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의 끝자락에서
2019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한 달 뒤에 나는 2020년을 맞이할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제 2010년대도 이렇게 저물어간다며 좀 더 무겁게 의미를 부여해본다. 이제 한 달 뒤부턴 2020년대를 살아가야 할 테니까.
아이들 앞에서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나 혼자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가 있다. 늦게 태어난 아이들은 미처 겪지 못한 몇몇의 경험이 이렇게 자랑거리가 될 줄이야. 이런 게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나? 판단할 겨를도 없이 나는 자랑부터 하고 있다. 너그러운 표정으로 나이 많은 선생님의 자랑에 귀 기울여주는 아이들을 보면 참 고맙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온통 빨개졌던 2002년 월드컵 때의 이야기, 이런 일이 우리 생에 또다시 있을까? 우리나라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연달아 이긴 것도 믿을 수가 없겠지. 거리의 광장마다, 술집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외치던 풍경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자동차 경적으로 이어지는 응원에도 그저 웃음이 나왔던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
2010년대를 한 달 남기고 나는 또 아이들 앞에서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했던 그 당시 모습을 회상해본다. 나도 모르게 어깨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천 자리가 바뀌던 역사적인 순간! 1999가 2000이 되던 때의 나는 그래 봐야 텔레비전 보고 유행가를 따라 부르며 친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평범한 여중생이었다. 시대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엔 아직 어렸다. 그런데도 그 당시의 긴장감이 20년 후의 지금까지 흐릿하게나마 전해지고 있는 걸 보면 언론에서 많이도 떠들었나 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구 종말'에 관심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릴 때부터 삶이 힘들다고 느꼈고, 그래서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 '지구 종말'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에서 '노스트라다무스'를 알게 되었다. 다른 정보는 깔끔하게 잊어버린 채,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 7월에 지구가 종말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사실만 머리에 남았다. 1999년 7월을 살아가던 나는 내심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우습게 틀려버리고 그 당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2000년 5월 5일이 되면 행성이 십자가 모양이 되어 지구가 폭발할 거라는 내용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내가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가? 내 기억에는 분명히 이런 내용이 남아있다. 또 각종 뉴스에서는 1999가 2000이 되면서 수많은 전산 시스템에 오류가 날 것이며 세상에 난리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내 마음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내가 '뉴밀레니엄'이라는 말을 수 없이 입 밖에 냈던 것처럼 익숙하게 느끼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1999년 12월에 나는 반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밀레니엄 생일파티'를 했기 때문이다.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엽서를 여러 장 사서 친구랑 반씩 나눠 우리의 밀레니엄 생일파티 초대장부터 한 장 한 장 만들었다. 그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의 생일은 11월 말이었고, 내 생일은 12월 말이라 우리는 파티 날짜를 방학식 전 주말이었던 12월 18일 토요일로 정했다. 생일 파티 당일보다도 준비하는 과정이 더 재미있었다. '밀레니엄 생일파티'라고 이름 붙인 초대장을 받아본 아이들은 한 번씩 '밀레니엄 생일파티'라는 말을 직접 발음해봤고 그 모습을 보는 나와 친구는 깔깔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생일파티라고 해봐야 별 거 있나. 20년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동네의 저렴한 피자집에서 두세 조각씩의 피자를 먹고 노래방에 가는 게 끝. 한 번의 발걸음에 선물은 두 배로 준비해야 했던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고맙게도 모두 기꺼이 참석해 축하해주었다. 어떤 친구는 가방에서 인형 두 개를 꺼내 하나씩 던지면서 "아무나 한 개씩 받으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노래방에 가서는 서로 한 곡이라도 더 부르려고 사이좋게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었지. '밀레니엄 생일파티'가 끝나고 선물로 가득한 가방을 메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쉬움에 좀처럼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그 날이 그리워질 걸 알고 있었나 보다.
'밀레니엄 생일파티'에 함께 했던 친구들과는 아쉽게도 연락이 거의 다 끊어졌다. 사실 이제는 그때 누가 와줬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이 파티를 열었던 친구 하고만 간간이 연락을 이어가고 있을 뿐.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내 평생에, 우리 평생에 다시 '뉴밀레니엄'을 맞이할 일은 없을 테니 그때 자리했던 그 누군가도 우리의 '밀레니엄 생일파티'를 기억하고 있을까.
1999년에서 2000년이 될 때 나는 아마 집에서 가요대제전을 보고 있었겠지. 여느 해처럼 보신각 종이 울렸고 뉴밀레니엄 시대가 된 후에는 더 인기 있는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겠지. 느지막이 잠이 들었다가 평소처럼 늦잠을 자고 난 후 아점을 먹었겠지. 뉴밀레니엄 시대가 되었어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99년'이라고 쓰던 데서 조금 더 노력을 기울여 '2000년'이라고 날짜를 표기해야 했던 것 말고는 딱히.
지금까지도 나는 새해가 될 때마다 보신각 종이 울리는 방송을 보면서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숙제에 쫓기고는 한다. 종교가 없는 내가 가지고 있는 미신적 태도 때문인지 나는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을 볼 때도,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끄면서도, 어쩌다가 보는 일출 장면에도, 심지어는 일몰을 볼 때도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 소원을 빈다고 그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때 빌지 않으면 기회를 놓쳐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던 나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지금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만한 나이 때의 내 친구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앞으로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나겠지?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서 보름달을 발견했을 때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소원을 빌 수 있도록 어떤 절실함 하나 정도는 가슴에 품고 살고 싶다.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던 그때의 내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