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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Dec 27. 2023

행복하자던 나의 아저씨

먹먹하다.. 가슴이 미어진다.. 숨이 멎을 듯 아리다.. 그 이상의 표현은 없을까. 형용할 수 없는 이 감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까. 답답하다. 잠시 숨을 참고 눈을 감았다. 호흡은 깊고 거칠다. 손끝의 감각은 예민하며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이 어지러이 떠다닌다.


오전에 병원 예약이 있어서 삼성역까지 전철을 이용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되도록이면 특히나 서울 시내로 볼일이 있어서 외출을 할 때는 직접 운전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공황, 불안 장애를 앓고부터 긴 터널이나 막히는 도로를 운전할 때 위험했던 몇 번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주로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내겐 너무 매력적이라 직접 운전을 안 하는 부분도 있다. 직접 운전을 해야 할 때는 오롯이 운전에만 집중을 해야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유튜브 같은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책을 보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다. 요즘은 영상보다는 전자책을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시간이 즐겁다.


삼성역 거리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여운이 남아있고 한껏 화려하게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 장식은 크리스마스가 이틀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 지나간 크리스마스지만 올해의 크리스마스 사진 한 장은 스마트폰 사진첩 속에 살며시 저장 해놓았다.

삼성역과 병원 사이에 항상 들르는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은 'camel 8'인데 8의 의미는 모르겠다. 사실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다. 이 카페에는 점심시간이면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카페다. 이 카페만의 시그니처 커피가 있다고 하는데 커피 맛을 잘 모르는 나는 어느 카페를 가던지 따뜻한 아메리카노다. 아무리 맛있고 독특한 시그니처 커피라며 권해도 취향이 확실한 나는 곁눈질 한 번 없이 단호하게 "따아요"이다. 흰 우유를 좋아하지만 커피와 섞인 라테는 입맛에 맞지 않고 크림이 올라간 카페모카는 달아서 싫다. 예전 그  사람이 늘 마시는 카푸치노는 그 사람의 취향을 닮고 싶어서 한동안 따라 마시기는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카푸치노도 마시지 않는다.


언제나 병원 예약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병원 환자 대기실에서 커피를 다 마시고  내 이름이 호명되면 의사선생님과 상담이 진행된다. 최근 처방받은 약도 잘 맞고 약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먹어서 그런지 내 상태가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 약 처방은 변경하지 않고 우선 유지해도 되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병원을 나왔다.


평소 같으면 약을 받아서 곧장 전철역으로 향했을 텐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코엑스몰로 발길이 향했다. 좀처럼 밖을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은 무슨 생각에서 발길이 그쪽을 향했을까. 코엑스몰 실내 거리는 어느 방향을 가더라도 별마당 도서관은 지나치게 되어있는 구조 같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는 알 수 없음) 의도한 건지 아닌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내 발길이 별마당 도서관에서 잠시 발길이 멈췄다. 건물 몇 층 높이만큼 책들이 책 벽을 이루고 여전히 별마당 도서관의 금색 트리는 변함없이 꼭대기에 별을 반짝이며 별마당 도서관 상징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곳을 올 때마다 금색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곤 했는데 오늘은 이곳의 사진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어떤 신간이 나왔나, 어떤 책이 요즘 인기가 있을까 궁금해서 이곳저곳 둘러보긴 했지만 왠지 마음이 어지럽게 요동쳐서 짧게 머무르고 발걸음을 돌렸다.  혼자 서점을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콘서트 관람을 가는 일은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여전히 혼자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서겠지. 공허한 마음이 우울로 채워질까 봐 두려워 얼른 전철역으로 향했다.


매서운 추위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세 시간가량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시선을 빼앗기는 사소한 행위조차 내 삶에서는 피곤함인가 보다. 집에 오자마자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자세로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며 잠시 쉬어보려 했는데... 네이버 뉴스 속보에 내 눈을 의심할 만한 기사를 보고 순감 숨이 멎었다. 따뜻한 목소리가 멋있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선이 곱다고 생각한 얼굴을 가진 '나의 아저씨' 이선균 배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보고 잠시 공황 증세가 왔다. 연예인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에게도 배우 중에서 나름 좋아하는 배우가 손에 꼽을 만큼은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이선균 배우다. 나의 인생 드라마 중 한 편도 '나의 아저씨'인데..


최근에 그분이 불명예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뉴스를 종종 보기는 했어도 구체적인 사건 전말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어떤 사정인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죽음과 맞바꿀 만큼의 고통을 겪고 있었겠다는 추측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뿐.


이런 사건들이 뉴스에 나올 때면 어김없이 지난날 나의 지인들이 유사하게 삶을 마감했던 끔찍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2005년에 후배 기수 명화가, 2010년에는 또 다른 후배 기수 진희가. 2017년에는 직장에서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우리 마방 팀장 재영 씨가. 2019년에는 후배 중원이와 성곤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오랜 시간 가깝게 지낸 지인들의 비보가 그것도 사고가 아닌 스스로 삶을 마감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먹먹함과 미어져 오는 온 세포의 아림은 오늘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고스란히 그때 그 고통의 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오늘의 시간은 멈추었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정말로 목숨과 비할게 뭐가 있을까. 스스로의 가치를 상실하고 존엄을 잃었다고 느끼거나 목숨만큼 중요하게 여긴 자존심이 훼손당해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말큼 완벽함을 자부하는 강직한 사람이거나, 또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 지위, 인지도에 영향을 받는 직업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상실했을 때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고 여겨 스스로 소멸을 선택하는 징벌인 것일까.


나 역시도 고백을 하건대 그런 끔찍한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그때는 누군가가 힘들게 해서도 아니고 내 스스로가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고 감당이 안 될 때였던 것 같다. 그때마다 '이왕 죽을 거 맘대로 살아보고 나 죽자'라는 생각으로 다시 맘을 고쳐먹은 적도 여러 번.(지금은 누구보다 잘 살고자하는 의지가 충만함).무엇보다 먼저 잘못된 선택을 하고 떠난 지인들의 남겨진 가족을 보면서 너무 무책임하고 나약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평생의 고통을 안겨주고 떠난 죄인 중의 최악의 중죄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함께한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죽어도 남겨진 가족은 그리움에 수년간을 힘들어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하물며 인간이 말하지 못한 고통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홀연히 떠나버리는 그 이상의 비극이 또 있을까. 떠난 자는 말이 없이 떠나겠지만 살아내며 견뎌야 하는 남겨진 자들은  말없이 떠난 망자의 힘들었을 아픔까지 떠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나의 아저씨!' 오늘은 당신의 따뜻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구슬프게 귓가를 맴돕니다. 그곳에서는 편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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