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우 Mar 25. 2024

구급차를 보내며. .

행복을 찾아서

휴일 늦은 오후였다. 사무실 청소가 거의 끝날 무렵 쓰레기통을 비우러 외부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주차장에 엉거주춤 서 있는 동료 한 명을 발견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급하게 뛰어가 상태를 살폈다. 창백한 얼굴, 굳어있는 몸.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간단한 대답조차 힘들어 보였다. 우선 구급차를 부른 후 쓰러질 듯한 그를 의자에 앉혔다. 구급차가 도착하자마자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채로 환자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휴일이라 회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응급구조사와 함께 지역에서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고 발견 당시 환자의 상태를 응급구조사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도로 위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급하게 병원으로 달리는 구급차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만으로도 공포감이 드는데 얼마나 위급한 환자가 구급차에 타고 있을지 상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수십 번 구급차에 실려 갔었기에 언제든지 구급차를 탈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이 있다. 경마장의 새벽과 경주가 열리는 주말이면 구급차는 항시 대기에 들어간다. 경마장 사람들은 멋있고 매력적인 말과 함께 경주로를 달리지만, 구급차는 언제 부상을 입을지 모른 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우리를 따라 함께 달린다. 불안과 두려움, 안심이 공존하는 구급차.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타고 싶지는 않다.


기수 시절, 경주마 훈련이나 경주 중 각종 사고로 인해 구급차에 실려 간 경험이 수십 번이다. 사고의 유형은 무수히 많다. 500킬로그램을 육박하는 경주마. 거구의 동물을 다루며 그를 타고 달린다는 것은 너무도 신나고 매력적인 일이지만, 자동차 사고만큼이나 경주마 사고는 위험하다. 게다가 살아있는 동물은 내 통제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아서 상상 못 할 사고도 흔하게 일어난다. 마방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는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까 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 않는다. 살아있는 생물을 돌보는 일은 24시간 운영되는 병원과도 같다.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막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총책임자인 조교사는 24시간 전화기를 한 몸 같이 생각하고 살아야한다.


가장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던 2006년 10월 29일 일요일. 헤럴드경제 배 대상 경주였다. 큰 대상 경주에 출전한다는 설렘과 동시에 긴장감을 안은 채 발주 신호와 함께 출발대를 나왔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내가 기승한 2세 암말은 ‘산소아침’이었다. 4코너를 돌고 직선주로에 진입하며 산소아침에게 “가자!”라고 외쳤다. 산소아침은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순간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잠시 후. 직진해야 할 산소아침이 갑자기 사선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할 틈도 없이 극도의 공포가 몰려오는 순간, 산소아침은 앞다리가 부러지며 쓰러지고 말았다. 말 등에 타고 있던 나는 낙마했고, 그 후 산소 아침에게 깔리는 2차 사고가 일어났다.

그날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코와 입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아프다는 비명조차 지를 힘이 없었다. 경기마다 말 무리를 뒤따르던 구급차는 곧바로 나를 실어 병원으로 향했다. 척추뼈와 코뼈가 부러지고 그 외 여러 곳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몇 개월이나 병원에 있어야만 했다. 그 이후에도 잦은 부상으로 수십 차례 실려 갔던 기억이 있다.


조교사가 되고서도 여전히 경주마 훈련을 하고 있지만 큰 부상은 없다. 다행히도. 그렇다고 구급차 신세를 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에는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이후 고혈압과 공황장애,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치료 중이다. 조교사가 되면 좀 나을 줄 알았지만,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은 오히려 더해진 느낌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조교사도 마찬가지로 마주, 기수, 마필 관리사 등의 관계 속에서 많은 힘듦을 겪게 된다. 또한 경주의 성적과 관련한 극한의 경쟁, 마방 운영을 총 관리하고 책임지는 위치이기에 극도의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 켜켜이 쌓였던 정신적 충격이 목숨을 앗아갈 위험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지난 10월에는 새벽에 출근을 하기 위해 사무실 문을 나서던 동료가 복도에서 쓰러졌다. 경마장 내에서 항시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뇌졸중 초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 3개월 병가를 내고 최근 복귀해서 다시 업무를 시작한 모습을 보았다. 다른 몇몇 동료도 갑작스러운 뇌졸중 진단으로 면허를 반납하고 여전히 입원 치료 중이거나 겨우 조교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루라도 구급차를 보지 않는 날이 없지만, 여전히 무섭고 익숙해지지 않는다.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선택한 나의 직업. 치명적인 매력만큼 감수해야 할 부상의 위험과 스트레스의 무게. 휴일에 쓰러진 동료의 보호자로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 동료의 힘들어하는 얼굴에서 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에 접수를 하고 대기하는 동안 동료의 가족이 왔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가족은 나에게 “이렇게 힘든 직업이라 어떡해요. 그렇다고 그만두라고도 못하겠고. 진짜 못할 짓이에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 직종에 종사하는 분의 가족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겁니다.” 이 말 한마디밖에.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그 가족의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들어와 나의 마음도 아팠다.


피터 드러커가 “우리는 일을 통해 인간이 되어간다.”라고 했다. 나 역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인 걸까? 그토록 힘들었는데 왜 25년 동안 이 일을 해온 걸까? 남은 20년을 더 해보면 알 수 있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가족에게 나머지 일을 부탁하고 택시를 타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급하게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나왔는지 발이 추웠다.


평생 하나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 나는 왜 이 하나의 길을 이토록 긴 시간 걸어온 걸까. 처음에는 좋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이 길을 걸어오고 보니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건 아닐까. 이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현실감이 떨어지고 ‘내가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두려움이 있다. 일이란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냥 생계를 위한 도구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변하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나에게 일은 원래 꿈이었으나 이제 이 일은 나의 생계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잘 유지하면서 내가 좀 더 좋아하는 것들을 해나가는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 좀 더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삶. 그게 어떤 길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조금씩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도전하면서 그 길을 찾아 나가고 싶다. 그게 무엇이든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길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