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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Dec 17. 2023

다시 쓰는 고독

두서 없지만 오늘도 글 한 편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하더니 새벽 공기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머리가 꽝꽝 얼어버리는 듯하다. 경주로 안전 점검을 위해 경주로 훈련 개방 시간을 단축한다는 공지 사항을 확인하고 일찍 경주마 훈련을 끝냈다. 오늘은 마침 경주가 오후에 편성이 돼 있어서 오전에는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날씨가 추운 탓에 몸에 한기도 느껴지고 오래간만에 기수들이 사용하는 사우나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마 기수들은 체중조절이 필수인 직업이라 기수들이 사용하는 건물에는 사우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주말에는 기수들이 오전 일찍부터 경주를 위해 경기장으로 가 있을 시간이라 주말 오전 시간 사우나 시설에는 나 혼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편백나무 향이 가득한 건식 사우나, 보글보글 버블이 올라오는 온탕과 미니 수영장 같은 냉탕을 혼자  왔다 갔다 하며 누구의 눈치 볼 것 없이 맘껏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오늘은 평상시와는 다르게 부산에서 기수로 활동하는 후배 기수를 사우나에서 만났다. 후배가 서울에서 열리는 큰 경주에 출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우나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멀리 떨어져 지내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안부를 묻고 연락하는 사이라 예정에 없던 만남이 서로에겐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후배는 안 그래도 내게 만나자고 연락을 할 참이었다고 했다. 내 얼굴을 한 참 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많이 지쳐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이 최근이 아니라 본인 기억으로는 작년 이맘때쯤에도 이런 모습이었다고. 그런데다가 최근에는 sns 계정까지 자취를 감춰버리고 무슨 사달이 났구나 걱정을 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sns계정도 사라지고 마지막에 올라온 피드가 영 마음에 걸렸다나. 난 사실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그 후배에겐 맘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어찌 됐건 나를 염려해 주는 후배가 고마웠다.


후배는 동료 기수와 결혼을 하고 곧 있으면 네 살이 될 아들이 있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달리는 경주마 위에서 매주 결과로 평가받는 냉정한 승부세계에서 버티려면 혼자서는 힘들다는 후배의 말. 자신은 배우자가 있고 자식이 있어서 그들이 이 세계에서 버티는데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선배는 근처에 돌봐 줄 가족도 없는데 연애도 안 하고 있으니 맨날 그렇게 우울하고 힘든 거예요. 연애라도 하세요. 그래야 버텨요." 후배의 말에 인정하듯 난 소리 없는 미소만 지었다.


만 18세가 지나자마자 부모님 품을 떠나고 40대가 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지낸 적은 없다. 20살이 되고부터 돈을 벌기 시작한 나는 부모님 형편이 어려워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 그런 생활도 십수 년을 하다 보니 핏줄인 가족도 점점 부담으로 여겨졌고 내 스스로도 점점 지쳐갔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족이 그리워 쉬는 날이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이라도 잠깐씩 부모님댁을 찾곤 했지만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가족보다는 타인과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담도 없고 편했다. 그 사이 얼마 전 헤어진 사람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남들은 알 수 없지만 나는 혼자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1년 전 이별을 겪은 후 진정한 혼자가 된 게 아닐까. 그전에는 물리적 공간에 혼자 있어도 누군가에게 전화로라도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 위로하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지냈던 것 같다. 순간순간 외롭다는 감정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진정한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심심함을 못 견뎌서 외롭다고 착각을 한 듯하다. 심지어 sns를 통해 온라인으로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외로울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외로움에 취약할 줄은 몰랐다. 지금 나는 너무도 처절하게 외로움의 삶을 견뎌내고 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과 함께 지금도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순간순간 스쳐가는 직업적인 성과를 이뤘을 때 맛보는 기쁨도 잠시, 나의 외로움과 우울을 이기지는 못했다. 이별의 후유증으로 발견한 나약한 나 자신이 마치 인생의 패배자 같았다. 누군가와 만나 수다를 떨고 몇 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대화를 해도 막상 혼자 남겨진 공간은 공허함만 더 커져갔다.


오늘 만난 후배와의 대화가 잊히질 않는다. "외로워서 그래요. 연애라도 하세요."  나는 속으로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연애는 없다며 맘속으로 중얼거리며 엷은 웃음으로만 답을 했다. 사람 앞 일은 모른다지만 지금 당장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연애는 없다.' 단, 외로움은 탈출하고 극복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만 있을 뿐. 말장난 같지만 외로움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고독을 곁에 둬 보는 건 어떨까 싶다.  그동안 외로움과 술과 눈물과 함께 했다면 이제는 그들과 이별하고 고독과 책과 글쓰기로 그들을 대신하기로.


나에게 외로움은 견뎌야 할 고통이었지만 고독은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될 것도 같다. 책과 같이 놀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면 기꺼이 고독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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