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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Nov 29. 2019

고양이가 무서워

고양이 공포증 이젠 벗어나고파

 어제 오랜만에 집 앞에서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주차된 차 앞으로 얼굴을 삐죽 내밀고는 어김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주시했다. 나도 잠시 그 자리에 굳어서 마주 봤다. 차 뒤로 방향을 바꿔서 집에 들어오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씨'라는 작은 추임새를 넣었던 것 같다.


 "고양이는 왜 갈 길 빨리 안 가고 저를 보면서 서있어요?"

 "무서워서 그렇겠죠. 고양이가 보기엔 자기가 고질라 같을 텐데."





 나는 고양이를 싫어한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고양이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어도 그 정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어릴 때 유치원에서 고양이를 키웠었다. 사람으로 치면 <영희> 정도 되는 이름이라고 보면 될까, <나비>라는 이름을 가진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보통 크기의 길고양이였다. 어린 나는 <나비>와 눈을 마주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많이 쓰다듬기도 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나비>가 없어졌을 때는 큰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원인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나는 고양이에게 할큄을 당한 적도 없고 <나비> 이후로는 고양이와 몸이 닿은 적도 없었다. 무서워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따지고 보면 고양이는 내게 아무런 짓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고양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래도 꼭 이유를 분석해야 한다면 아마도 초등학교 때 으슥한 골목에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담벼락에 앉아 있는 도둑고양이를 여러 번 마주하게 됐는데 그때 많이 놀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철문을 열자마자 고양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때부터 나는 고양이를 보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수많은 집사님들이 보면 불쾌하시겠지만 더 솔직히 고백해본다. 나는 고양이는 싫어하지만 강아지는 아주 좋아한다. 강아지를 보고 싶어서 길을 지날 때는 일부러 동물병원 앞을 통과하기도 하고, 강아지를 키우는 네일숍에 그 강아지를 보기 위해서 또 방문한 일도 있었다. 강아지의 새까만 눈과 코를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고양이를 보면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무서워할 수도 있다. 또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는 정말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 남편은 고양이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고양이가 보기에 내가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상기시키며 고양이는 절대로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고양이의 어디가 그렇게 무서워요?"


 가장 무서운 부위는 '눈'이다. 신비롭고 깊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이유로 나는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길 가다가 우연히 옆을 바라봤을 때, 특히 밤길에 고양이의 빛나는 두 눈과 마주쳤을 때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꼿꼿하게 세우고 다니는 '꼬리'도 왠지 무섭다. 수염도, 귀도, 입도, 살금살금 걷는 그 걸음걸이도 다 무섭게만 느껴진다.






 요즘 고양이가 부쩍 많아졌다. 길 고양이도, 집 고양이도. 카페나 미용실, 식당에서도 고양이를 키우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미리 알았더라면 방문하지 않았을 텐데 모르고 갔다가 난처했던 적이 몇 번 있다.


 정확히 기억한다. 군산의 '안젤라 분식' 백종원도 방문했다는 유명한 떡볶이집. 군산에 놀러 갔을 때 거길 꼭 가야 한다며 시장 안쪽의 분식집을 굳이 찾아갔다. 사장님이 길 고양이 식사를 챙겨주시는 따뜻한 분이시라는 걸 미처 몰랐지.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길 고양이들이 떼 지어 분식집 안으로 들어왔다. 내 눈 앞에서 익숙한 태도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떡볶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을 잃은 채로 기계처럼 떡볶이를 씹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성 팜랜드에 가는 길에 들렀던 '안일옥' 100년 설렁탕 명가라고 하는 큰 식당에 고양이도 입장을 할 줄이야. 내가 먹고 있는 게 설렁탕인지 김치찌개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


 정신과에 가려고 했었다.


 떡볶이도, 설렁탕도 고양이 때문에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며 정신과에 가서 고양이 공포증을 치료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남편은 진지하게 권유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는 남편 앞에서 내가 부끄럽다고 말씀하셨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나처럼 고양이 공포증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았다. 어떤 학생은 고양이를 마주치는 순간 너무 무서워서 지갑이랑 휴대폰을 길에 던져버리고 도망쳤다는 고민 글도 있었다. 고양이 공포증이 있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최면 치료를 한 적도 있었다. 일단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 최면치료를 하게 될까. 노출 기법이라고 하면서 방 안에 고양이랑 둘이 놔두면 어떡해. VR 치료를 한다면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릴 것 같은데. 이래저래 멀리멀리 생각만 더 나아갔다.


 정신과 치료비를 대충 검색해보고는 일단 집에서 노력해보기로 했다. 남편은 틈날 때마다 텔레비전에 '고양이 춤'이라고 하는 영화를 틀어놨다. 어디서 이런 건 구해가지고 진짜. 어느 날 길에서 애완 강아지, 고양이를 위한 전자제품을 광고하는 전단지를 받았는데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검은색에 갈색이 섞인 고양이 얼굴이 크게 나와있었다. 남편은 그걸 안 버리고 집에 가지고 오더니 고양이 얼굴만 보이도록 접어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였다. 고양이를 익숙하게 느끼게 하려는 남편의 수많은 노력들. 그런데 어제 길에서 마주쳤을 때의 내 반응을 보니 별 효력이 없나 보다. 이놈의 고양이 공포증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양이야, 미안해. 너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나는 너가 왜 이렇게 무섭니. 하핫. 웃음이 나올 뿐이다.  


고양시의 마스코트라고 한다, 실물 고양이는 무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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