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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Dec 28. 2023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한 하루

내가 일하는 이곳 경마장은 요일마다 정해진 루틴이 있다. 일반적으로 월요일이라고 여겨지는 요일의 시작이 이곳에서는 수요일이 그날에 해당된다. 수요일엔 한 주의 시작이라 새벽 경주마 훈련과 오후에 가장 핵심적인 업무인 말 진료나  비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일 말고는 정해진 일정은 특별히 없다. 한 주를 계획하는 일이 어쩌면 수요일에 하는 핵심적인 일이 아닐까.


경주마 새벽훈련과 오후 말 진료는 화요일을 제외한 전 요일에 해당되는 필수적 업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과 부산 두 곳에 경마장이 있는데 내가 있는 서울 경마장에서는 목요일에 주말에 시행되는 경주 확정 편성을 공표하는(오전에 각 팀에서 출전 신청을 하면 오후에 경주 확정 공표를 함) 요일이다. 금요일은 경주마로 데뷔하기 전 예비 경주마들이 경주에 뛸 수 있는지 기본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주행능력 심사가 있는 날이다. 그리고 서울경마장의 경우 토, 일요일은 경주가 열린다. 경주가 끝난 다음 날인 월요일은 새벽훈련이 끝나면 당직자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과 경주마들은 화요일까지 정해진 스케줄 없이 쉴 수 있다. (나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제주도에 있는 목장을 방문한다.)


서울에 있는 경마장과 부산경마장은 요일별로 조금 차이가 있는데 내년부터는 시스템을 일원화하기 위해 여기서 목요일에 진행되던 경주 출전 신청을 수요일로 변경을 한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한 주의 시작부터 바빠질 것 같다.


오늘도 새벽 경주마 훈련을 끝내고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되는 경주 출전 신청을 끝내고는 필수 업무를 제외한 자발적으로 일을 만들어서 하거나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너무 비생산적이거나 게으른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지난 수십 년간 나의 삶의 패턴을 되새겨보니 나란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너무 게으르다 싶을 정도로 나를 놓아버리는 순간 그때 정신을 차리더란 것이다. 그래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다시 돌아올 나를 알기에.


오늘은 어제 같은 끔찍한 뉴스속보나 자극적이거나 혹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슈는 없었다. 오후에 경주마를 살피고 돌아와서는 전자책에 저장해 둔 책을 보다가  잠깐 졸았다 깼다를 반복하며 흘러가는 시간에 나를 맡겨 놓았다. 침대에 몸을 반쯤 기댄 채 잠이 들었는데 잠시 눈을 떠보니 나의 반려묘 깐부 역시 곤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깐부는 내가 침대에서 잠을 잘 때는 자주 나의 팔뚝을 끌어안고 잔다. 나와 어딘가 닿아있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줘서인지  팔을 끌어 안거나 젤리 발바닥을 나의 맨살에 얹고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영화 ET에서 손가락 접선을 하듯이. 깐부의 그런 행동은  그(깐부)보다  내가 더 큰 수혜를 얻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정서적으로 더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깐부와 서로 코를 비비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했다. 내 코와 맞닿은 깐부의 촉촉한 코의 감촉이 좋았다.


약기운 때문인지 요즘은 낮잠을 자는 횟수가 늘었다. 아무 일 없이도 마냥 불안하던 마음도 특히나 오늘은 확연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오히려 '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지?' 싶을 정도로 불안감을 느끼지 못했다.


책도 보고, 낮잠을 자면서도 사랑스러운 반려동물과 한 공간에서 서로의 호흡을 공유하고 체온을 나누면서 보낼 수 있었던  하루가 감사하다.


특별할 것 없는 특별했던 하루. 내일도 오늘 같은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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