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도 관리하기 나름

by 이신우


주말에 경기가 끝나면 경기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동료나 지원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지난 한 주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런 시간들도 아득히 먼 옛날같이 느껴진다. 약 10개월 전부터는 경기가 끝나도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저녁을 먹은 일이 거의 없다. 지금도 여전히 술이 마시고 싶으면 조용히 혼자 보고 싶은 영상을 틀어 놓고 혼술을 하며 때로는 자축을, 때로는 자책을 하며 혼자 보내고 있다.


주말의 예민함과 불안은 25년째 매주 찾아오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1월 마지막 경주가 있는 오늘은 특히 더 예민하고 불안했다. 1월에 우승을 못한 적이 12년 전 2012년 1월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준비한 경주는 딱 한 경주였다. 경주를 준비하는 내내 초조하고 극도로 불안했다. 어느 정도 우승 가능권에 있는 말이었지만 결과는 5등. 12년 만에 우승이 없는 1월의 성적으로 나의 이력에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어제저녁에는 가끔 먹는 수면제도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새벽에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늦게까지 잠을 설치다가 마지못해 수면제를 먹으면 백 프로 새벽에 일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중요한 경주가 있는 날에는 더더욱 일찍 나가서 출전 예정인 말을 점검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선택을 했다 밤을 새우기로. 어차피 경주가 끝나면 결과야 어찌 됐든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의 여유는 주어지니까.


밤을 새우는 동안 흥미 있는 영상을 볼 게 있나 싶어서 ott와 유튜브 플랫폼을 왔다 갔다 해보지만 눈은 영상에 있어도 정신은 오롯이 영상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영상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볼만한 책이 있는지 도서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관심 가는 책이 있으면 바로 구매해서 볼 수 있는 E-BOOK으로 주로 책을 사서 본다. 도서 검색을 하는 중에 눈에 띄는 책 제목을 발견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이었다. 제목이 흥미로왔다. 책 저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에세이였다.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저자가 다니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대화의 기록을 통해 저자의 치유에 대한 의지와 과정을 전달하는 형식이랄까? 암튼 의외였다. 책을 읽는 다기보다는 의사와 우울증 환자와의 대화를 참관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일 읽는 내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자가 눈물이 정말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저 정도로 눈물이 많으면 본인의 일상생활도, 주변 사람도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정말 우울할 때는 누군가가 내 이름만 불러도 말 한마디 못하고 몇 시간 동안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같이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소리 없는 눈물이 정말 많이 흐른다. 누군가 내 얼굴을 보지 않는 이상 내가 우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눈물만 줄줄 흘린다. 나도 이유는 모른다. 울면서 말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나를 아는 지인 들은 눈물, 콧물 닦을 휴지를 조심스럽게 내 앞에 챙겨주고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각자 일을 하면서 그냥 나를 내버려 둔다. 오랜 관계 속에서 알게 된 그들이 나를 배려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한참 후 내가 진정이 좀 됐다 싶으면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나를 대해준다. 그런 그들이 감사하다.


나의 우울은 어릴 적부터 있었다. 나 역시 3년 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우울은 정신력이 약해서 생기는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다. 2021년 3월 즈음으로 기억을 한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심장이 터질 듯한 증상을 보이며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로 실려간 적이 있다.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혈압을 쟀는데 최고혈압이 200이 넘게 치솟았다.


우리 집은 혈압에 대한 가족력이 없다. 평소에도 혈압은 늘 정상이었는데 그날 나는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 후 심장내과, 순환기 내과, 신경정신과 등등 다양한 진료부서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결론은 공황발작으로 인해 다양한 신체증상들이 나타난 것이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내가 공황장애라고?' 나 스스로 믿지를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좀 더 큰 병원에서 더 정확한 검사를 하고 싶었다. 서울 삼성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센터에 예약을 하고 정밀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검사 이름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심리검사를 비롯한 여러 검사를 한 후 나의 치료를 담당하실 선생님을 대면하게 되었다. 당시 검사 검사 결과로는 나는 우울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진단이 나온 것이다. 지금은 대형 종합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에서 여전히 진료를 받고 치료 중이다.


나는 두 명의 오빠가 있다. 큰오빠는 내가 앓고 있는 정신질환은 없는 것 같다. 둘째 오빠는 조현병을 앓고 있다. 27년째 앓고 있다. 정신질환이 유전의 영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두서없이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우리 주변에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내가 앓게 된 병들에 대해 들었을 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또한 가족 중의 한 명이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나 역시 유사한 진단을 받았을 때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어했다. 여전히 안 힘든 것은 아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자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낼 정도로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울과, 불안, 공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 병이란 걸 안다. 그러나 그런 병을 앓고 있다고 광고를 하듯 티를 낼 필요는 없지만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내가 아프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살피고 보살필 수도 있다(요즘 내가 그렇듯이). 이러한 정신적 질환은 죽을병이 아니다. 잘 관리하면서 치료하면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픈 나를 돌보면서 요즘은 누구보다 나와 친해지려고 더더욱 애쓴다. 그리고 조금씩 사이가 더 가까워짐을 느낀다.

출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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