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영어 속 본심
출근해서 노트북을 켜고 컵에 물을 따르고 있는데 교실로부터 누군가의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려온다. 1년은 365일밖에 안 되는데 이 작은 학교에만 해도 아이들이 삼백 여명이니 거의 매일매일이 누군가의 생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침부터 교무실까지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려오는 것은 오늘이 활달하고 교우관계 좋은 아이의 생일이라는 뜻이다.
그 주인공이 우리 반 1번이었다. 우리 반 1번은 1학기 중반까지만 해도 반에서 가장 조용한 아이였다. 하얀 얼굴에 깡마른 아이는 내가 말만 걸면 수줍게 웃으며 얼굴이 빨개졌고 입술을 오므렸다. 다른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반에서 가장 활동적인 아이가 되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더니, 이런 본성을 감추고 어떻게 지냈을까. 아침 조회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니 1번의 책상이 선물로 가득했다. 자기네들은 나름대로 다이어트를 늘 하고 있으면서 친구 선물은 왜 과자로 주는 걸까. 이 아이러니는 누구의 생일에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어제만 해도 다이어트한다고 하던 생일자는 과자 상자를 가득 껴안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나는 담임반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 매정한 선생님이다. 임용 공부를 할 때 생각했던 우리 반은 이렇지 않았다. 상상 속 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생일 카드를 써서 작은 선물과 함께 전달해주는 따뜻하고 다정한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발령받았을 때는 그저 너무 정신이 없었다. 생일이고 뭐고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매일 가정통신문을 나눠주고 걷고 전달사항을 알려주는 것만 해도 숨 막힐 만큼 벅찼다. 그다음 해에는 반에 인원이 42명이었다. 운 좋게 착한 아이들을 만났지만 그 해 모든 일의 이유는 42명이어서였다. 42명과 함께한다는 것은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다다음 해쯤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줬던 적이 있다! 임원 아이들의 주도로 매달 생일자에게 다 같이 축하 노래를 불러주며 작은 간식을 전달하고 롤링페이퍼를 썼다. 앞에 선 아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겠지만 우리는 늘 시간에 쫓겼다. 뭐가 그렇게도 바빴는지. 뒤로 갈수록 형식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그 이후로는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다. 우리 반도 생일 파티를 하자는 의견이 나오면 우리 반은 날마다 생일이라는 뻔뻔한 대답으로 넘어가곤 한다. 미안하다, 얘들아.
나는 어려서부터 겨울을 가장 좋아했다. 추위도 많이 타서 손은 시퍼레지는 애가 무슨 겨울을 좋아한다니. 우리나라에서 겪는 대부분의 시작과 끝은 늘 겨울이다. 매년 새해가 시작되는 것도, 한 해가 끝나는 것도, 새 학년이 시작되는 것도, 끝나는 것도, 중요한 시험도 다 겨울이었다. 이런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살았던 탓인지 새로운 만남도, 아쉬운 헤어짐도 이상하게 겨울에만 하게 됐다. 몸도 춤고 정신적으로도 힘든 겨울에는 조금의 따뜻함도 크게 느낄 수 있다고 멋지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겨울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핫.
어떻게 하다 보니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 태어났다. 당연히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 예정일이 1월 1일이었다는 이야기는 나이가 들수록 아쉬움을 더한다. 며칠만 더 있다가 태어났으면 나는 한 살 더 어리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해서 일주일을 빨리 나왔을까.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계절이 겨울에 접어들고 첫눈이 내리고 나면 책상 한 구석에 디데이를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토요일도 학교에 나가던 시절이라 겨울방학식은 매년 12월 20일경에 하게 됐고 내 생일은 방학 중이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친구들과 만나서 놀 만큼 활동적이지도 않았고,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은 어김없이 집을 비우셨다. 매년 크리스마스 전날의 생일에도 찬밥처럼 혼자 집에 담겨 시간을 보냈다. 이런 생일이 반복되었고 다음 생일도 이렇게 보내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디데이를 세었다.
또 생일이 늦은 탓에 친구들이 주는 생일 선물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격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친구가 선물을 주고 할 만큼 인기가 있는 편도 아니었다. 오히려 관계의 변화 때문에 뿌렸지만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기다려졌다. 내 생일엔 내가 주인공이니까 산타 할아버지라도 짠-하고 나타날 줄 알았지.
선생님이 되고 나서 아이들로부터 생일 파티를 여러 번 받았다. 정작 나는 아이들 생일을 제대로 챙겨준 적도 없는데 몇몇 섬세한 아이들은 내 메일 주소를 보고 생일을 기억했다. 생일이 되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생일 모자를 쓴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수많은 생일을 지나면서도 이 순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이들로부터 과분한 이벤트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어봤다. 촛불로 길을 만들어놓고 양옆은 색색깔 풍선들로 쫙 깔아놓고 수십 개의 종이비행기에는 생신 축하드린다는 멘트가 적혀 있기도 했다. 감동을 받아야 하는데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데 처음 되어본 주인공이라는 위치가 왜 그렇게도 어색하기만 한지. 이런 로맨틱한 상황에서 왜 나는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서 숨고 싶다는 생각이 더 앞서기만 하는 건지. 아, 이건 내가 꿈꾸던 주인공의 감정이 아닌데, 애들 앞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되는데.
카카오톡 설정에 들어가서 생일을 비공개로 바꿨다. 카카오스토리 연동도 끊고 생일 공개를 껐다. 메일 주소를 이야기할 때 아이들이 1224가 생일이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둘러대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생일을 기다리지 않고 있었다. 생일날 아침 조회를 들어가면서는 아이들이 내 생일을 모르기를 바라며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한테 받는 생일 선물도 내 돈으로 산 느낌이라 큰 의미가 없다.
오늘 급식에 나온 미역국을 먹으면서 앞에 있는 원어민 샘과 생일 이야기를 했다. 디스이즈코리안벌스데이푸드(원어민 샘은 내 짧은 영어도 찹쌀떡처럼 알아들으신다, 이래 봬도 우리는 둘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사이임)부터 시작했다. 영어 실력이 가볍다 보니 내 본심은 그게 아닌데 과하게 전달될 때가 종종 있다.
"I don't like my birthday."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는 원어민 샘에게 생일을 알려주고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먹고는 대뜸 뱉어버린 말이었다. 생일을 별로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영어로 말하려다 보니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버렸다. 왜 그러냐고 크리스마스 전날이라 그러냐고 묻는 원어민 샘에게 또 기억나는 단어로 간단하게 대답을 한다. 10년 넘게 한 영어 공부가 이렇게 빛을 발하다니.
"because of age."
또래의 원어민 샘은 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잉?
내 짧은 영어 속에 내가 생일을 기다리지 않는 이유가 단번에 드러나버렸다. 우리말로 했다면 쓸데없이 길어졌을 이유들이 간단하게 정리됐다. 내가 사실은 그랬나 보다.
밝은 표정으로 과자 박스를 잔뜩 들고 집에 가는 우리 반 1번을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날 낳아주신 날이라는 생일의 진짜 의미를 나이가 들수록 더 새겨야 하는데 생각은 어찌 된 건지 점점 더 어려만 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속마음은 꾹꾹 눌러 숨기고 집에 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