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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Apr 20. 2024

기억은 이성이고 추억은 감성이다

한국을 떠난 지 6일째다. 한국을 떠났다는 표현보다는 미국으로 출장을 온 지 6일째란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미국 출장의 목표는 달성을 했다. 사고 싶었던 말 두 마리를 일사천리로 살 수 있었다. 대부분 사고 싶은 말을 경매 번호에 따라 전략을 잘 세우고 앞 번호에 배치된 말을 사지 못할 경우 차선책으로 뒷 번호 말을 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꼭 사고 싶었던 말 두 마리를 놓치지 않고 한 번에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었다.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번 미국 출장은 예감이 좋다. 우선 꼭 원했던 말을 사게 되었으니.

 4월의 플로리다. 여러 기억들과 추억들이 있는 곳. 올 때마다 새롭게 만난 경주마 친구들과 그리고 함께한 지인들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올 해는 거의 혼자 보낸 기억이 저장되고 추억이 간직될 것 같다. 6일 동안 집중적으로 주요 업무를 하고 난 후에는 여유로운 시간이 많았지만 책이 읽히거나 특히 글이 써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여행을 온 게 아니다 보니 일에 대한 강박과 예민함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지금은 플로리다 올랜도 공항에서 LA로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니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미국 일정을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할 수 있어서 남은 며칠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LA여행을 하고 가기로 결정을 했다. 올랜도에서 LA까지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린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다 보니 비행기로 가도 5시간 동안 가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은 올랜도 공항에서 LA로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쓰고 있다. 나름 장시간 비행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눈앞에 보이는 와인 바가 나를 유혹하며 손짓했다. ‘한 잔 하고 비행기에서 푹 자버려.’ 누군가가 귓속말로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올리브 오일에 어우러진 토마토 요리의 냄새도 결국 나를 와인바로 이끌었다. 레드와인 한 잔과 브루스케타를 주문했다. 레드와인은 특별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피곤함을 달래 주고 잠들기에 딱 좋은 나른함을 줄 정도로는 충분했다. 토마토 부르스게스타는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비주얼이 달라 보였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바게트빵 위에 달게 잘 구워진 방울토마토 위에 곁들여 뿌려진 바질, 그리고 발사믹글레이즈  조합이 일품이었다. 와인이 주연이 아닌 안주가 주연이 되는 순간이었다. 브루스케타가 너무 맛있어서 아껴서 조금씩 베어 물다가 그 맛에 점점 더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와인 한 잔을 더 주문시켰다. 입이 황홀했고 마음이 즐거웠고 바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덩달아 춤을 추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자 LA행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는 77번 게이트로 향했다.

올랜도 공항에서 LA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먹었던 와인과 토마토부르스케타. 그리고 바에 앉아서 글을 쓰는 2024년 4월 플로리다의 기억은 저장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즐겁고 행복했던 나는 추억으로 간직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기억은 이성적이고 추억은 감정적인 것 같다는. 기억이 사진이라면 추억은 사진을 보며 느껴지는 그때의 기분과, 맛과 냄새와 공기가 그 기억에 더해진 것이 추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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