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모르겠다
요즘은 중학생들 사이에도 다이어트가 유행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여자들은 (말로는) 평생 다이어트를 하며 살아간다고 했는데 그 시작의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 무상급식으로 매일 맛있는 점심이 제공되는데도 불구하고 점심을 안 먹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난다. 점심을 안 먹는 이유를 물어보면 배가 아프다, 속이 안 좋다 등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지만 사실은 다이어트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다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빨리 먹으려고 종 치기도 전에 책상 밖으로 한 발 내밀고 있기도 하고 별짓을 다 했던 것 같은데 시대가 변하긴 했나 보다.
다이어트에도 경쟁 심리를 무시할 수 없다. 올해 우리 반 반장은 여름방학 동안 15킬로를 빼고 돌아왔다. 반장을 바라보는 눈이 모두들 휘둥그레졌다. 어쩌면 내 눈이 제일 빛났을지 모른다. 아이들의 궁금한 마음을 대신해 내가 먼저 비결을 물어봤다.
"저는 한 달 동안 밥이랑 빵은 전혀 안 먹고 고기랑 야채만 먹었어요."
방학 전에도 사실 이 다이어트 방법을 들었었는데, 과연 저게 가능할까 하는 마음에 슬쩍 무시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15킬로를 빼고 반쪽이 되어 돌아온 반장의 모습을 보니 진정 솔깃했다. 아이들의 마음 역시 나와 같은지 여기저기서 자기도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이 이어져 나왔다. 다른 반에 누구는 살을 많이 빼더니 남자 친구도 생겼다고 했다.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다이어트가 유행처럼 번졌고 영양사 선생님은 애들이 밥을 너무 안 먹는다며 걱정하셨다. 남자와 격리되어 있는 여학교에서 남자 친구를 만들고 싶은 학생들이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이어트뿐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결혼하고 나서 특별히 더 먹는 것도 없는데 저울의 눈금이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평생의 최대 몸무게!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고3 때보다는 조금 덜 나간다. 그래도 충격이 컸다. 고3 때 쪘던 살은 대학교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빠졌다. 대학생 때도, 임용 공부를 할 때도, 새내기 교사 시절에도 솔직히 스스로가 말랐다거나 아주 날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때 입던 옷이 안 맞는 걸 확인해보며 뒤늦게 예전엔 그래도 날씬했던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규 때 덩치가 좋은 학년부장님이 간식을 드실 때마다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내가 예전엔 너무 말라서 어떻게 하면 살을 찌울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살이 너무 쪄서 걱정이네."
큰 덩치만큼이나 푸근한 이미지였던 부장님, 거짓말은 안 하실 듯했지만 이 말은 나 역시 잘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한순간에 그렇게 몸집이 달라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비슷한 연배의 직설적인 선생님이 한 마디 날렸다.
"부장님, 사진 좀 가져와보세요. 예전에 말랐었다고 도저히 상상도 안 돼요."
나는 중학교 때 정말 보기 안 좋을 정도로 말랐었다. 키는 160 가까이 컸는데 몸무게는 40킬로도 나가지 않았다. 중학교 교복을 사러 갔을 때 교복집에서 제일 허리 사이즈가 작은 치마를 입고도 치마가 빙빙 돌아갔다는 엄마님의 증언도 있다(그런데 내 기억에는 없다)! 가끔 이런 말을 하면 남편마저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살면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몸집이 이렇게 불어났냐고 물어보곤 한다. 사진이 별로 없지만 정말인데, 이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출근할 때 즐겨 입던 정장 바지의 허리가 맞지 않았다. 팔, 다리는 비교적 그대로인데 점점 배만 나와서 남편은 조심스럽게 어디 몸이 아픈 게 아니냐고 물어봤다. 배가 조이지 않는 원피스만 골라 입으니 몇 명은 나를 임산부로 오해했다. 그래서 나는 6월부터 다시 사교육의 힘을 빌리기 위해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이기
살을 빼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운동을 시작하고 처음 측정했던 인바디 검사. 나는 종이만 받고 돌아오고 싶었는데 매니저는 자신의 의무인 듯 펜을 들고 메모해가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식사량을 줄여라, 식단을 단백질 위주로 재구성해라. 그래서 집에 새로 구입한 품목은 구운 계란 한 판이었다. 저녁을 두유랑 구운 계란 두 개 정도로 대체해보려고 며칠 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나는 원래 계란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구운 계란을 먹을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았다. 특히 노른자. 그렇다고 빼놓고 먹기는 또 이상함.
고무줄이 원래대로 돌아가듯이 구운 계란으로 배를 채우는 날은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9월 중순의 어느 날, 맘스터치 신상 버거를 먹고 운동을 가서 몸무게를 쟀는데 갑자기 저울이 나아가다 말았다. 몸무게가 줄었다! 매일 같은 시간을 기준으로 1킬로그램이 줄었다! 이렇게 줄어든 1킬로그램이 어찌나 큰지 예전에 입던 정장 바지가 불편하지 않게 맞았다. 정말 오랜만에 벨트가 있는 원피스를 꺼내 입기도 했다.
오늘은 재량휴업일. 큰맘 먹고 다시 인바디를 측정하기로 한 날. 인바디를 재기 전에 탈의실에서 다시 몸무게를 재보았다. 1킬로그램이 빠진 건 확실했다. 1킬로그램이 정말 무거운 거였구나, 1킬로그램을 떼어내고 나니 몸이 한결 가볍다. 자신 있게 인바디를 측정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매니저도 놀랐다! 1킬로그램이 빠진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지방은 늘었고 원래도 부족했던 근육이 더 빠졌다. 몇 달 동안 열심히 운동을 다녔는데 이럴 수가 있나. 나는 운동도 열심히 다니고 캐시 워크와 AIA 바이탈리티까지 이용하는 사람이라 양팔을 휘저으며 걷기도 많이 걷는다. 그런데 왜. 매니저도 난감해하며 식단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수화물을 단백질로 바꿔 섭취하라는 거겠지.
인바디 측정 결과를 들고 운동을 하고 나오는 길에 집 앞 분식집에 들어갔다. 내장이랑 섞은 찰순대 1인분과 어묵 고로케를 샀다. 마트에 갔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티라미수 조각 케이크가 있었다. 평소엔 금방 품절되는 거라 서둘러 챙겼다. 집에 와서 천천히 맛있게 먹었다. 순대 양념을 세 가지 종류나 넣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소금, 간장, 쌈장 중에 나는 쌈장을 찍어 먹었다. 배가 불러서 저녁은 안 먹으려고 했는데 냉면을 먹자는 남편의 말에 또 따라나섰다. 내일부터 날이 서늘해지면 이제 올해는 냉면을 안 먹고 싶어 질지도 모르니까 더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일단, 에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