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입니다.’
내가 유별나고 예민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부끄러워했다. 우울증이라니. 게다가 공황장애, 불안장애, 광장공포증이 함께 왔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는 ‘감기’ 같은 거라고 선생님은 이야기했지만, 평생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불치병에 걸린 듯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3년 전 처음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은 후 지금까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치료를 해오고 있다.
마음이 울적해지는 때에 가장 하기 싫은 것이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몸을 움직이고,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때로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기타를 치는 것 자체도 힘들다. 늘 당연하게 생각하며 해나가는 일조차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면 더 우울한 생각으로 빠져든다. 여러 생각 속에서 머리가 지끈거리며 나를 붙드는 게 힘겹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를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약 10개월 동안 거의 하루를 쉬지 않았다. 쉬는 날이면 제주도도 거의 빠지지 않고 갔다. 맡은 학교 수업도 충실히 했다. 목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미래의 경주마들도 열심히 보았다. 그토록 공포스럽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지난 10개월 동안에는 피하지 않았다. 용기 내어 부딪혔다. 물론 여전히 힘들고 불안하고 느닷없이 공황은 찾아왔지만 더 이상 겁내지 않기로 했다.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치러야 할 신체적, 정신적인 대가와 많은 에너지가 소모에도 불구하고 미리 겁먹는 것이 더 오히려 공포감을 키우는 것 같아 ‘올 테면 와봐라.’라는 식으로 맞부딪히기로 한 것이다.
그런 나의 마음가짐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건 사실이다. 여전히 마음은 울컥하고 한 번씩 깊은 우울감이 밀려오지만, 해야 할 일을 해내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글도 좀 더 많이 쓰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게 되었다. 확실한 건 마음이 힘들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불안, 우울 같은 감정은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고 싶을 때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가만히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멍때리기를 할 때 그들은 스멀스멀 나를 공격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이제는 나도 요령이 생겨서 마구잡이로 글을 써대거나 책을 들고 읽거나 밖으로 나가 조금 걷는다. 그러다 보면 우울과 불안한 감정이 어느새 자취를 감춰 버린다는 것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이 방법이 다 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혹 나와 비슷한 힘듦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일단 몸을 움직여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우울과 불안을 마주하는 것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렇게 차분히 글을 써나가면서 내가 가진 진짜 우울과 불안이 무엇인지 보게 되면, 그것을 극복하는 데 훨씬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것은 각자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완벽히 ‘치료되는’ 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방법들이 삶 속에서 작은 행복도 발견하고, 또 내가 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몸을 움직인다. 약이 가득 든 봉지를 챙겨 회사로 돌아간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덜 힘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