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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Oct 16. 2019

죽고 싶다는 말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 

 젊은 연예인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실제로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이런 무게감이 그들에게는 늘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걸까. 유난히도 하얀 피부에 반짝거리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그녀. 화려한 무대 위의 파워풀한 모습 뒤에 숨겨져 있던 여리고 여렸던 속마음. 너무 안타깝다. 부디 그곳에서는 단단한 마음으로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를.


 어리다고 해서 몸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생각도 마음도 작은 것은 아니다. 민희는 중학교에 입학했던 날부터 남다른 면이 있었다. 복도에서 선생님들을 만나면 팔을 잡고 흔들었다. 순회 지도를 하면서 말을 걸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들이밀고 빤히 쳐다봤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눈물도 많았고 웃음도 많았다. 같이 노는 친구들과 싸우고 화해하는 주기가 보통의 아이들보다 많이 짧은 편이었다. 


 며칠 전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후 교실에 한 친구와 단둘이 남아있던 민희는 친구가 말을 재수 없게 했다는 이유로 욕을 하며 때리기 시작했다. 맞고 있던 친구가 한 대 때리자 더 때려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싸움은 격화됐다. 


 오늘 민희와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다는 우리 반 아이를 불러 상담을 하다가 며칠 전 그 싸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민희에게 피해가 갈까 봐 아이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로 민희에게 들었다는 내용을 조금씩 이야기하다가 도움을 요청하듯 고개를 들었다. 


 "민희가 요즘 많이 힘든 것 같아요."

 "죽고 싶다는 말을 매일 해요. 학원에서 만나면 매일 그 말만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자기가 분노 조절이 안 된다고 하면서 화도 많이 내요. 게임하다가 휴대폰도 많이 집어던져요. 그런데 신기한 게 휴대폰이 안 깨져요."

 "자기편이 없어서 그렇대요. 관심을 받으려고 일주일째 밥을 안 먹기도 했었어요."



이야기하고 싶다, 교환하고 싶다





 언론은 안타까운 선택을 한 연예인이 이전에 힘들어하면서 남겼다는 심경 메모 같은 걸 뒤늦게 보도하면서 이전에 이런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무심함을 꾸짖기도 한다. 


 이대로 잠들어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스스로도 너무 많이 했던 생각이라 가슴이 콕콕 쑤시는 건 나뿐일까?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 일들로 새로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던 지난 날 내 시간 속 숱한 밤들. 


 엄살이 심한 나는 어릴 때부터 조금만 아프면 오버된 생각을 많이 했다. 열감기에 걸려서 머리가 아프고 몸살 기운이 있을 뿐인데, 약간의 빈혈기에 생리통이 겹쳐서 힘들 뿐인데 나는 저 건너에 있는 죽음까지 떠올렸다. 어쩌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나 보다. 내가 이렇게 죽으면 어떻게 될까,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교실 가운데 비어 있는 내 자리가 그려졌다. 한 사람쯤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게 굴러갈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없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내 삶의 두 어깨를 부모님이 잡고 있었다. 그 힘 덕분에 발을 저어 나아갈 수 있었다. 다 큰 어른이 되었는데도 부모님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땐 내 어깨 한쪽이 내쳐진 기분이 들었다. 삶에 매달려 있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며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몇 년 전 담임 학급에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고 수시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던 학생이 있었다. 뉴스에서도 보기 힘든 기나긴 사연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아이는 자신이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어서 어려서부터 이렇게 끊임없는 시련을 겪어야 하는 거냐고 말했다. 선생님들은 이런 상황을 겪어본 게 아닌데 어떻게 자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냐고 했다. 

 

 사실이었다. 아이에게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네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어서 어려서부터 이렇게 끊임없는 시련을 겪어야 하는 건지,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다 겪어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네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을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뒤척일 때면 이 아이 생각이 났다. 이 밤에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할 때마다 겁이 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담임교사로서의 나, 학생부장님, 학년부장님, 상담 선생님, 다른 선생님들까지도 정말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이에게 진정한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요즘도 가끔씩 이 아이가 떠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그 말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온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상태로 너의 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말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왜 살아야 돼요?"


 때마다 즉흥적으로 하는 어설픈 대답 말고 나만의 모범 대답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위해서. 얼마큼의 시간이 더 지나야 모범 답안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 이 답을 찾아야 하니까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언제 이 답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일단 꿋꿋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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