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가가 지방에 있고 또 일 때문에 돌아다니는 일이 종종 있다 보니 KTX를 탈 때가 있다. 지금도 서울역에는 심심찮게 노숙자를 볼 수 있는데, 이전하기 전에는 노숙자들이 마치 모텔처럼 역을 이용하곤 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어쩌다가 노숙자가 되었을까?’ 생각했다. 보통 사업에 실패하거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기사에서 그런 얘기를 본 적이 있다. 노숙자 중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선택해 노숙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박스를 덮고 잠을 자고, 트렁크에 짐을 들고 철새처럼 떠돌면서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 씻지도 못해 병에 걸리거나 죽는 사람도 더러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노숙자이기를 자처한다니, 믿지 못할 일이다. 자발적으로 노숙자가 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 어떻게 해서 가족을 책임질지 등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편하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좀 어색해도 몇 달 지나면 금세 익숙해져서 마치 오랫동안 노숙자였던 것처럼 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한다고 한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삶의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고, 그 선택은 자유이지 않던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듯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자유롭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자유는 인간이라면,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본권이다. 노숙자가 되든, 성공을 향해 달리든,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으로 유유자적 살든 모두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때때로 내 삶이 억압받고 있다,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걸까.
특히 나는 내 일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혹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겪을 때 ‘나는 왜 이렇게 억압받고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도 “너 무조건 그 일 해야만 해. 그렇게 살아!”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내 일은 내가 결정만 하면 시간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자유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나아가 원한다면 당장 이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가도 마음 편히 있기가 힘들고, 그만둔다는 생각도 쉽게 하지 못한다. 충분히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말했다. “자유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즉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면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현재의 삶과 타협하고, 힘든 상황을 견디고,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도 꾸역꾸역 살아간다. 자유가 주어졌는데, 왜 우리는 그런 삶을 견뎌야 하는 걸까?
그것은 모든 자유에는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것을 ‘뒷감당’이라고 표현한다. 가까운 사람 중에는 내가 힘들 때마다 “그러면 그 일 그만두고 다른 일 해도 되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래도 되지. 하지만 그 뒷감당도 해야겠지.”라고 대답한다. 그 뒷감당이란 지금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자유. 즉, 경제적인 부분, 전문성을 가지고 인정받으며 하는 일에 대한 부분을 내려놓음으로써 내게 닥치는 모든 불이익을 뜻한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새로운 일을 함으로써 지금 가지는 전문성이나 인정을 모두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새로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 그저 신입으로 살아가게 될 테고, 혹자의 말처럼 “이곳과는 색다른, 어쩌면 더 지독한 지옥”을 맛보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러한 두려움이 우리 모두의 안에 있기에 쉽사리 현실을 포기하지 못하고 안주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유는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지만, 이는 어떤 것이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길에 대한 비용, 책임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또한 자유를 ‘무질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무질서란 ‘확고하지 못한 상태’란 뜻으로, 어지럽거나 무질서한 상황 또는 불안정하고 혼란한 지경을 나타낸 말이다. 나는 그동안 자유를 외치면서도 결과에 대해선 책임회피를 하고, 견뎌야 할 무게에 대해서는 도피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무질서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몸은 자유롭다 착각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불안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를 내버려 두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내가 중심이 되지 않은 상태, 즉 무질서의 상태다. 따라서 어떤 사소한 일일지라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보상이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내가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한동안 우울한 마음에 혼자 방에 갇혀 내 삶을 원망하거나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바라지 않은, 나를 그대로 방치해 둔 무질서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주어진 자유라는 이름으로 선택을 해보려 한다. 일단 이 방을 나가는 용기를 내보려 한다. 산책이 되었든 쇼핑이 되었든 혹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되었든. 그 첫 번째 선택이 나의 진짜 자유한 삶을 되찾아줄 거라고 믿는다.
진정한 자유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니까. 그러면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가 영광이 됐든 쓰라린 패배의 아픔이 됐든 그에 대한 무게를 견뎌낼 준비가 있기에 온전히 그 권리를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