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컴퓨터를 켜면 필수적으로 들어가 보던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먼저 MSN 메신저를 켜고(뒤에는 네이트온으로 바뀜) 싸이월드에 로그인을 한다. 그 당시 서로에게 "내 싸이에도 놀러 와."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던 우리는 의무감을 가지고 서로의 방명록에 글을 남겨 주었다. 싸이월드 파도타기가 끝난 뒤엔 가입한 카페의 새 글을 확인한다. 관심사의 대부분, 친구들과의 화젯거리 절반 이상이 연애, 또는 남자 친구에 관한 것이었던 20대 초반 시절. 가입한 카페도, 찾아보는 글들도 자연스레 같은 맥락이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카페 이름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가입했던 카페 중엔 '짝사랑 탈출 카페'라는 제목도 있었던 것 같다. 게시판에는 구체적인 상황만 조금씩 다를 뿐, "제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할까요?"와 같은 고민 글이 가득했다. 조금 더 발전된 경우라고 해봐야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정도였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여러 사람들이 올린 글을 읽고 글쓴이의 심정으로 댓글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때 내가 글로 공부했던 남의 연애사가 알게 모르게 내 연애에 피와 살이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댓글이 하나 있다. 게시글 자체는 카페의 전체 맥락대로였다. 어떤 남자는 여자 후배에게 호감이 느껴진다고 했고 여자 후배의 이런 연락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언을 요청하는 글이었다. 방구석에 앉아 환한 모니터를 보며 시시덕거리던 나는, 댓글을 확인한 순간 굳어버렸다.
"그런 감정 지겹지도 않아요? 벌써 몇 번째나 느끼는 건지. 조금만 지나면 다 사그라들 감정인데."
<초속 5센티미터>를 처음 접하게 된 건 학교 도서실에서였다.가볍게 집어 든 일본 소설책에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쉬운 마음이 들어유튜브에 검색해보니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앉은자리에서 애니 작품을 끝까지 다 보고도 한참 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무슨 말로 이 작품에 대한 소감을 표현할 수 있을까? 눈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딱히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그냥 미칠 것 같았다.여운이 강하게 남아 입을 헤 벌리고 엔딩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봤다. 그리고 지난주 만화책까지 구입해서 읽고, 미칠 듯했던 내 감정의 정체를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기차가 왜 하필, 이때
멀어져 간다.
틀림없이 언젠가 나는 메울 수 없는 거리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너의 목소리도, 얼굴도 모두 잊어버리겠지.
어떻게 해야 그것에 저항할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아카리와 헤어진 이후 늘 저 멀리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타카키. 상대에게 다정하지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타카키. 어린 시절의 내가 좋아했을 법한 딱 그런 이미지의 남성상이다. 이유는? 뭔가 있어 보이니깐. 저 멀리 무언가를 바라보지 않고 앞에 있는 나를 보게 하겠다고 승부욕을 불태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타카키는 정말 쉽지 않겠더라.
오래전에 갖고 있던 진지하고 성실하고 절실한 마음을 지켜오지 못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며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는 타카키가 순수해 보였던 것도 같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순정남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잖아!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이런 남자의 옆자리를 지키는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인내심을 필요로 할 것 같다.
그래도 멋있다
과거의 기억을 잊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나에겐 타카키처럼 강렬한 첫사랑의 기억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 덕분에 현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초속 5센티미터>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자꾸만 나를 멈추게 한다.
이런 장면 너무 멋지다!
누군가를 보고 설레며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을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가져봤을까(물론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만 센다!). 차마 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옛날 카페의 게시글에 달린 댓글이 맞았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그때의 그 마음이 영원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핑클의 <영원한 사랑>에 세뇌되었던 나는 영원한 사랑을 꿈꿨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타카키처럼 잊혀가는 것에 대해 저항할 힘을 얻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호르몬의 장난일 뿐이라고. 그렇게 따지면 남편과 나는 유효기간이 진작에 지나버린 사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믿는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부장님이 결혼에 관해 해 주셨던 여러 조언 중에 '연애 때보다 결혼한 후의 남편이 더 좋아질 때도 있다.'는 말이 있었다. 겪어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함께하는 긴 시간 중에는 남편이 더 좋아질 때도 있고 눈을 흘길 만큼 미울 때도 있다. 그런데 그건 따지고 보면 연애 때도 마찬가지였으니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크게 변화가 있는 건 아닌 것도 같다.
열정이나 설렘은 점점 희미해져 가지만 남편 앞에서 씻지도 않고 헐렁한 추리닝을 입고 널브러져 있는 나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크게 느낀다. 그리고 이 평온한 감정도 사랑이라 믿는다. 점점 더 편해지겠지? 하지만 가끔은 남편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하겠고, 남편의 반응을 예상하며 설레기도 하겠지. 그런 열정도 설렘도 너무 편하게 느껴져서 좋다. 정의하기에 따라서 영원한 사랑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