 일상도 언젠가는 평범한 일상이 되어갈 것이다. 내 삶에 다른 일상은 절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혼자 밥을 먹고 잠들며 살아가는 이 시간이 ‘내 삶’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간들이 오고 있다.


나는 이별했다. 더는 그 사람이 내 곁에 없다.


그 사람은 이미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자주 몰려드는 아픔과 미련 속에 있다. 어쩌면 정작 이별해야 할 것들은 나를 에워싸고 있는 우울, 불안, 공황 같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불편하고 기분 나쁜 이 후유증과는 언제 이별이 가능할까. 한두 알 입에 털어 넣는 약도 내성이 생겼는지 별 소용은 없다. 그나마 글쓰기가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다. 펜을 들고 한 자 한 자 써나가며 나의 이별을 감당해본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기억의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없다, 그 기억이 비록 원망이나 미움일지라도.’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기억만 있을 뿐. 사랑은 따뜻했고 이별은 차가웠지만 내 긴 삶의 여정에서 그 온기만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 이별이 또 다른 만남으로 올지, 재회로 내 삶을 다시 열어가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여러 장면을 새롭게 써나가려 한다. 더는 같은 이별의 장면이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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