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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Oct 23. 2019

우리는 늘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지

 매달 생리 전 증후군을 심하게 겪는 혜빈이가 국어 시간에 모둠 활동이 끝나고 나서 상담을 요청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을 각색해서 희곡 작품으로 만드는데 평소답지 않게 한 시간 내내 의견을 한 마디 내지 못하고 뾰로통한 얼굴로 앉아 있더니 마음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저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어요? 아민이는 글씨도 잘 쓰고 정리도 깔끔하게 잘하고, 소연이는 그림도 잘 그리고, 지영이는 아이디어도 잘 내고 친구들을 잘 웃기는데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겠어요.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할 말도 없고 저는 이런 제가 너무 싫어요."


 눈물과 콧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면서 말을 이어가는 혜빈이를 묵묵히 바라보며 손에 휴지를 쥐어 주었다.


 "선생님은 별로 노력을 안 하셔도 국어를 잘하시고, 영어 선생님은 영어를 잘하시고, 수학 선생님은 수학을 잘하시고, 미술 선생님은 그림도 잘 그리시는데, 왜 저는 잘하는 게 없을까요?"


 진지하게 말하는 혜빈이 앞에서 웃음이 터지지 않게 조심하고 있는데 교무실 칸막이 뒤로 혜빈이 말을 듣고 계시던 선생님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혜빈이는 그때서야 고개를 들었고 너무나도 순수한 눈빛을 마주한 나도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무한 긍정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혜빈이는 멋쩍은 듯 자신의 입술 앞에 손을 가져가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어떤 상담 장면에서보다 학생은 많이 울었지만 마음을 다독여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총인원이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교무실에서 나는 나이로 네 번째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선생님과 막내 선생님과는 무려 30년 차이가 나지만 우리는 꽤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열 살 차이 정도는 별로 크게 느껴지지도 않는 게 사실이다. 해가 바뀌어도 늘 10대 중반의 아이들을 마주하는 선생님들은 아이들 덕분에 늙어 보이지 않는다며 서로 입 바른 덕담을 자주 나누기도 한다. 


 짝꿍 선생님은 나랑 띠 동갑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말 대여섯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은 동안의 소유자이다. 퇴근길에 어쩌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갑자기 막내 샘이 너무 부럽다는 말씀을 하신다. 


 "날씬해서요?"


 20대 중반의 막내 샘은 작년에 신규 발령을 받은 학교 전체에서 가장 어린 선생님이다. 나이도 어린 데다가 날씬하고 귀여운 외모로 학생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남학생들이 있었으면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짝꿍 선생님과 나는 요즘 주로 다이어트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막내 샘이 부럽다는 말도 단순하게 날씬해서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것도 그런데, 나이 말이야."


 



  

 나이를 먹는 것만큼 공평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생각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 세상에 이것보다 더 절대적인 현상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왕도 신하도 공평하게 먹게 되는 게 다름 아닌 나이 아닌가.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은 있고 점점 늙어가는 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으니 억울할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던 게 20대의 나였다. 


 그렇다. 20대의 나는 너무 성급하고 오만했다. 


 나도 20대 중반의 막내 샘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며 또 성급하게 공감을 해버렸다. 짝꿍 선생님이 힐끗 보시더니 한 마디 던지셨다. 


 "자기도 마찬가지야."


 



 

 20대의 파릇파릇함은 약간 색이 바랬겠지만 나 역시도 지금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몇 살까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면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각종 요소들은 대체로 변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참 많이 변했지만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나는 변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나이는 자꾸만 늘어나니 억울하다는 거다. 왜 또 그렇게 가는 데마다 나이를 물어보는지.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을 어찌어찌 견디며 지내오고는 있지만 지금의 내 삶을 바라보며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누구에게나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육아로 바쁜 친구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될 시기인데 이렇게 살고 있는 것만 같고, 결혼을 안 하고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선생님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뿜뿜 내뿜는 멋진 사람들을 보면 나도 공부를 많이 해서 저렇게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하는 생각도 들다가 젊은 대학생을 보면 그저 입을 헤 벌리고 보기 좋다고 부러워한다. 


 운동회의 꽃. 늘 파이널을 장식하는 반별 계주 경기. 거기에서 선수로 뛰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전교생이 모두 주목하고 있었다. 사십 명 남짓 반 친구들의 기대감을 등에 업고도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그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뿐일까. 수학 시간엔 수학 문제 잘 푸는 친구가, 국어 시간엔 발표 잘하는 친구가, 미술 시간엔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늘 부러웠다. 편지 쓸 땐 이름이 예쁜 친구에게까지도 부러움을 느꼈다. 


 이 넓은 세상을 살아가며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무조건 스스로에게 만족하라는 말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비교하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애를 쓸 뿐, 부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까지 억누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고통을 다른 편에 숨기고 있는 누군가를 마음껏 부러워하다가 그냥 쿨하게 한 마디 덧붙여 본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지." 


주위를 바라보다, 그리고 부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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