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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an 13. 2020

하루 동안 한중일 3개국 맛보기

서울에서 즐기는 동북아시아 3개국 여행 

 서울에서 그동안 구경하고 싶었던 곳들을 묶어 '당일치기 한중일 3개국 여행'으로 콘셉트를 잡아봤다. 예전에 어떤 만화가가 이태원 해밀턴 호텔에 숙소를 잡고 끼니마다 다른 나라 식당에 가서 배를 채우고 호텔에 와서는 그 나라의 영화를 봤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알찬 코스였다. 

 

 시작은 한국에서부터. 아침에 집 앞에서 콩나물국밥을 한 그릇씩 사 먹고 출발했다. 점심은 중식, 저녁은 일식을 먹을 예정이라 최대한 담백하면서도 얼큰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지하철에 타서 노선도를 보면 언제 이렇게 빽빽해졌나 싶다. 중간에 비어있던 부분들이 점점 더 촘촘하게 연결되고 있다. 역 이름도 계속해서 바뀌어가는데 실제로 내가 예전에 오랫동안 살았던 '신천'은 몇 년 전부터 '잠실새내' 역으로 불린다. '신천'을 뜻으로 읽어 우리말로 '새내'로 바꾼 건데 주위의 이쪽 원주민들은 한동안 그게 익숙하지 않고 뭔가 새는 듯한 어감 때문에 살짝 거부감이 있었다. 옛날에(벌써 또 10년이 훌쩍 넘은 기억인 듯) 신천역 앞에서 어떤 분이 폴더폰을 들고 "뭐? 신천이 아니고 신촌?"이라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을 듯. 새로 뚫린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 보니 시흥 어딘가에 새로운 신천역이 생겼던데 그런 걸 보면 '신천'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붙이기 쉬운 이름인가 보다. 새로운 내만 있으면 되는 건지, 대구에도 신천역이 있고. 


 첫 코스는 가산디지털단지! 그 옛날 이름은 '가리봉' 역이었다고. 구로, 가리봉 쪽에 벤처기업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최근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가디단 역에는 큼직한 아웃렛들이 모여 있어 늘 사람들이 붐볐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아웃렛 쪽과는 다른 방향으로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금천 순이의 집'이었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보고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늘 생각하던 곳. 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순이의 집 표지판이 있고 그것을 따라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야 한다. 이런 동네 가운데 체험관을 만들어놓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왼편 순이의 집에 도착한다.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금천 순이의 집 


 들어가니 왼편에 공동화장실이 있었고 문은 많은데 어디로 들어가야 될지 몰라 헤매다가 위에서부터 내려오면 된다고 어떤 블로그에서 봤던 기억을 더듬어 일단 올라갔다. 계단이 좁고 가파르다. 꼭대기 층에 가서 짧은 영상을 한편 보고 내려오면서 관람했다. 사실 새로울 것은 없었다. 요즘 워낙 친절하게 기록을 남기는 블로거들이 많아서 대부분 사진으로 봤던 풍경이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벌집촌'이라고 불렸던 당시 공순이들이 기거하는 집은 이런 주택에 방이 30-40칸이 있었다고 한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 작은 방에서 서너 명이 함께 생활했고 공동화장실을 쓰다 보니 아침마다 길게 줄 서있는 풍경은 일상이었다고. 실제로 방을 보니 너무 좁아서 다리를 펴고 누울 수도 없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방마다 붙어있는 작은 부엌은 말 그대로 너무 작고 좁아서 등을 돌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 텔레비전의 모 프로그램에서 '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 세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70-80년대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비친 적이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남아있지도 않고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기억될 뿐이지만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도 젊음을 다 바쳐 일하신 분들. 그들의 땀과 노력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실제로 내가 갔을 때 학생 단 2명이 있을 뿐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장소가 좀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더 많이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덧붙여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세대'뿐만이 아니고 여러 세대가 희생됐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콩나물국밥과 순이의 집이 한국이었다면, 이제 중국으로 향한다. 순이의 집에서 대림역 차이나타운까지 천천히 거리를 구경하며 걸었다. 순이의 집에서 뒷길로 나와 큰길을 건너가자 중국어 간판이 달린 중국식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짜장면 집이 아니었다. 어떤 가게에는 아예 한글이 쓰여있지 않았다. '우마길 문화의 거리'라는 곳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안으로 들어가 봤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인처럼 보였다.(외모로만 판단하기는 어렵긴 하지만. ㅎㅎ)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곳곳에 있었고, 한국어를 하긴 하는데 말투가 다른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부분은 바로 '냄새'다! 중국 본토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대만, 홍콩에 돌아다니면서 맡았던 그 냄새가 서울 한복판에서 풍기고 있었다! 신기했다. 



우마길 문화의 거리, 중국 느낌나게 한 컷, 마라탕과 샤오롱바오


 대림역 차이나타운을 처음 접한 건 영화 '청년 경찰'을 통해서였다. '범죄도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고. 이런 영화들에만 나와서 나도 가보기 전엔 이 동네가 막연하게 무섭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직접 가보니 사람도 많고 활기차다. 인천 차이나타운, 부산 차이나타운에 몇 번 가보긴 했지만 그냥 짜장면을 많이 파는 관광지 느낌이 강했는데 대림역 중앙시장은 다르다. 냄새부터가 다르다. 차이나타운을 정말 구경해보고 싶다면 와봐야 할 곳은 바로 여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팔지 않는 온갖 식재료와 간식들이 가득했다. 개고기를 많이 파는데 냉장고에 털만 빠진 개의 형체가 그대로 다 보인다는 블로그를 보고는 눈을 조심하며 다녔다. 거리 한쪽에는 '파룬궁' 관련 중국어 신문을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에서의 중식은 마라탕과 샤오롱바오로 결정했다. 작년부터 마라탕이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마라탕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중앙시장 가운데 있는 라화쿵푸 본점에 자리를 잡았다. 옥수수 면과 넓적한 면을 듬뿍 넣고 마음대로 재료를 넣어 마라탕을 주문하고 돼지고기 샤오롱바오를 추가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밖에 나가서 간식을 또 먹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배가 불렀다. 샤오롱바오는 찐빵에 만두소가 들어있는 느낌이었는데 맛있었다. 만두피가 두껍고 쫀득쫀득했다. 마라가 인기는 인기인지 주위 테이블을 보니 둘이서 마라탕에 마라샹궈는 기본이었다. 또 뚝배기에 나오는 빨간 운남 쌀국수가 신기해 보였는데 이건 다음에 먹어보는 걸로. 


일본 가정식 상차림

 

 중국을 구경하고 다음 코스는 일본이었다. 서울에서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는 동부 이촌동이 알려져 있는데 이촌동에는 여러 번 가보긴 했지만 사실 리틀 도쿄라고 할 만큼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구경할 만한 곳을 찾는데 이촌동에는 딱히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말고는 갈 만한 데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촌역을 향하다가 경로를 틀어 오랜만에 대학로에 가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혜화로 향했다. 버스를 타서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지나가면서 남대문, 남대문시장, 명동, 종로, 청계천 구경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대학로를 한 바퀴 돌아보고 '혜화역 일식'을 검색하자 1번이 '정돈'이었고 2번이 '호호식당'이었다. 이 두 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는데 두 군데 다 이미 사람들이 줄을 엄청 서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요일 저녁이었으니까. 결국 정돈을 지나 호호 식당을 지나 아쉬운 대로 '돈돈정'이라고 하는 일본 가정식 식당에 들어왔다. 딱 한 테이블이 비어있어서 운 좋게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치킨 그릴 정식을 시켰고 남편은 믹스 프라이 정식을 시켰다. 치킨이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한솥도시락 치킨 도시락의 그것과 비슷한 맛이었다. 나는 "일본 가정에서는 밥을 이렇게 먹어요?"라는 순수한 질문을 던지고 적지 않은 양을 비웠다. 주위엔 우리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 설렘을 안고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다. 




 삼시세끼를 이렇게 꼬박 챙겨 먹은 게 오랜만이라 배가 많이 불렀지만 하루 동안 한중일을 다 돌아봤던 나름대로 의미 있는 하루였다. 마지막 코스에서 조금 더 치밀하게 조사해 일본식 카페에 갔다가 일식당에 갔으면 더 좋았을 것도 같다. 어쨌든 이렇게 튼튼한 다리와 넓은 배만 있다면 하루에 3개국 맛보기 여행도 가능하다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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