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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신우 Nov 14. 2024

나는 그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별 후에는 항상 자기반성이 오기 마련이다.

‘나는 그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특히 연인과 헤어진 마당에 굳이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게 되는 것은. 아마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최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나의 이별 과정과 이별할 때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난 왜 이별을 하게 됐을까. 난 그에게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별을 하고 나면 감정의 몇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별 직후에는 나도 모르게 ‘괜찮은 척’을 하게 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됐어.’라며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것이다. 이 단계가 지나고 나면 ‘왜 이별을 하게 됐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모든 이유가 상대방의 실수, 소홀함, 마음의 변화에 있다며 모든 결과를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단계가 온다. 이 단계에서는 일종의 분노와 격한 감정이 일기 마련이다.

한동안 분노와 원망이 뒤섞여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힘겨워하는 단계가 지나고 나면 그제야 스멀스멀 상대방이 잘해주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얼마나 상대방에게 잘못했는지, 그에게 난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의 모습은 어땠는지… 행복하긴 했는지, 때론 너무 힘겹진 않았는지, 그 모든 걸 내가 알고는 있었는지… 그런 객관적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나의 실체가 낱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미안함과 아쉬움, 미련, 되돌리고 싶은 감정 등으로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관계를 완전히 정리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감정은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다. 이미 마음에서 상대를 떠나보낸 이별을 맞은 사람은 상대에 대한 감정도 비교적 덤덤하고, 이별 자체도 견딜 만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감정의 끈을 놓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가 떠난 빈 공간이 점점 커지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간은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공허함만이 남아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들어하게 된다.  

우리는 왜 헤어지고 나서야 ‘그에게 난 어떤 사람일까?’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되돌아보게 되는 걸까.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상대방과 관계를 이어가는 중에 어쩌면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내가 그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상대방에 맞춰 배려하기가 힘들다. 나는 좋다고 한 행동이 상대에겐 아닐 수도 있고,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라 생각하는데도 상대는 치를 떨 수 있으니. 나는 정말 그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때로는 좋은 기억을 주고 싶었고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순간 그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과거의 실수나 잘못을 답습하지 않고 이별 후에 찾아오는 감정들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 사람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서 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누군가와 이별을 한다. 만나는 대상만큼 딱 그만큼 이별도 한다. 누구나 만남은 기쁘고 설렌다. 부모가 아기를 만날 때, 예쁜 반려동물을 맞이하거나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 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의 그 설렘의 감정은 단지 기분 좋음을 넘어서는 행복감이다.

그러나 그 관계가 영원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만남에 대한 행복감이 컸던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아픔과 슬픔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마 그 사람의 마음 한켠에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느낌과 감정이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 아프거나 좋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별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는, 지난 인연에 연연하고자 함이 아니다.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새로운 연인에게는 더 이상 과거와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비슷한 이별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사실 이별 후에는 후련함보다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후회가 더 많은 법이다. 많은 기억 중에서도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것처럼 특히 아픈 추억들이 많다. 아픈 기억은 켜켜이 쌓여 바위 덩어리처럼 단단해지지만 행복이란 감정은 순간 스쳐 지나는 꽃향기 같아서 잘 모아지지가 않는다. 어디다 담아 줄 수도 없다. 기억이, 마음이 잘 간직하고 소중히 다뤄야 그 추억이 오래간다. 좋은 추억, 나쁜 추억 모두가 공존하겠지만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이 있었다면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그것이 이별을 지나는 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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