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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May 17. 2021

제로 웨이스트샵에 방문하다

북극곰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5년 넘게 브리타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다. 정수가 제대로 되는 건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물 맛은 괜찮은 편이다. 주기적으로 바꿔야 하는 필터를 한 박스씩 구비해 놓고 사용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가격은 나가는 편이다. 그래도 생수를 사 먹을 때처럼 무거운 물병을 들고 올라오지 않아도 되고, 비닐 라벨과 페트병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 크게 의미를 부여했다. 문제는 필터를 버릴 때였다. 처음 몇 번은 아무 생각 없이 플라스틱으로 분리 배출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브리타 필터는 일반쓰레기에 버리는 게 맞다고 했다. 겉면만 플라스틱이고 속에는 활성탄 가루가 잔뜩 들어있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정수기라면서 필터는 왜 이렇게 버려야만 하는지 막연한 의문만 품은 채 다 사용한 필터는 매번 쓰레기봉투로 직행했다. 그러던 중 작년부터 곳곳에 제로 웨이스트 샵들이 생기고 망원시장에 있는 한 상점에서는 필터를 모아 본사에 보내 필터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 필터와 부모님 집 필터를 모으기 시작했고 친한 선생님 집까지 가서 다 쓴 필터를 받아오기도 했다. 어떤 사명감이 불끈불끈 타올랐지만 주말마다 바쁜 일정에 밀려 망원시장에 방문하는 일은 불가능했다.(망원시장에 가려면 서울 대 횡단이 필요하다ㅠ) 그래도 언젠가는 필터를 리필해서 사용할 거라며 베란다에 차곡차곡 다 쓴 필터를 모으고 있었다.


 가까이에도 작은 제로 웨이스트 샵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도 다 쓴 브리타 필터를 수거하고 전동 드릴로 구멍을 내어주며 리필할 수 있는 활성탄을 판매하고 있었다. 마트에서 새 필터를 구입하는 비용이나 리필용 활성탄을 구입하는 가격이나 결국 비슷하다. 오히려 집 앞에 있는 마트 대신 버스 타고 제로 웨이스트 샵에 가며 드는 교통비, 신문지를 깔고 마개를 막고 종이를 깔때기처럼 말아 활성탄을 채우는 수고비까지 포함하면 손해 보는 행동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다 쓴 필터에 구멍을 내고 활성탄을 구입하며 리필 필터를 사용해 보기로 결정했다.




 제로 웨이스트 샵에서는 그동안 인터넷에서 본 대로 꽤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일단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를 목표로 플라스틱의 대체재로 만들어진 물품들이 이것저것 있었다. 우리가 사용한 플라스틱 칫솔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도 몇 백 년 더 남아 있을 거라는데 모 부분만 바꿔 사용할 수는 없는 걸까. 플라스틱 칫솔의 대체재로 판매되고 있는 대나무 칫솔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모의 기능성 부분을 살려서 다양한 종류가 판매되었으면 좋겠다. 플라스틱 빨대를 대신해서는 스테인리스 빨대, 풀 빨대 등이 있었다. 빨대는 사용하지 않아도 되므로 패스. 플라스틱 수세미를 사용할 때마다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발생하므로 천연 수세미나 삼베 수세미를 사용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만져본 천연 수세미는 생각보다 질기고 단단했다. 아직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리 불편할 것 같지 않다. 휴지나 물티슈 대신에 손수건을 사용하자는데 이건 당장 생활 속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30년 넘게 길들여진 편리함을 뒤집는 일이란.


조금만 수고로움을 더하면 대안은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구연산, 천연세제 3종 세트를 손님이 가져온 통에 담아 판매하고 있었다. 최근 샴푸나 화장품도 다 쓴 용기를 소독하여 다시 그 안에 넣어 판매하는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데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플라스틱 용기를 한 번 사용하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당분간 제로 웨이스트 샵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는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바람직한 현상이긴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가 이벤트가 아니고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가게가 문을 여는 게 아닌 기존의  가게들이 변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반찬 가게에서는 반찬을 미리 플라스틱 용기에 깨끗하게 담아 진열해 놓지 말고 손님이 가져오는 통에 담아 주었으면, 쌀가게에서는 손님이 가져온 쌀통에 담아 쌀을 판매해 주었으면, 천연 수세미를 판매하는 장소는 제로 웨이스트 샵이 아니라 일반 마트의 수세미 코너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환경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매년 동아리 시간을 활용하여 환경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텀블러 들고 다니기,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정도의 작은 실천부터 촉구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뜻하지 않게 텀블러 없이 카페에 가게 되고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하게 되며 봉투를 또 구입하게 된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고작 배달을 시키며 '일회용 수저는 안 주셔도 돼요!' 정도에 클릭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신경 써서 클릭했음에도 배달 용기 위에 나무젓가락이 같이 배송되어 온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작은 물건 하나 간수하는 것도, 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든 내 모습 앞에 지구를 지키는 일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항상 의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 하나씩 바꿔 보려고 한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극곰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아무리 굳게 다짐해 봐도 고기를 덜 먹겠다는 말은 쉽사리 할 수가 없다. 왜 또 고기가 먹고 싶은 걸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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