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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ug 04. 2020

오 마이 첫 호캉스

기대 이상의 센트럴파크

 여행을 갈 때마다 하루 2만 보는 기본이었다. 많이 걷는 날엔 3만 보도 훌쩍 넘어갔다. 2만 보, 3만 보라니, 말이 쉽지, 하루 이틀 넘어갈 때마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아무리 멋진 경치를 많이 보고 맛있는 걸 많이 먹었다 해도 저녁에 숙소에 돌아올 때면 거의 탈진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또 부지런히 가방을 챙겨 나갔다. 내가 언제 또 여기에 올 줄 알고, 빨리 나가서 하나라도 더 보고 먹고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야지 라는 생각이 컸다.


 호텔은 늘 잠만 자는 곳이었다.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에 늦게 들어오니 위치가 제일 중요했다. 깨끗하고 침대가 편안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지만. 전망이야 밖에서 실컷 보고 들어오면 되니 뷰를 선택할 땐 조금이라도 저렴한 방을 선택하고는 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호캉스를 떠나보자고 계획한 게 벌써 한 달 전이다. 요 몇 년 동안 여름마다 바다 건너 멀리 해외여행을 꽤 길게 다녀왔는데 이번엔 바다를 건널 수 없으니 호화롭게 호캉스를 즐겨보자는 마음이었다. 처음에 마음속 원픽은 남산 하얏트호텔이었다. 남산 밑을 오가며 우러러보기만 하던 하얏트호텔 결혼식장을 들어가 본 뒤론 마음을 더 뺏겼다. 하룻밤에 50만 원은 훌쩍 넘어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비싼데 며칠 머물기는 부담스럽고, 서울에 집 놔두고 굳이 호텔을, 망설임이 깊어졌다. 


 다른 호텔을 알아보다가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을 발견했다. 눈이 띠용! 블로거들이 찍은 사진 속 호텔의 모습은 마치 예술 작품 같았다. 하지만 하얏트 못지않게 비싸다. 수영장은 어차피 지금 가지도 못할 텐데,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이 호텔에 갈 의미가 있을까. 파라다이스 시티는 아니더라도 송도 센트럴파크에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려 장소는 '인천'으로 정했다. 멀지도 않고 맛집도 많고.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은 너무 비싸니까,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그럼 오라카이 호텔? 이번엔 제일 싼 방 말고 스위트룸을 예약해 보자고 큰소리쳤는데 가격을 보고 나니 안 되겠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가 적당한 곳을 찾았다! 


 홀리데이인 인천 송도. 스위트룸 3박 비용이 처음에 생각했던 하얏트호텔 1박 값이랑 비슷했다. 게다가 조식도 저렴해서 3일 치를 같이 결제했다. 위치도 센트럴파크 역 바로 앞. 스위트룸은 센트럴파크 뷰라서 전망도 좋았다. 


홀리데이인 인천 송도 스위트룸


 3일 동안 호캉스를 즐기기에 무리 없는 곳이었다. 방에서만 놀기로 작정하고 남편과 내 노트북을 따로 가져왔는데 각자 마음에 드는 자리에 번갈아 앉아 놀기에 딱 좋았다. 남편은 창가에 있는 테이블을 제일 좋아했고 나는 그래도 책상이 좋았다. 침대에 딱딱한 베개와 부드러운 베개가 두 종류 있는 세심함도 좋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안 베고 잤지만. 매트리스가 포근해서 좋았는데 평소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는 침대에서 자다가 여기에 누우니 남편이 왜 이리 뒤척이는지, 그때마다 몸이 출렁거렸다. 호텔 리뷰를 보면 콘센트 위치에서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는데 여긴 콘센트가 바닥에 있어 그 점은 꽤 많이 불편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가성비는 대만족.


 

호캉스 동안 먹은 것들

 

 지독한 폭염이 올 거라 했던 예보는 어디 갔는지 전국 곳곳에 비가 무섭게 내리고 있다. 앞으로도 일주일 이상 비가 올 예정이라니 맑은 날씨는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다. 역시나 호캉스 동안에도 끝없이 비가 내렸다. 조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평소처럼 6시 반이면 눈이 떠졌다. 아침을 먹고 방에 와서 양치를 하고 다시 몸에 긴장을 스르르 풀었다. 잠이 든다. 일어나면 점심 먹을 시간! 우산을 챙겨서 슬슬 나가본다. 비 오는 센트럴파크를 어슬렁거리다가 주위 식당에 들어간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센트럴파크를 지나 호텔로 돌아온다. 샤워를 하고 또 늘어진다. 저녁은 나가기 귀찮으니 인천의 명물 안스 베이커리에서 사 온 빵으로 배를 채운다. 텔레비전도 보고 노트북도 하다가 보면 창밖으론 맛스러운 야경이 펼쳐진다. 호텔에서 할 것도 없이 하루 종일 뭐해라는 걱정도 무색하게 이런 시간들이 너무 행복하다. 


 송도 국제도시, 센트럴파크 풍경을 어디선가 본 뒤로 늘 이곳에 와보고 싶었다. 기대감을 한가득 갖고 있다가도 필름에 속았던 여러 기억들을 떠올리며 다 사진발일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 직접 와서 보니 정말 마음에 든다. 우리 집 앞에도 이렇게 멋진 산책 코스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똑같이 생긴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어떻게 저렇게 다 다른 느낌일까. 작년 여름에 감탄하며 봤던 시드니 야경 못지않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습관이 생겼다. 어딘가 다른 동네에 가보면 초록창에서 아파트를 검색해본다. 그러면 어김없이 집값이 뜬다. 낭만의 끝엔 또 돈이 따라붙는 슬픈 현실.


 이곳에 산다면 우리 호텔 쪽보다는 건너편이 나을 것 같아요. 상권도 그쪽이 훨씬 발달해 있고, 전망이라면 센트럴파크가 제일 잘 보이는 저 으리으리한 센트럴파크 아파트가 제일 좋겠지만 조용히 살기에는 그 뒤편이 오히려 나을 것 같은데, 롯데마트랑 안스 베이커리 근처쯤이 좋겠어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사실상 지하철을 이용하기가 너무 불편하겠는데. 이사를 올 것도 아니면서 왜 우리는 멋진 센트럴파크를 걸으면서 이런 대화를. 


 어김없이 3일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떠나기 직전의 나는 너무 아쉬워서 창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인천이라면 그리 멀지도 않고 호텔도 그리 비싸지는 않으니 다음에 또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겨우 발길을 돌린다. 




 나의 첫 호캉스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편하게 쉬었다고 생각했지만 떠올려보면 매일 센트럴파크를 만보씩 걸었다. 그동안의 여행에 비하면 만보 정도야. 나의 첫 호캉스 장소, 멋진 풍경이 있고 주위엔 맛집이 즐비한 센트럴파크, 또 보자.



내내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그런 대로의 멋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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