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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Oct 01. 2019

그리고 그 시대의 열정

눈 감고 그댈 그려요

 전날 밤 BTS 콘서트 티켓팅에 실패했다는 1반 수진이와 진영이의 두 눈이 아침에도 퉁퉁 부어 있었다고 한다. 독서시간에 보란 듯이 엎드려서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계속 울고 있는지 코를 훌쩍이며 주기적으로 등을 들썩거릴 뿐이었다고 한다. 연예인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1반 담임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혼내주려다가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솟구치는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고 하신다. 나는 BTS가 총 몇 명인지, 그들의 매력이 뭐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수진이와 진영이의 편에서 1반 선생님께 한 마디 건넸다.


 "지각도 하지 않고 학교에 와있는 게 정말 대단한데요!"


 80년대의 한가운데에서 태어난 나는 스스로의 출생 배경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란 사람은, 기억에는 없지만 88 서울 올림픽 현장(애기 때 오륜기 모형 앞에서 찍은 사진이 앨범에 있다!)에 참여했으며 21세기 최고의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응답하라 1988, 1994, 1997을 보며 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연륜을 가지고 있다! 교복 입고 친구 집에 모여서 전화선을 이용해 천리안, 하이텔 채팅을 즐겨보았으며 이제는 전설 속의 물건이 되어버린 삐삐의 유저이기도(게다가 나는 문자 삐삐!), 투박하기만 하던 휴대폰이 점점 날렵해지다가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다. IMF의 성장 과정을 지나 취업할 때가 되니 88만 원 세대다 뭐다 힘든 경제상황 속에서 많이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중요한 역사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전국이 축제 현장이 되었던 2002 월드컵을 이 땅에서 겪어보지 못한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는 묘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서론이 길었다. 이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사춘기 시절에 에쵸티 오빠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 무엇보다 좋았다는 거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도, 마우스를 잡고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컴퓨터도 없던 시절, 오락거리가 따로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봤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지나치리만큼 많이 본 것 같기도 하다. 매일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할 일이라고는 그날그날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것뿐이었다. 본방을 사수하지 못하면 재방의 기회도 잘 없기 때문에 어찌나 간절했던지.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선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가요톱텐과 인기가요 등의 프로그램을 그 무엇보다 즐겨봤다. 1996년 겨울, 우연히 아빠를 따라갔던 학교 앞 문방구에서, 뭐 살 거 없냐는 아빠의 말에 충동적으로 손에 집은 게, 샛노란 티셔츠를 입고 눈 밑에 초록색으로 찍 긋고 밝게 웃고 있는 강타 오빠 사진이었다. 에쵸티라는 그룹도 알지 못하면서 얼핏 보니 이뻐서 일단 사진을 사고 그날 저녁에 텔레비전에서 에쵸티라는 그룹을 보게 되었다. 미래 느낌이 나는 번쩍번쩍하는 옷을 입고 나온 다섯 명의 오빠들이 신기해 보였다. 곧바로 나온 캔디라는 후속곡은 제대로 취향저격!  알록달록한 티셔츠에 멜빵바지를 입고 롯데월드를 배경으로 춤을 추며 뽀샤시 처리되어 나오는 오빠들은 어린 나의 마음을 빵빵하게 점령해버렸다.





 문방구에 서서 에쵸티 관련 잡지를 찾아 읽으며 오빠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틈날 때마다 강타 오빠에게 편지를 썼다. 학교 책상에도 강타 오빠 사진으로 도배를 하며 나처럼 강타 오빠를 좋아하는 친구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초등학생 주제에 또 얼마나 대담했는지 친구와 단둘이 1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강타 오빠가 다닌다는 오금고등학교에, 강타 오빠네 집 앞에 한 주에도 몇 번씩 방문하기도 했다. 대부분 강타 오빠를 만난 대신 떡볶이집에서 배만 채우고 돌아왔지만.


 그러다가 1997년 3월 12일. 하교하는 강타 오빠를 만나고 말았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꼬꼬마 강타 오빠의 눈에 초등학생 우리는 또 얼마나 어려 보였을까.


 "사인해줄 테니까 얼른 집에 가~"

 "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좀처럼 하지 않던 긍정적인 내용의 대답을 아주 크게 하고 정말 사인을 받는 순간 강타 오빠의 말대로 바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다. 사인받은 종이가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다이어리에서 뜯어 문방구에서 코팅을 했다. 그리고 1997년 3월 12일에는,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이 기쁨이 달아날까 봐 학교에 가서 자랑조차 하지 못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힘든 일이 있을 때, 심지어 매일의 학교 시간표까지도 마음속으로 강타 오빠에게 설명하고 보고했다. 감기로 몸이 아팠을 때는 강타 오빠의 부인이 되기 위해 이 정도의 아픔은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랬다.


그런데 영원할 줄 알았던 뜨거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식어갔다. 


 에쵸티 다섯 오빠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쩌면 어른들을 향해 조금은 눈을 흘겼을지 모른다. 이렇게 다 다르게 생겼는데 어떻게 구별을 못하냐고 한심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의 나는 아이들이 아무리 알려줘도 BTS의 멤버들이 외워지지 않는다. 누가 누군지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4교시, 1반 수업. 나도 모르게 내 눈은 먼저 수진이와 진영이부터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침에 들은 이야기와는 다르게 이미 눈의 붓기도 다 가라앉았고 평소처럼 밝은 모습이다. 그래, 벌써 4시간이 지났구나.


 BTS 오빠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하는 공연을 보면서도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아미, 수진이와 진영아. 다음번 티켓팅은 꼭 성공하길 바랄게. 지금 이 마음이 많은 시간이 지나 조금씩 식어가더라도 오늘의 기억이 즐겁게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BTS가 안 외워질까. 문득 너무나도 그립다, 그 시절의 꼬꼬마 강타 오빠, 누가 볼까 봐 다이어리 속에 있는 사인을 몰려 펴보며 벅찬 표정을 짓던 나, 그리고 그 시대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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