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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누구와도 사이가 좋을 수 없다

by 이신우

스무 살이 갓 되던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과거 학창시절의 친구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은 부끄러움이나 허물없이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다 보여주고 진실된 속마음을 얘기하더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나를 대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유리벽 같은 경계가 있는 것 같다. 아무 의미 없이 건넨 작은 얘기 하나가 몇 배로 부풀려져서 비난이나 괴변이 되어 내 뒤통수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고 뒷담화나 비난에 더 익숙하다는 걸 느낀 후 수많은 상처의 흔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쉽게 마음을 열 수 없게 되었다. 사람에 치어 의심도 많고 두려움도 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란 사람은 한번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어린아이처럼 바뀐다. 내 모든 마음을 주고 싶고, 그게 아깝지 않다고 느낀다. 작은 하나를 하더라도 온 마음을 담아버리니까. 그러다 보니 상대가 나를 배신하거나 떠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게 했던 순간들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줄 때는 상대가 그 마음을 거부하거나 언젠가 그런 나를 외면하고 떠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마음이 움츠러들고 순수하게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그래서 마음을 주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진다.


어린 나이에는 외로움이라는 걸 잘 느끼지 못했다. 외로움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 사람들은 많은데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그때마다 친구들을 찾아 외로움을 호소할 수도 없다. 친구들도 각자의 삶에 부대끼며 치열하게 살아갈 테니 말이다.

믿었던 사람을 잃고 외로움과 우울증에 몹시도 시달렸다. 삶이 무기력해지고 어디 하나 집중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삶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고 그런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하루하루 술로 외로움을 달래고 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그런 나 자신이 좋아 보일 리 없는 것은 당연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내가 상상하는 나의 모습 그 이상으로 엉망진창 못난이였다. 그저 나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만 보는 주위 사람들이나 동료들은 이런 진짜 내 모습을 모른다. 알리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나의 못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고 밝게만 보여도 한 사람만은 속일 수 없다. 바로 나 자신이다. 괜찮은 척을 하며 일상을 사는 동안 나는 숱하게도 나를 속였다. 나 자신에게 술을 권하고 루틴을 무너뜨리면서 점점 우울과 불안, 공황은 심해졌다. 무엇보다 그러는 동안 나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너는 왜 이 모양이니. 진짜 못났다….’ 나 자신을 미워하니 자존감도 바닥이었다. 남들이 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예민해졌다.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할 극한 상황까지 간 적도 있다.


외로움은 누가 채워 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나의 상태를 솔직히 적어보고 반성을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외로움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한 내 얘기를 가장 잘 들어줄 수 있는 상대도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나 자신임을 발견하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스스로 찬찬히 자신을 살피고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글로 적어봐.’ 그래서 나는 나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불편하고 우울했던 내 감정이 자연스레 좋아짐을 느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을 누군가로 채우려 한다면 그건 외로움을 극복하는 완벽한 방법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언제 어디서나 상대가 나를 맞출 수 없고 매 순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나 스스로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죽을 때까지 외롭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내 편이고 스스로에게는 속일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죽음까지 함께하는 유일한 내 편. 그런 나와 사이가 좋아지면 나를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나는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 것이고 그런 사람은 타인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뽐내게 된다.


외로움이란 얼마나 무서운 감정인지 안다. 그렇지만 그 공포에서 벗어나 우뚝 일어나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내가 넘어지려 할 때 내 두 발이 힘을 얻도록 용기를 주고, 마음이 울적하면 술 대신 산책을 권하고, 누군가가 너무 그리워지면 이불을 덮고 눕는 대신 펜을 꺼내 글을 쓰라고. 혼자여서 외롭다는 생각 대신 혼자이기에 지금 이 순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언제나 어디로든 훌쩍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갈 수 있는 자유에 행복한. 나는 이제 그런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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