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타협도 필요해
오랜만에 인근 문화원으로 연극을 보러 가는 체험학습 날. 며칠 전에 가정통신문이 나가고 부모님 서명도 받아 동의서를 냈으면서 당일이 되니 아주 새롭다는 듯이 또 물어보는 아이들.
"거기 가서 뭐해요?"
"연극 볼 거야."
"로맨스예요?"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에 여기저기서 로맨스였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이어진다. 연극이 몇 시에 시작해서 몇 시에 끝나는지, 제목이 무엇인지, 자리는 어떻게 앉는지, 그런 것들은 아이들에게 별로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 같다.
매주 1시간씩 도서실에 갈 때마다 책장 앞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틈날 때마다 청소년 도서를 읽으려고 (약간의) 노력은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신간 출판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여학교로 옮기고 난 후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건 나 또한 독서 취향이 굉장히 편협한 덕분이다. 아이들이 서있는 구역으로 가서 한두 권씩 책을 꺼내 추천해주고는 하는데 아이들의 요구는 늘 일관성 있다. 신간도서 앞이든, 한국 소설 구역이든, 일본 소설 구역이든, 에세이 구역이든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일관성 있는 질문을 한다.
"로맨스예요?"
중고등학교 시절 독서에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는 뜻하지 않게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뒤늦게 짧은 기간 내에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 공강 시간에 갈 데가 없어서 들어가게 됐던 중앙도서관에서 830번대 일본 소설 구역에 있는 책을 다 읽는 게 목표가 될 만큼 독서에 심취했다.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독서에 심취하게 된 후, 전공을 국어국문학으로 정했다는 말이 맞았다. 소설책을 읽느라 학과 공부를 하기가 싫었다. 그러다가 떠올린 해결 방법이 국어국문학을 전공으로 하면 독서가 전공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논리였다. 좋아하는 일이 의무나 과제가 되었을 때의 무게감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그때 내가 독서에 심취하게 되었던 이유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로맨스를 통한 대리만족이었다. 간혹 인생에 대한 묵직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도 좋았다. 그래도 주된 이유는 로맨스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독서라는 취미에 불을 지핀 것은 '상실의 시대'를 읽고부터였다. 두꺼운 편인 그 책을 읽고 나서 느껴지는 묘한 상실감에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그 이후 '냉정과 열정 사이', '동경만경', '7월 24일 거리' 같은 소설들을 쉼 없이 읽어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로맨스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지금의 중학생들처럼 나도 친구들도 그 시절부터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매일 같이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에는 좋아하는 남학생에 관한 이야기만 가득했고 혹시나 그 편지가 분실될 일을 염려해 남학생 별로 암호까지 정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남학생은 그냥 밑줄이었고, 친구가 좋아하는 남학생은 물결무늬 밑줄이었다. 에쵸티, 젝스키스, 핑클, 지오디, 쿨 노래들을 닥치는 대로 반복해서 들었다. 어김없이 사랑이 주제였던 수많은 노래에서 내 마음대로 여자는 나였고, 남자는 관심 있는 남학생이었다. 노래 가사를 노트에, 편지에 하도 많이 써서 저절로 외워졌다. 여중에 근무를 하면서 여중만의 매력도 많이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남녀공학에 합반이었던 중학교를 다녔던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노래 속 주인공들을 멀리서 찾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자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가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요즘도 간간이 소설을 읽는다. 도서실에서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앞표지, 뒤표지 열심히 살펴보고 머릿속으로 내용을 예측하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맨스예요?'
작년 가을 우연히 학교 도서실에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라는 책을 찾게 되었다. 아침 독서 시간, 일주일에 한 번 독서 시간, 아이들 시험 기간의 자습 시간 정도에만 꾸역꾸역 책을 읽는 내가 이 책은 빌리자마자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 오면 바로 책을 펴서 읽었다. 장담하건대 십여 년 간의 교직 생활에서 이렇게 열심히 읽은 책이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 몇 주 동안 남편 차에서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이 책의 남주인공 이건 피디가 떠오를 정도였다. 현실 속 저 어딘가에 이건 피디가 존재할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두근거림만으로도 우리가 로맨스를 찾는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지 않을까?
로맨스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춘기 학생들이 여학교를 다닌다는 게 안타까워 보일 때가 많다.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성 문제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많다. 남녀공학 학교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정상적이지 않은 듯한 연애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SNS의 발달이 문제일까. 심한 경우에는 얼굴도 전혀 모르고 대화도 한 번 나눠 보지 못했으면서 페이스북 메시지로 사귀자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서로의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된다. 일주일 정도 연락을 주고받으면 오래갔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횟수를 세어보며 자신이 연애를 많이 해봤다고 자랑하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에게는 로맨스가 필요한데 주위에 남학생은 없고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음, 얘들아 일단은 우리 로맨스 소설과 연극을 보면서 아쉽지만 대리만족만 하는 걸로. 진짜 인연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 소설과 연극에서 남주인공은 그 누구보다 멋있는 방탄 오빠들이 해주는 걸로. 조금만 타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