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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an 29. 2020

또 순식간에 16년이 지나갈까 봐

그 가을 잠들 수 없었던 이유 

 언제부터였을까. 나와 대중매체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만 있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만 해도 싸이월드가 대세여서 중학교 아이들과 별로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페북, 인스타그램으로 빠르게 대세 SNS의 흐름이 옮겨가면서 도태되고 말았다. 페북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따라가서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뒷조사를 하기도 했는데 인스타그램은 더 어렵다. 이 시대에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도 없는 사람, 바로 나다! 얼마 전에야 겨우 자이언트 펭 TV를 보고 뒤늦게 펭수의 매력에 빠져들며 젊은 감각을 갖고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탁에 앉아 유튜브로 펭수를 검색해보다가 맞춤 동영상을 통해 젝스키스 신곡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유튜브의 요 맞춤 시스템 정말 대단하다!) 20년 전에는 여섯 명, 3년 전에는 다섯 명, 이번에는 네 명으로 나왔다. 신곡을 들으면서 2016년 잠들지 못했던 그 가을의 숱한 밤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 다시 가슴이 벌렁벌렁해진다. 


 나는 젝스키스 팬은 아니었다. 과거엔 오히려 강타 오빠를 쫓아다니던 초딩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 송파구에 살았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다. 에초티는 당시 송파구 쪽에서 춤을 잘 추는 고등학생들을 뽑아 만든 그룹이라는 말도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강타 오빠는 오금동에 살며 오금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고, 오금동이라면 우리 집에서 버스를 한 번만 타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반드시 오금동에 가야 하는 게 우리의 숙제였다. 먼저 오금고등학교 주위를 한 바퀴 돌고 거기서부터 강타 오빠가 사는 집까지 걸어가는 게 코스였다. 강타 오빠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오빠가 걸었던 길을 우리가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곳은 이미 꽃길이었다. 마치 강타 오빠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다니다가 정성이 통했는지 교복을 입은 강타 오빠와 드디어 마주쳤다! 요즘 표현으로 강타 오빠 실물 영접이었다!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있는 꼬마 초딩들이 걱정됐는지 오빠는 우리의 에초티 다이어리에 사인을 해주면서 얼른 집에 가라고 얘기했었다. 




 에초티와 젝스키스. 학년이 올라가면 그 친구가 에초티 팬인지 젝스키스 팬인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쉬는 시간마다 연예인 사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에초티 파와 젝스키스 파가 갈렸던 것도 같다.(하, 나의 학창 시절 실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연예인보다는 주위 남학생들에게 더 관심이 많아졌던 나는 뒤늦게 달달한 멜로디의 젝스키스 노래에 빠져들었다. 커플, 예감, 너를 보내며, 기억해줄래 같은 노래들은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저격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들어도 별로 촌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2016년에도 이미 나는 어떤 연예인이 대세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지도 오래된 상태였고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보다는 아홉 시 뉴스에 훨씬 더 익숙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우연히, 정말 우연히 젝스키스가 무한도전을 통해 재결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처음으로 무한도전을 기다렸다가 챙겨보며 오래전 젝스키스 노래들을 복습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몇 번만 들어도 가사가 머릿속에 착 기억이 됐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었는지 기억력도 예전만 못했다. 


 16년 만의 콘서트를 한다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티켓팅이라는 것에 도전해봤다. 아이들은 티켓팅을 하려면 무조건 몇 명이서 피시방에 가서 해야 된다고 했는데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에 집에서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옥션에 로그인을 한 상태로 기다리다가 정각이 되자마자 클릭을 했는데 이미 대기자는 6천 명이 넘어갔다. 한 장에 십만 원 가까이 되는 콘서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충격이었다. 티켓팅이 어렵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을 때와 직접 실패함으로써 느껴진 좌절감은 천지 차이였다. 그렇게 1차 티켓팅에는 실패했지만 패자부활전이었던 취켓팅에는 기특하게도 성공해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을 데리고 16년 만에 젝스키스를 만나러 갔다. 


16년 만에 모인 노랭이들




 콘서트를 전후로 약 한 달간 잠이 오지 않았다. 콘서트 전에는 퇴근하고 수업 준비를 마치고 나면 무조건 젝스키스 노래를 들었다. 나는 에초티 팬이었다는 이유로 젝스키스의 타이틀 이외 곡들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비싼 콘서트를 보다 즐기기 위해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콘서트를 보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복습하듯이 젝스키스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40대가 되었다고 했지만 젝스키스 멤버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기에는) 별로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폼생폼사 같이 격한 곡이 끝나고 난 뒤엔 솔직하게 마이크에 대고 허덕이며 힘들어했다. 멤버들은 숨찬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이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인간적인 면이 느껴져 오히려 더 좋았다. 그리고 연예인을 보며 환호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그 옛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세상에, 16년이 지났단다. 믿기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이 무서웠다. 젝스키스 노래들을 들으며 회상해본 지난 16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음은 분명했지만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매일 밤 자려고 누우면 바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또 눈 깜짝할 사이에 16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릴까 봐 이리저리 뒤척였다. '눈 깜짝할 사이'라는 관용구가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내가 잠들든 아니든 시간은 똑같이 흘러갈 거라는 것. 그리고 미래 어느 날의 나는 '또 눈 깜짝할 사이에 16년이 지나갔다'라고 생각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을 할 거라는 것.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건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는 에초티와 젝스키스 오빠들이었다. 과거 어느 시점을 함께했다는 이유가 이렇게 큰 힘이 될 줄 몰랐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반복해서 젝스키스의 신곡만 듣고 있다. 


 *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쓰고 보니 젝스키스 신곡 홍보글 같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젝스키스의 'ALL FOR YOU' ㅎㅎ ♡


16년 만의 콘서트는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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