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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Mar 20. 2020

소설을 썼습니다만

'무엇을 위하여' 그 답을 찾기 위한 과정

제가 장편소설을 썼습니다만


 2018년 가을부터 구상하기 시작해 겨울부터 집필을 시작했던 장편소설을 얼마 전에 완성했습니다. 집필 기간은 약 1년 2개월, 이번 겨울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매달려서 겨우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글을 브런치 창에 남기기까지 꽤 많은 고민이 앞섰습니다. 제 소설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다면 이게 마치 실패의 공식적인 기록처럼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무언가에 몰두하고 계획대로 제 행동을 통제해 결과물을 만들어낸 게 상당히 오랜만이라 자랑하고 싶기도 했답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시험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학창 시절의 마음가짐을 다시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국어 시간에 시는 몇 번 써본 것 같고, 숱하게 남긴 일기, 편지들이 다 나름대로의 수필이겠지만, 소설은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대학교 때부터 했는데 별다른 아이디어도 없고 감히 제가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몇 달 동안 머릿속으로 내용의 틀을 잡고 나서는 무턱대고 컴퓨터 앞에 앉아 빈 문서를 띄워놓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장 종결형을 과거로 해야 하는지, 현재로 해야 하는지 거기서부터 막혔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장면을 만드는 것도, 주인공의 속마음을 서술하는 것도, 한 줄 한 줄이 다 어려웠습니다.


 내가 이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주위를 묘사해보자는 생각으로 빈 문서를 채워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분량을 늘리는 게 목적이었는데 쓰고 보니 너무 길어져서 줄이는 게 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쓴 원고가 200자 원고지로 1300매 정도 된다고 하네요. 줄이는 게 늘리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했지만 다 힘들게 짜낸 에피소드들이라 어느 하나를 지운다는 것도 쉽지 않아요. 또 제가 보기에는 나름대로 다 소소한 재미와 의미가 있는 부분이라서요.





투고, 그리고 연락, 그 첫 경험


 원고가 생겼으니 투고를 했습니다. 교보문고에 가서 출판사 목록을 수집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지금 코로나 때문에 다중 이용 시설에 갈 수가 없으니 인터넷으로 찾아 몇 군데의 출판사에 제 원고를 보냈습니다. 부푼 꿈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런데 보내고 나서 제가 보낸 메일을 다른 컴퓨터에서 열어 보니, 기획서에 넣은 이미지는 엑박이 뜨고 줄거리 요약에 띄어쓰기는 여러 군데 틀리고, 심쿵했어요. 1년 넘게 공들인 원고를 막판에 이런 식으로 보내버리다니. 하지만 이게 거절의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유명한 출판사들은 아직도 메일을 열어보지 않습니다. 몇 군데는 열어보기만 하고 접수 확인 메일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몇 군데는 검토 후 연락을 준다고 답장을 준 뒤로 연락이 없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한 출판사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 일반전화번호가 뜨길래 스팸인 줄 알고 안 받았다가 혹시 몰라 네이버에 그 번호를 입력해봤는데 딱 출판사가 검색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바로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통화는 대략 40분 넘게 이어졌고 그 시간 동안 저는 긴장이 됐는지 봄이 왔는지 땀이 많이 났어요.


 대표님과 통화를 했는데 계속 제 원고를 칭찬해주셨어요. 제가 쓴 문장이 문법적으로도 오류가 없고 쉬워서 잘 읽힌다고. 쉽게 쓰고도 싶었지만 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어렵게, 그럴듯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쉽게 읽히는 글만큼 좋은 글이 있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제 소설은 한국소설이 아니라 일본 소설 같다고 하셨어요. 헉! 이것은 마치 점쟁이가 제 과거를 맞힌 것 같은 소름이. 제가 한국소설보다는 일본 소설을 많이 읽었거든요. 덧붙여 우리나라에 일본 소설에 길들여진 독자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은 한국소설을 읽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제 글이 그런 분들에게 읽히는 한국소설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할 거고요. 부푼 꿈의 일부분을 발설하자면 일본어 번역판을 내는 건데 그 부분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거고요. 출판사 이름을 걸고 내기에 그리 부족한 글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요즘 책이 안 팔린다는 것. 에세이보다 소설 분야가 더 어려운가 봐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는 무명작가라는 것. 이미 등단한 작가 작품도 읽히는 기회를 가지는 게 어려운 때에 아주 초짜인 제 소설에 전적으로 투자해 출간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답니다.(ㅎㅎ) 이런 답을 예상했듯이 제가 해버린 대답은 '이해합니다'(?) '여기저기서 다 경력직만 찾으면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는 겁니까'라고 했던 펭수의 말이 생각나네요. 저도 본질은 알고 있습니다. 칭찬을 많이 해주시긴 했지만 제 원고에 그럼에도 해볼 만큼의 끌어들임은 없었던 거죠. 그래도 친절한 대표님은 일단 소설 분량을 좀 줄이고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셨으니 완전한 거절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


 출판사를 검색해보다가 생각보다 자비출판으로 나온 책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자신의 돈으로 책을 내는 시대.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출간 작가가 된다는 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뿌듯함이기도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분들의 글이 유명 출판사 기획출판으로 나오는 글에 비해 꼭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일단 유명해지면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온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특유의 우유부단함을 발휘해 제가 쓴 소설은 평생 폴더에만 저장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다른 출판사를 좀 더 알아보려고 했는데 며칠 동안 인터넷이 고장 나는 바람에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일단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독서의 계절이 올 때쯤, 일본과의 관계가 다시 부드러워지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소설에 대한 생각이 점점 밀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소설을 쓰는가, 무엇을 위하여 책을 내는가, 잠시 동안 본질적인 질문에 고민해보다가 당장 해야 할 일들에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만약 먼 훗날 제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그 과정 속에 있는 이 시간 덕분이겠죠? 



 그랬습니다. 혹시라도 결과물이 나온다면 다시 브런치에 제 소설 이야기를 올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넓은 마음으로 그냥 그렇구나 생각해주세요.(ㅎㅎㅎ)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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