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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Dec 13. 2023

대안이 없어서 글을 씁니다.

오늘도 글을 씁니다.

IMF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학교를 휴학하고 1999년 경마장이라는 곳에 왔다. 지금은 2023년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후보생 2년, 기수생활 10년, 조교사 생활은 13년째 해오고 있다. 큰 꿈을 안고 시작한 기수 생활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잦은 부상과 체중조절로 기수란 직업은 꿈을 꾸기엔 나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까스로 조교사 생활을 운 좋게 시작했고 처음엔 멋도 모르고 부상과 체중조절의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다. 무엇보다 경마장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최고의 직위를 얻게 되었다 나름의 뿌듯함과 안도감도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일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특히나 여성이 전무하던 곳에 내가 최초의 여성기수가 되어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고 여성 조교사로서도 최초, 그것도 홍일점으로 13년째 버텨오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30대 앞만 보며 달려오던, 그냥 닥치는 대로 해와서 그런지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중간중간 어려움은 있었지만 40 중반이 되는 요즘은 그동안 해오던 어리광 같은 수준이 아닌 정말 경마장을 떠나고 싶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동물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예측하지 못한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하고 그런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약간의 긴장과 불안은 늘 조교사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깔고 있을 것이다. 매주 치러지는  경기 성적에 따라 평가받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승부의 세계에서의 멘탈 또한 신이 아닌 이상 버티기 쉽지 않다는 건 나만의 일이 아닌 직업의 특성이 그러니 어쩔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13년째 약간의 번아웃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까지 버텨 왔는데 더 못하겠냐고도 싶지만 이렇게 지내온 것을 앞으로 또 20년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겁이 났다. 누군가는 20년이나 남았으니 얼마나 좋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니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대안이 없다.

내가 가진 직업은 늘 불확실하고 좋은 성과가 나기 보다는 안 좋은 성과에 대한 질타를 받을 일이 많다.  처음 조교사로 시작했을 때는 나름 열정도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앞만 보고 말 그대로 그냥 했다.  


3년 전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일상을 겪으며 내가 종사하고 있는 업종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가 늘 무언가 준비를 하고 사는 나에게도 큰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부업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생겨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큰 실패를 겪으며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이 왔었다. 아마도 3년 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지친 것 같다. 최근 1년 동안은 본업에도 집중을 못하고 성과는 당연히 좋을 리 없었겠지만 사람들에게, 특히 마주 들에게 늘 시달리며 살고 있는 삶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 보다 더 힘든 것은 이 일이 아니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라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한두 달도 아니고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이런 정신상태로 있다 보니 정말 죽어야 하나 살아야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은 써본다. 용량이 꽉 찬 메모리 카드처럼 어딘가 비워 놓지 않으면 무엇하나 입력이 될 것 같지 않아 이렇게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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