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부부, 연인이 아닌 다른 삶의 동반자가 있다. 그들의 이름은 깐부와 던킨이다. 깐부는 2021년생, 던킨은 2022년생인 고양이들이다. 이제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들도 일생을 함께하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때로는 다른 어떤 가족보다도 더 깊은 애정을 공유한다. 지금 나에겐 깐부와 던킨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동반자들이다.
깐부와 던킨은 나와 한 방에서 지내며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고 집에 있을 때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짧은 기간 출장을 가는 일정 빼고는 거의 그들과 함께한다. 그리고 일에 지쳐 고단한 나에게 애교와 관심으로 위로를 해준다. 사람처럼 서로 주고받는 대화상대는 되지 못하지만 나와 함께 호흡하는 생명체로서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 같다. 가끔 ‘야옹~’이라는 대답을 하기도 하는데 그 ‘야옹’은 내 기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때가 많다. 실제 의미가 무엇이든 나는 그저 ‘나에 대한 애정표현’이거나 뭔가 요구사항이 있을 때라고 내 마음대로 이해해버리는 편이다. 또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얼마나 나를 아끼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잠을 잘 때도 내 신체 어딘가에는 자신이 맞대고 있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 그럴 때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잠이 더 잘 온다. 일을 끝마치고 방에 왔을 때 아무도 없는 적막함과 공허함만 가득하다면 나의 우울은 점점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고양이 두 마리를 반려동물로 입양한 것도 나의 우울증 때문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상담사 역할을 조금이나마 해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반려동물은 단지 내가 기분 좋을 때 이뻐만 해주는 대상은 아니다. 그들 또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을 책임지고 돌봐주며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감이 보호자인 나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반려동물 또한 감정이 있는 생명체다. 나의 필요에 의해서만 그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원할 때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그들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겠지만 그 이별의 순간이 오기까지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무한한 사랑만을 나에게 쏟는 깐부와 던킨이 있어서 행복하다. 가끔은 내가 그들에게 서운하게도 할 수 있고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선택한 그들의 안위와 행복을 지켜줘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삶의 동반자이니까.
그리고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동반자들이 있는데 바로 내가 돌보고 있는 경주마들이다. 경주마들은 깐부와 던킨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다. 각 경주마들마다 주인이 있다. 경주마 주인을 ‘마주’라 칭하는데 마주가 경주마를 나(조교사) 같은 사람에게 위탁하면 나는 그 말들을 훈련 시키고 경주에 출전시켜 좋은 성적으로 마주에게 상금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경주마는 나의 경제적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주인공이자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경주마는 동물이기 때문에 언제든 질병이나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경주마에게 문제가 생기면 경주에 출전하기가 어렵거나 출전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 경주마는 경마장을 떠나야 한다. 내가 돌보던 경주마들과는 예고 없는 이별을 맞이해야 할 때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런 면에서 경주마들은 나와 늘 만나고 함께 호흡하며 일하는 동반자들이기도 하지만 어느 한 마리 경주마조차 전 생애를 나와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스치는 인연일 수도 있다. 어쩌면 경주마들은 동반자이기보다는 동업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나는 사람보다는 동물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가끔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거나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때도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물들과 지내다 보니 혼자 술을 마시며 삭히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적막한 공간에 홀로 있는 것보다는 깐부, 던킨과 함께 살을 부비며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언젠가 이들이 없다면 이 공간이 얼마나 허전할까. 상상만 해도 두려워진다.
몇 해 전 14년간을 키우던 강아지와 이별을 했다. 그 친구 역시 내게 둘도 없는 삶의 동반자였다. 그 친구 이름은 루니였는데 루니는 암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갑자기 루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에게 잘해 준 기억보다는 미안한 마음만 자꾸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내가 좀 더 잘해줬다면 함께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깐부와 던킨, 그리고 경주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이별을 할 것이고 그 이별 후에 많은 감정들이 밀려올 것이다. 루니를 보냈을 때처럼 미안하고 아쉬운 감정만이 남는다면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별은 언제나 아프지만 이별 후에 슬픔만이 아닌 좋은 추억과 미소가 자주 떠오를 수 있다면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남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아낌없이 마음껏 사랑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