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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pr 17. 2020

바삭칸 치킨을 팔지 않는 동네

지나간 광고까지 그리워지는 이유 

 얼마 전에 남편이 컴퓨터로 영상을 보는데 귀에 익은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원래 영어 가사가 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귀에는 그저 '바삭칸, 빠 바삭칸, 바삭칸 치킨'일 뿐이었다. 꽤 오래전 그 광고가 흘러나오던 시절에도 여러 번 흥얼거렸었는지 그 노랫말이 입에 착 붙었다. 며칠 동안 생각날 때마다 '바삭칸, 빠 바삭칸, 바삭칸 치킨' 노래를 불렀다. (물론 집에서만ㅎㅎ) 며칠에 걸쳐 그 노래를 들어야 했던 남편이 물었다.


 "바삭칸 치킨 맛있어요?"


 여태까지 바삭칸 치킨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먹어보지도 못하고 매일 노래만 부르는 내가 불쌍하다며 남편은 내게 바삭칸 치킨을 시켜주기로 했다. 스마트폰 몇 번 터치로, 드디어 바삭칸 치킨을 주문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치킨 집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동네 매장에는 바삭칸 치킨을 팔지 않기 때문에 자동 취소되었다는 연락이었다. 그래서 바삭칸 치킨의 맛은 블로거들의 문장을 통해 상상하며, 평소에 먹는 그냥 반반 치킨으로 배를 채웠다. 그냥 치킨도 맛있긴 하지만 상상 속 바삭칸 치킨에 대한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바삭칸 치킨의 겉은 정말 바삭하고 속은 정말 촉촉하다는 블로거들의 후기가 입가에 계속 맴돌았다. 





 5년째 살고 있는 동네는 대부분의 생활 편의 시설이 도보로 이용 가능한, 일명 '살기 좋은 동네'이다. 마트와 백화점, 지하철 역, 가전제품 서비스 센터, 공원이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데다가, 출퇴근마저 걸어서 하고 있으니 이 이상으로 살기 좋은 동네가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바삭칸 치킨 사건 이후로 며칠 동안 내게 우리 동네는 그저 '바삭칸 치킨을 팔지 않는 동네'일 뿐이었고, 독립하기 전까지 약 20년을 살았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 짙어졌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부산 한복판에서 성장한 남편은 부산만큼 살기 좋은 데가 어디에 있냐고 말한다. 부산에서 겨울방학을 보내고 2월 말 상경할 때마다 느꼈다는 추위에 대해서는 여러 번 묘사하고는 한다. 남편 말에 의하면 서울의 추위는 욕이 나올 정도였단다. 또, 서울에 도착해 버스를 내리면 공기가 탁한 게 바로 느껴질 정도였단다. 산과 강, 바다가 다 가까이 있는 부산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직도 가끔씩 그리움 잔뜩 섞인 말들을 내뱉기도 한다. 


 남편이 그럴 때면 나 또한 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만큼 살기 좋은 도시가 어디에 있냐고 말한다.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거꾸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고. 서울은 공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나는 내 고향 서울의 공기가 제일 상쾌하다고 진심 반 억지 반으로 목소리를 더 키운다. 예로부터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겠냐면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잠깐 정리해보자면, 대전 출신 사람은 대전만큼 살기 좋은 도시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조용하고 자연재해가 거의 없는 곳도 없다고 말한다. 대구 출신 사람은 대구가 살기 좋다고 한다. 서울만큼 붐비지도 않으면서 먹을거리도 가득하다고. 과천 출신 사람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복잡하지 않은 과천만큼 좋은 곳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니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이런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 막연하게나마 어떤 느낌이 다가왔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정말 살기 좋은 동네들이 있겠지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오랜 시간 살았던 동네가 좋다고 그리워하는 건지.


 



 내가 좋았다고 그리워하는 것은 내 고향이었던 우리 동네일까, 그 공간에서의 그 시절 우리 모습일까. 이 글을 쓰기 전에 '바삭칸 치킨 광고'를 검색해보니 10년 전 숫자들이 모니터에 남았다. 남편의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아 이건 얼마 전에 치킨 광고'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또 한 번 눈 앞이 아찔해졌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던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수험생 때만큼 텔레비전이 재미있었던 적이 없었다. 공부를 하면서 머릿속에 맴도는 이 멜로디를 지워버리기 위해 독서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나는 몇 번이나 머리를 가로젓거나 천장을 바라봤을까. 그런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니 그때만큼 빛나던 때가 없었던 것 같아 그립기만 하다. 


 요즘 유튜브에 들어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클릭하는 영상이 하나 있다. 바로 펭수의 참치 송. 요 며칠 동안 이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오늘은 점심시간에도 들어버렸다. 내일 주말인데 뭘 먹을까 물어보는 남편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펭수처럼 "따, 따!"부터 외쳐버렸다. 내일은 정말 참치를 먹을 것 같다. 이렇게 중독되어버리다니, 정말 성공적인 광고다. 먼 훗날 우연히 펭수의 참치 송을 다시 들으면, 바삭칸 치킨을 팔지 않는 지금의 우리 동네가 참 살기 좋았다고 그때가 좋았다며 그리워하겠지? 그렇더라도 바삭칸 치킨은 조만간 꼭 먹어보아야겠다. 




이 시대 최고의 광고 모델, 펭수                @펭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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