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離別)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갈리어 떨어짐’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는 의미인 ‘작별(作別)’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이별이란 그저 헤어짐이다. 서로 나뉘어 더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때로는 인사도 없이. 그래서 이별은 사전적 의미만 보아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누구나 한 번쯤 이별의 경험을 한다. 남녀만의 헤어짐뿐 아니라 부모님과의 헤어짐, 지인과의 헤어짐, 반려동물과의 이별… 등 상대가 일방적으로 떠나가거나 서로 멀어지는 식으로 우리는 저마다 이별을 한다. 나 역시 몇 번의 이별 경험이 있다. 아니, 나는 유난히 이별의 경험이 많다. 특히 오랫동안 키워 온 경주마와의 이별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들과는 만날 때 이미 이별이 예고된 셈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한 나는 그들과 수없는 이별을 반복해야 한다.
이 이별이 고통스러운 것은 몇 년이 흐른 후에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다. 잦은 이별이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적응되지가 않는다. 늘 그 이별이 믿기지 않고 어디선가 그 친구가 살아있을 것만 같아 그리움조차 들지 않을 때가 많다. 이름을 부르면 달려올 것만 같아서….
그래도 보지 않으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은 무뎌진다. 마음을 누르려고 애쓰면 참아지기는 한다. 또 바쁜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놓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매 순간 그 추억으로 슬퍼하는 일은 줄어들게 된다. 물론,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순간순간 함께했던 추억들이 떠올라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긴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꼭 사별이 아니라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싸우거나 오해의 감정들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래, 헤어지자.”라고 인연의 끈을 서로 함께 놓아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냥 일방적으로 상대를 남겨두고 떠나는 헤어짐도 있다. 어떤 이별이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지 않는다면, 과거의 행복한 기억으로 인해 울컥하는 순간도 점점 덜해질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별은 서로 마주치지 않는 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생애에도 보지 말자.”라고 모진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야 마음 정리가 좀 더 수월할 것이다. 길든 짧든 서로 마음을 나눴기에 이별을 한 직후에는 그 감정이 곧바로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는다.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얼굴을 계속 보면서 지내야 한다면 어떨까. 괜찮아졌다고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살아가다가도 막상 상대와 마주치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었다고 생각하면 이겨낼 수 있겠지만, 한쪽이 일방적인 이별의 통보를 받은 경우였다면 마주치는 모든 순간이 남겨진 자에게는 고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된다. 보지 않고 이별을 견디는 것과 보면서 이별을 견디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을까. 여기에 대한 나의 결론은 ‘상대에게 미련이 있는 사람과 완전히 마음 정리를 한 사람이 각각 다를 것이다.’이다. 한쪽이 끊어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상대방을 보는 모든 순간이 고통일 것이다. 한 직장에서 일을 한다든가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이 당면해야 할 슬픔과 상실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그래… 이렇게 보면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으니 그게 더 나은 거야.’라고 자신을 달래겠지만, 그런 마음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은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이별은 완전한 이별이 아닌, 남겨진 사람에게는 반쪽짜리 이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마음을 정리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차라리 서로 볼 수 없는 환경이라면, 처음엔 힘들지 몰라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삶의 진리처럼 인간의 망각 시스템에 의존해 서서히 괜찮아져 갈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마음이 꼭 그렇다. 남겨진 사람으로서 그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아픔이 때로 내게 다가온다. 차라리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조금은 나을까. 자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별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별은 나를 위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 없이는 죽을 것만 같고 온 세상이 그 또는 그녀를 위한 세상 같지만, 그래서 이미 떠나간 상대를 놓지 못하는 건 그저 나의 이기심과 욕심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의 관계를 더욱 힘들게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이별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 삶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고 조금 더 건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별은 이전의 관계가 아닌 이후의 관계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해져야 다시 새로운,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용기를 내어본다. 나는 앞으로도 보면서 견디는 이별 속에 놓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별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별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지만, 이렇게 아픈 이별을 지나고 나면 내가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물론 지금도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었더라면….’ 하며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러나 건강한 이별은 그 후회조차도 서서히 보내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반쪽짜리 이별이 아닌,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