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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Oct 10. 2019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중학교 여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다. 같이 붙어 다니며 어울리면서도 서로 성격이 안 맞는다고 속으로는 스트레스를 받는 관계도 있고, 어제 친했던 친구가 오늘의 원수가 되는 일도 있다. 겉보기엔 잔잔하고 평화로운 것 같지만 눈빛으로 무언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여학생들의 성향이 때리고 터지는 남학생들보다 어렵다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이전 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싸워서 피가 날 때마다 돌아버릴 것 같았던 내게는 훨씬 잘 맞는 것 같다.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으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시지만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보다 더 친구 관계에만 몰두하니 다른 때가 아닌 이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사춘기가 올 수밖에 없는 것도 같다.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혼자가 되는 것이다. 교실에 자리가 지정되어 있으니 수업 시간에는 어찌 되었건 자기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되는데 쉬는 시간에 이야기할 친구가 없다는 것, 이동 시간에 함께 걸어갈 친구가 없다는 것,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끔찍하다고 한다. 실제로 작년에 우리 반에 있었던 한 학생은 수업시간엔 누구보다 대답도 크게 하고 늘 웃고 있었다. 그런데 3월 2주가 지나가고부터 어머니 역시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신다면서 매일 같이 연락을 해오셨다. 내용은 아이가 친구가 없어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아이가 스스로 느끼는 것처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특유의 활달함으로 반 아이들과 전반적으로 잘 어울렸다. 그런데 문제는 소속된 무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학년이 올라오면서 재빨리 무리가 형성됐는데 그 그룹이 다 짝수였다. 4명, 6명씩 어울리는 무리가 만들어지면서 그 어떤 그룹에서도 이 아이를 받아주는 걸 망설였다. 


 버스에 의자가 두 개씩 붙어있는 게 아이들에게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기껏 해봐야 1년에 두세 번, 버스를 타고 체험학습을 갈 텐데 그때 혼자 앉는 것이 그렇게도 무섭단다. 급식실에서 두 명씩 마주 보고 앉다가 홀수가 되어 자기 앞자리가 비어 있는 게 그렇게도 두렵단다. 이런저런 말들로 아이들을 겨우 설득해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그룹에 넣어줬지만 두 달 뒤에 결국 아이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룹에는 속해 있었지만 급식실에서 항상 비어있는 앞자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급식실에서 앞자리가 비어있어도, 저 멀리에서 혼자 밥을 먹더라도 다른 친구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말은 아이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쩌면 실제로 누구의 앞자리가 비어있는지 눈여겨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함께 있어도 다 혼자인 갈매기와 비둘기와 나


 요즘 중학교 여학생들의 교우 관계가 스펙터클하고 다이내믹한 것처럼,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학기 초에 형성되었던 무리는 수련회에 다녀오면 달라져 있었고 학기 말에는 또 달라져 있었다. 학기 초에 친했던 친구와 학기 말에 친했던 친구가 달랐던 적도 있다. 


 나는 중학교 때 도시락을 먹던 세대이다(그래도 초등학교 고학년, 고등학교 때는 급식을 먹었는데!). 책상 두 개를 붙여놓고 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여서 각자 자신의 밥통을 들고 다닥다닥 붙어 서서 점심을 먹었다. 책상 위에 놓인 반찬통이 열릴 때마다 열 개의 손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어느 순간 포크를 들고 달려오는 남학생들의 공격도 막아내야만 했다. 매일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셨던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따뜻한 밥이 가득했던, 엄마의 사랑까지 듬뿍 들어있었던 도시락은 날이 차가워지면 어김없이 무거워졌다. 무거운 책가방에 신발주머니, 거기에 도시락 가방까지 들고 다녀야 했던 게 지금과 비교하면 꽤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시간보다 점심시간이 재미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수업 중 선생님 몰래 도시락 속 떡갈비나 용가리 치킨을 꺼내 씹지도 않고 삼키며 짝꿍과 눈웃음을 주고받았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중학교 2학년 때 도시락을 같이 먹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서로 불편하다고 느꼈다. 모여 있는 친구들이 사이가 모두 원만했다면 그 정도 뭐가 불편했겠냐마는 다른 친구도 아닌 바로 내가 짝꿍이랑 말다툼을 하게 되면서 도시락 먹는 그룹에 분열이 오기 시작했다. 당시 그룹에서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던 짝꿍은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은 내일부터 밥을 따로 먹어줬으면 좋겠다는 쪽지를 전했다. (여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속마음을 쪽지로 많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교실에 떨어져 있는 쪽지를 잘 주워보면 관계의 역동성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큰 그룹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게 무엇보다 두려웠고 반 아이들의 시선이 걱정됐던 나는 차라리 밥을 안 먹겠다고 했고 한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때 나머지 한 친구가 셋이 밥을 먹는 게 뭐가 어떠냐며 우리를 끝내 설득했다. 책상 하나에 오손도손 모여 앉은 우리 셋이 오붓하게 점심을 먹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큰 그룹에서 같이 점심을 먹던 아이들이 한 명씩 떨어져 나오면서 학기 중간쯤 되니 오히려 우리 셋이 시작한 그룹이 더 커져 버렸던 기억이 난다.




 혼자가 되는 게 무섭다는 아이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는 게 맞을까. 나는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상황에 따라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도 많이 했고 인간은 누구나 다 혼자라는 말도 많이 했다.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들은 말을 종합해서 도대체 뭐가 진실이냐고 따지러 오면 잠깐은 얼굴이 빨개질 것도 같다. 그래도 잘 둘러댈 수 있으리라.


 나의 솔직한 입장부터 밝히자면 나는 후자에 생각이 가깝다. 어려서는 나 역시 혼자가 되는 걸 그 누구보다 두려워했다. 매년 2월이 되면 친한 친구들과 다른 반이 될까 봐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올 정도였다. 학년 초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앉아있는 일이 숨 막혔다. 학원을 옮길 때마다 공부는 둘째치고 또 새로운 아이들과 어떻게 지낼지 걱정을 했다. 미처 숨기지 못한 스트레스가 내비칠 때마다 엄마는 단호하게 인간은 누구나 혼자인데 바보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며 나무라셨다. 그 영향이 컸을까.


 점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다. 대학교 때부터는 오히려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공원에 앉아 음악을 듣고 산책하는 게 더 행복했다. 정말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는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마음이 통하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할 때였다. 다른 누구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혼자 허공을 보며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하고 대답을 해주는 대화가 더 유익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요즘도 쉬는 날이 생기면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고 혼자 카페에 가곤 한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밖에만 내다보고 있어도 충전되는 기분을 느낀다. 왜 이전에는 혼자 있는 걸 그렇게 두려워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레이크 루이스를 혼자 마주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분명히 혼자가 아니다. 마찬 가지로 아이들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슬퍼할 때 우리 선생님들은 그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거고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할 거니까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인간은 누구나 다 혼자라는 말에 비중을 두고 싶은 게 사실이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 세상에 와서 혼자 떠나갈 거니까. 미칠 만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100%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테니까. 너도 혼자고, 옆에 있는 친구도 혼자고, 옆에 옆에 있는 친구도 혼자고, 옆에 옆에 옆에 있는 친구도 혼자고, 나도 혼자인데. 지금은 물론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부디 즐겁게 깨달을 수 있기를. 아직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한 마디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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