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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Nov 13. 2019

내 삶에 멜로디를 붙이다

멜로디를 타고 이어지는 시간 여행 

 국어 시간에 배우는 내용 중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문법 단원이다. 품사니 문장 성분이니 음운 변동이니 하는 것들을 배울 때가 되면 아이들은 시작하기도 전에 겁을 먹는다. 새로운 내용을 수업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의 태도 때문에 나도 덩달아 더 긴장한다. 중학교 1학년 교육과정에는 여전히 품사가 나온다. 그나마 비중 있는 문법들이 교육과정이 바뀌며 학년을 올라가서 1학년에는 품사만 남았다. 


  지금까지 품사 단원을 네 번 정도 수업해본 것 같은데, 처음의 두려움과는 달리 막상 배우고 나면 다른 단원보다 오히려 쉽다고 느끼는 아이들을 많이 봤다. 끊임없는 반복도 한 몫하겠지만, 정말 큰 이유는 바로 '품사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규 때 품사 수업을 앞두고 국어과 카페에서 발견한 품사송이라는 노래를 때마다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려면 내가 먼저 불러야 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가사를 나눠주고 멜로디를 틀어줬을 뿐인데 나보고 불러보라는 말은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불러보라는 말도 하기 전에 아이들은 이미 신나게 부르기 시작했다. 실로 멜로디의 힘은 위대하다.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

 명사를 대신하는 대명사

 숫자를 나타내는 수사

 이 셋은 몸체라서 체언


 체언 뒤에 붙는 조사 관계언

 체언을 꾸며주는 관형사

 용언을 꾸며주는 부사

 관형사와 부사는 수식언


 느낌 놀람 감탄사는 독립언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

 상태나 성질은 형용사

 동사와 형용사는 용언 


 '바윗돌 깨뜨려~' 멜로디에 맞춰서 몇 번 부르다 보면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 외웠다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 품사송은 누가 지은 것인지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가사와 입에 착착 붙는 멜로디라니. 문법이 싫다고 투덜대던 아이들도 어느 순간부터 밝은 표정으로 같이 부르고 있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이들이 지나갈 때는 나마저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바로 음악의 힘인 걸까. 


 품사송을 계속 부르다가 수업이 마칠 때쯤 좀처럼 질문을 하지 않는 현정이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선생님도 중학교 때 품사 배우셨어요?"


 벼락치기 모범생이었던 나는 안타깝게도 기억 속에 품사가 없다. 더 솔직히 말하면 중학교 때의 수업 대부분이 기억에 없다. 게다가 국어는 정말 한 시간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 수많은 국어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있었던 걸까. 배우긴 했을 텐데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대답하고 교실을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런 노래로 품사를 배웠다면 가사를 다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멜로디를 들었을 때 잠깐씩이라도 향수에 젖을 수는 있을 텐데, 아쉽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 그래서 지난 학교에 근무할 때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적이 있다. 나도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피아노 학원을 다닌 사람이었다.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콩쿠르 대회에 나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피아노 학원을 끊고 나자 연습하고 배웠던 세월이 무색하게도 정말 빠른 속도로 잊히고 말았다. 손으로 배우는 건 기능적인 거라 잊은 것 같아도 쳐보면 그게 아닐 거라는 말도 내겐 그저 말뿐이었다. 내 머리에 남은 건 '도레미파솔라시도'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나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꿋꿋이 피아노를 세 달 정도 배웠다. 아주 간단하게 악보를 바꿔놓은 뉴에이지 책을 들고 다니면서 혼자 심취했었다. 학교를 옮기고 이사를 하면서 마땅한 피아노 학원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피아노와 인연을 끊게 되었지만 아마 앞으로 다시 그 인연을 이어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악기를 연주하는 일에 평균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음,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 않다. 


 어릴 땐 내가 진짜 노래방을 좋아하긴 했는지 믿기지도 않을 만큼 지금의 나는 노래 부르기를 싫어한다. 싫다고 안 부르다 보니까 노래 실력도 점점 더 퇴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보면 음악과 나는 거리가 멀구나.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 나는 음악 듣기를 그 무엇보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컴퓨터를 켜면 무조건 유튜브에 먼저 들어가 음악부터 틀어놓고, 컴퓨터를 하지 않을 땐 거실에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이용해 음악을 틀어놓는다. 혼자 살 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출근 준비를 했다. 대학교 땐 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살았다.


 일상의 배경처럼 편하게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귀에 착 달라붙는 멜로디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노래를 찾게 되면 한동안 공부를 할 때도, 시험을 볼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계속 그 노래가 귀에 맴돈다. 당연히 다른 일에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노래를 찾으면 더 이상 머릿속을 맴돌지 않을 만큼 질리도록 듣는 게 내가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놓쳐버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나는 귀에 착 달라붙는 노래를 끊임없이 갈구했다. 


 안타깝게도 나와 음악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음악 취향이 특이한가? 그보다는 성격이 다 다르듯 음악 취향도 다른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같은 집에 살면서 남편과 나는 음악 취향도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서로의 음악 취향 차이를 알면서도 그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은 굳이 하지 않는다.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을 때 내 귀에는 음악이 안 들리는 것 같다. 착 달라붙는 맛이 없고 의미 없이 귓바퀴 앞에서 사라지는 느낌이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너무 졸려서 운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차에서는 대체로 내가 양보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음악 취향이 확고하고, 다른 사람의 음악 취향에 맞추지 않으려는 내가 예전에는 억지로 어떤 노래를 좋아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길 가다가 들으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노래들이 몇 곡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성시경의 '좋을 텐데'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가지고 연락을 이어가던 남학생이 있었다. 당시 유행했던 MSN 메신저로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어느 날 그 남학생이 추천한 노래가 바로 이 '좋을 텐데'였다. 나 역시 성시경을 이미 좋아하고 있었지만 '좋을 텐데'보다는 다른 노래들을 더 좋아했었는데, 한동안 이 노래를 더 많이 들었던 이유는? 많이 듣다 보니까 이 노래가 더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노래 가사처럼 포근한 달빛마저 슬퍼 보이기도 했다.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중학교 때 방바닥에 엎드려 일기를 쓰면서 들었던 핑클의 '서랍 속의 동화', 중학교 3학년 때 출발 드림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듣고 반해서 밤마다 컴퓨터로 찾아 듣고 노래방 갈 때마다 마이크를 독차지하고 불렀던 쿨의 '올포유', 학원 가는 버스 안에서 영어 듣기 대신 주구장창 되감기 해서 들었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수능을 앞두고도 왜 이렇게 노래만 듣고 싶은지 자꾸 떠올랐던 휘성의 '미인', 처음 경험한 사회생활이었던 볶음밥 집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던 케이팝의 '추억의 향기', 일본어를 공부한답시고 책을 펴고 있었지만 귀에는 수없이 반복됐던 케이의 'still', 임용을 준비하면서 이대로 십 년이 훌쩍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창가에서 들었던 에그자일의 'Pure', 남편을 처음 만나기 시작했을 때 질리도록 듣고 있었던 'Officially missing you', 끝도 없을 것 같다. 


 너무 많이 들어서 한때 질려버렸던 노래를 많은 시간이 지나 우연히 들었을 때의 기분이란, 무슨 단어로 표현을 해야 할까. 그때 그 시간의 공기에서 다시 숨 쉬게 된 기분이랄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힘들었던 기억에도 멜로디를 붙여놓으면 아련하고 그립기만 하다. 멜로디를 타고 잠시 이어지는 가상의 시간 여행이 짜릿하고 기분 좋다. 음악의 힘이란 정말 위대하다고 한번 더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지금 이 시간에 멜로디를 붙인다. 



인생이 밥이라면 음악은 반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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