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니어처의 세상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정상보다 작은 미니어처의 세상. 그곳은 바로 ‘경마장’이다. 세계 어느 나라 경마장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키가 유난히 작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경주마를 타고 달리는 트랙의 주인공인 ‘기수’다.
경주마는 빠르게 달려야 한다.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을 태우는 것이 유리하다. 60kg이 넘는 사람이 경주마를 타게 되면 말의 다리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위험하다. 그래서 키가 작고 몸이 가벼운 것이 기수에게는 유리한 조건이 된다.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키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가 된다. 나 역시 160cm가 넘지 않아 그게 늘 불만이었다. 학창 시절 키 큰 친구들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하는 게 어찌나 싫은지. 키 작은 원망을 부모님께 돌려 부모님 마음을 무척이나 상하게 하기도 했다. 게다가 통통하기까지 하니 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마른 체형을 동경해왔지만 한 번도 그런 체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도 체격이 큰 편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도 유전적인 영향이었지 싶다. 그런 내가 기수가 된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기수라는 운명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IMF 구제금융 시절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나는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수능을 준비하는 내게 경마장 기수라는 직업에 대해 알려주신 게 문득 떠올랐다. 태어나 경마장이란 곳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기수라는 직업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몰랐다. 구경이라도 할까 싶은 생각에 사촌 오빠, 친구와 함께 주말에 경마장을 찾았다.
경마장을 처음 갔을 때가 기억이 난다. 1999년 2월 28일, 추운 겨울이었다. 경마장도 처음이었지만 사실 말이라는 동물도 처음 봤다. 경주마 위에 올라 있는 기수도 처음 보았다. 하얀 백마 위에서 멋진 유니폼을 입고 있는 기수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아직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챙겨간 필름 카메라로 멋진 경주마와 기수들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훗날 사진 속 기수는 나의 절친한 선배님이 되었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
무리 지어 경주로를 달리는 말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환호하고 함성을 지르는 수만 명은 되어 보이는 경마팬들. 경주마는 경마팬들에게는 연예인 못지않은 한마디로 스타들이었다. 말들이 경주로를 울리며 달리는 발굽 소리의 진동이 내 심장에서 뛰는 듯했고, 그 벅참과 두근거림은 집에 와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래, 꼭 기수가 되자.’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기수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기수 후보생 시험을 봐야 하고, 시험에 합격하면 2년간 합숙을 하며 기수로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한 후 정식으로 기수 시험을 보게 된다. 후보생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절대적으로 좋아야 한다. 체육학과에 진학한 나로서는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 문제는 체력이 아니었다. 신체 조건이 맞아야 체력시험도 볼 수 있었는데, 신장은 168cm 이하, 체중도 48kg 이하여야 했다. 신장은 조건에 맞았지만, 당시 58kg이던 내가 48kg 조건을 맞추려면 최소 10kg은 감량해야 했다. 그것도 두 달 만에.
일단 마음을 정했으므로 극한의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아마 그 시절 내가 했던 필사적인 노력 정도라면 이 세상에 못 이룰 게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혹독한 감량 끝에 나는 48kg을 만들었고, 생애 처음 마른 체형이 되었다. 그리고 무사히 신체검사를 통과한 후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수한 성적으로 기수 후보생에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꿈꿔오던 대학교 캠퍼스의 낭만은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곧바로 기수 후보생이 되었다.
교육원 입소 날 최종 합격자 2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입소자를 축하하기 위해 현역 기수들이 그곳에 왔다. 그들을 보는 내 눈은 커질 대로 커지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여긴 정말 미니어처의 세상이구나!’
나와 함께 입소한 동기생 25명 포함, 수십 명의 기수 선배들 사이에서 나는 장신에 속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까. 아주 약간 통통한 사람도 한 명 없이 모두 날씬했다. 당시 유명했던 선배님들을 말 위가 아닌 땅에서 마주하자 마치 유명 연예인을 축소해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군살 하나 없는 몸매는 비율도 좋아서 어느 연예인 못지 않게 멋있었다. 선배들을 보니 후보생을 통과해 반드시 기수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공고해졌고, 2년간의 교육을 마친 후 그 생각을 현실로 이루었다.
이상하게도 평생 콤플렉스였던 작은 키가 기수가 되면서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오히려 부모님께 너무 크게 낳아주지 않아서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타고난 체형이 통통해 체중 감량은 필수였겠지만, 아마 기수가 되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뚱뚱과 통통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지 않았을까. 지금껏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기수라는 직업이 바탕이 되었다 생각하니 이 역시 감사했다. 그리고 나보다 키가 큰 사람들이 그다지 더 이상 부럽지도 않았다. 말 위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멋있는 나였으니까. 작은 키로 인해 경주마 기수가 될 수 있었고 기수 생활 은퇴 후에는 경주마를 돌보고 훈련하는 스포츠팀의 감독격인 조교사로 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어처의 세상 경마장에서, 더는 나의 작은 키는 콤플렉스가 될 수 없었다. 그곳은 내 꿈을 이루고 나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지켜준 공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콤플렉스가 있겠지만, 자신을 어디에서 세워두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는 나를 이끄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꿈을 좇았다. 그 뜨거운 선택이 콤플렉스로 가득 차 있던 내 삶을 감사의 삶으로 바꿔놓았다. 어려움이 닥친다면 그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운명을 찾는다면 위기든 콤플렉스든 혹은,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멋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