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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Oct 18. 2019

관심과 무관심의 사이

그 어렵고 어려운 관계에 대해서 

 중학교 첫 학기를 지나고 있던 어느 날, 친구랑 둘이 복도를 지나가다가 마주친 수학 선생님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그래, 우리 은주는 어떻게 그렇게 공부도 잘하니?"


 둘이 같이 지나가다가 동시에 인사를 했는데 선생님은 친구에게만 대답을 하며 눈길을 주셨고 어깨까지 두드려 주셨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친해졌던 은주라는 친구는 당시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해서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담임 선생님의 호명 하에 모든 아이들의 박수를 받았고, 얼굴도 예쁘장한 데다가 활발하고 친절한 성격으로 뭇 남학생들의 짝사랑 대상이기도 한 아이였다. 나는 은주와 친해지면서 시험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은주가 남학생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은근슬쩍 함께 하기도 했다. 내가 봐도 예쁘고 착한 은주를 남자애들도 좋아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은주를 떠올리면 그런 것들보다 저 한 마디가 먼저 떠오른다. 저 말은 수학 선생님께서 나한테 하신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은주를 향해 하신 말씀이었다. 원래도 수학을 싫어했던 나는 이 사건 이후로 수학을, 수학 선생님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내게 중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은 '차별이 아주 심했던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관심받고 주목받는 게 싫다고 말하는 나지만 저 당시의 나는 수학 선생님께 무시당했다고 생각했고 잠깐 사이에 투명 인간이 된 것 같다고까지 느꼈다. 에이, 쌤이 은주를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마침 만났나 보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기기엔 의외로 상처가 너무도 크다. 





 주위 사람들 모두 믿을 수 없겠지만 올해로 나는 요가, 필라테스 경력이 4년째에 접어들었다. 중간에 학원(?)을 옮기면서 몇 달씩 쉬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 몸이 좋은 사람들은 나 같은 경우를 보며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멀쩡하게 생긴 몸은 여전히 아래로 착 구부러지지도 않고, 오른쪽, 왼쪽으로도 잘 돌아가지 않으며, 뒤로 잘 젖혀지지도 않는다. 유연성이 워낙 부족한 데다가 온몸의 모든 부위에 지방은 평균 이상으로 많고, 근육은 평균보다 아주 많이 부족하다. 그러니 요가니 필라테스니 잘 될 리가 없잖아. 


 집 앞에 새로 생긴 요가 학원에 등록하면서 요가를 처음 해보는 거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게 정확히 4년 전이었다. 학원은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 등록할 땐 정말 친절하고 관심을 많이 보여준다. 처음 만났던 요가 선생님은 첫 수업이 끝나고 운동을 할 만했는지 물어봤고 두세 달 정도 하면 무리 없이 따라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있나! 6개월을 다니고 또 6개월을 연장해서 1년을 다녔지만 무리가 없기는커녕 무리 투성이었다. 오래된 회원이라 선생님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고 나는 복습을 안 해서 성적이 나쁜 학생처럼 선생님 눈을 피하게 됐다. 그러다가 어느 날 회원 카드로 체크를 하며 들어가는데,


 "열심히 나오시네요!"


 매일 보는 선생님의 이 한 마디에 왜 그렇게도 민망했는지. 선생님은 다른 의도 없이 나의 성실한 모습을 칭찬해주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뻘쭘함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열심히 나오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나의 형편없는 요가 실력만이 떠올랐다. 


 등록 기간이 끝나고 한 달 정도 쉬다가 반대 방향에 있는 요가 학원에 등록했다. 상담을 받으러 가니 역시 먼저 물어보는 말이 있다.


 "요가해보셨어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첫 수업이 끝나고 내가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처음이라 힘든 거지 두세 달만 꾸준히 하면 무리 없이 따라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역시 처음 해본다고 거짓말하기를 잘했다. 그렇게 두 번째 요가 학원을 세 달 정도 다녔다. 


 갑자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충동적으로 백화점 문화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문화센터는 내가 다니던 요가 학원들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요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화센터로 학원을 옮기게 되었다. 전문 요가 학원보다 더 소규모였다.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새로운 회원이 가니 또 선생님은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셨다. 


 "요가해보셨어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나는 또 거짓말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친절하게 다가오셔서 더 늦기 전에 요가를 시작하게 돼서 다행이라며 지금 몸이 아주 많이 굳어 있는 상태라 수업을 따라오기 힘들겠지만 두세 달만 꾸준히 해보면 확실히 달라질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 


 문화센터에서 세 달 동안의 요가 수업이 끝나고 반년 정도 집에서 댄스 동영상을 틀어놓고 방황하다가 늘어나는 뱃살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처음 다니던 요가 학원에 다시 갔다. 매니저도 바뀌었고 아르바이트생도 바뀌었고 선생님들도 다 바뀌어 있었다. 간혹 오래된 회원들 얼굴이 눈에 익었지만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요가해보셨어요?"

 

 끙, 습관적으로 또 거짓말을 할 뻔했다. 그러나 자존심보다는 돈이다. 기존 회원임을 강조해서 할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예전에 다녔다는 말을 해버렸다. 잘 아시겠네요, 라는 말로 상담이 이어졌다. 잘 모르는데. 


 요가와 필라테스의 차이를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채로 다시 운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어간다. 무조건 수업 시작 10분 전에 가서 맨 뒤 창가 자리를 맡는다. 여전히 대부분의 자세를 소화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하이 런지를 하고 땀을 흘리고 있을 때 나는 아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람들이 박쥐 자세를 하고 있을 때 혼자 거울 속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또 아기 자세를 취한다. 사람들이 쟁기 자세를 할 때는 혼자 바람 빼기 자세를 취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세는 사바사나!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무리 없이 운동을 즐기고 있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바사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쟁기 자세를 시켜놓고 순회하던 선생님이 웬일인지 내쪽으로 오셨다. 누워서 두 다리를 뻗어 올려 보라고 하셨다. 다 펴지지 않는 두 다리를 선생님이 잡아서 쭉 잡아당기셨다. 잠깐 버티라고 하시더니 내 머리 위에서 두 다리를 쭉 잡아당기셨다. 


 어어엇, 이게 다름 아닌 쟁기자세였다!


 첫 경험이었다. 난생처음 피가 거꾸로 흐르면서 다리도 시원하고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신기했다. 


 화목 저녁 타임에 수업하시는 선생님은 이후로 나를 보실 때마다 한 마디씩 거신다. 그리고 수련 중에는 슬그머니 다가와 동작을 잡아주시곤 한다. 비틀기 자세를 할 때 한쪽 다리를 꽉 눌러주시니 허리 부위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도 한 가지씩 새로운 동작을 도와주시며 나로 하여금 신세계를 맛보게 해 주신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선생님들께 "쌤은 저한테 너무 관심이 없어요."라고도 이야기하고 때로는 "쌤 저한테 관심 좀 그만 가져주세요. 부담스러워요."라고도 말한다. 나는 운 좋게 아직 이런 얘기들을 대놓고 들어본 적은 없으나, 여러 아이들에게 인사를 안 받아주는 무심한 선생님이라는 평을 몇 번 들어봤다. 수업 들어가는 반 아이들 무리가 지나갈 때 이삼십 명의 약간 시차가 있는 인사에 계속 응답을 해주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고개만 살짝 꾸벅이면서 지나갈 때가 많은데 애들 입장에서는 말로 대답이 없어 서운한가 보다. 애들이 먼저 인사하는데 그거 대답해주기가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참,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수십 년 인사성 부족하게 살아온 내 모습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머리로 안다고 해도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학창 시절에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없었던 나는, 최소한 나와 내 친구에게 상처를 줬던 선생님들처럼은 절대 행동하지 말자는 다짐을 여러 번 한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그중 한 명이 중학교 1학년 때의 수학 선생님이다. 은주를 칭찬해주는 것도 좋다. 그런데 그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던, 이름도 모르셨을 내게 너도 수학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한마디만 덧붙여 주셨었다면. 그래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어쩔 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하고, 어쩔 땐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이율배반적인 말. 그런데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이젠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무관심을 원한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요가 실력이 형편없는 나에게 열심히 나온다고 칭찬해주는 게 아니라, 머리 위에서 다리를 당겨 쟁기 자세를 경험하게 해주는 종류의 다른 관심을 원하는 게 아닐까? 휴, 이런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인간관계에 어려울 것도 없겠다. 



이것이 바로 쟁기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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