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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신우 Dec 08. 2023

색과 맛, 냄새의 기억이 차오르는 그곳

누구에게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장소가 있다. 그곳의 맛과 냄새, 색깔은 어느새 조금씩 나에게 스며든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차오른다. 슬프고 아팠던 기억,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 그리고 파랗고 빨갛고, 맵고 짜고 달콤했던 기억까지. 수많은 장소들 중 오늘 주인공은 분당이다.


분당은 내가 하루 중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과천에서 차로 3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다. 차로 분당까지 가는 길은 다양하다. 몇몇 종류의 도로 중 나는 주로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멈춰 세우는 신호등 없이 원 웨이로 목적지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마치 일터를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분당은 나에게 친절하다. 분당 톨게이트 하이패스를 통과하면 “요금 900원이 지불되었습니다 “라고 먼저 첫인사를 건넨다.


분당의 봄은 파스텔 핑크색이다. 맛은 히비스커스 차의 기분 좋은 새콤함이다. 따스한 벚꽃향기 가득한 봄의 분당은 헬로키티의 큐티 핑크보다는 조금은 성숙한 여인의 파스텔 핑크가 어울린다. 여름은 스카이블루, 어디를 봐도 시원하고 가는 곳곳의 카페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뷰는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만큼이나 푸르다. 여름은 사실.. 어딜 가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부동의 1순위다. 가을의 분당은 뭐랄까, 쓰면서도 고소한 커피 위에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을 연상케 하는 우유 거품, 거기에 향긋하고 달콤, 시큼, 깔끔한 시나몬 가루가 흩뿌려진 카푸치노가 딱 가을의 분당이다. 하얀 눈을 드러내기엔 아직은 이른, 시나몬 가루가 겨울을 숨겨 놓은 듯한 분당의 가을은 한 잔의 따뜻한 카푸치노 같다.


지금은 겨울이다. 분당의 겨울은 진행형이다. 색깔은 아직 또렷하지 않다. 장작 나무가 타닥타닥 소리 내며 타들어가는 벽난로 앞, 양털 러그가 깔린 소파에 앉아있는 느낌이랄까. 묵직한 3샷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게 한다.


분당은 쓰고, 고소하고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커피를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시간을 카페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곳의 커피 맛은 어지간해서 실패하긴 힘들다. 머무르는 내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서 커피 맛이 거슬리지 않는다.


분당은 고단한 내 하루를 위로해 주고 나의 내일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에너지가 있는 곳이다. 내가 어느 장소,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그 자리에 있어주고 기꺼이 곁을 내어 준, 그리고 여전히 내 편인 이본 언니가 있는 곳이다.


내가 기억하는 분당은 이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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