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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pr 22. 2020

이 기분의 감염경로

콩알의 절반보다도 작은 그 약을 떠올리다 

 많은 하루가 반복되지만 그 어떤 시간도 결코, 이전과 같지 않다. 지난달 또 한 번의 새로운 경험을 했다. 잠결에 등과 팔을 마구 긁다가 겨우 깨어났다. 처음엔 벌레에 물렸나 싶었는데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긴 했지만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붓기도 가려움도 차차 잦아들었다. 새벽의 미친 듯한 가려움을 잊고 생활하다가 잠들기 직전에야 다시 기억이 나서 가렵더라도 오늘 밤엔 절대 긁지 않겠다는 각오로 잠옷 바지를 상의 위로 바짝 올려 입었다. 그렇게 잠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더 심한 가려움에 등과 팔을 미친 듯이 긁다가 잠에서 깼다. 전날보다 더 빨갛게 동글동글한 붓기가 올라와있었다. 이런 적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원인이나 해결방법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너무 가려울 뿐이라 이른 시간에 혼자 거실에 나와 춤추듯이 몸을 흔들어댔다. 


 가려움증이 조금 가라앉고 휴대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피부 가려움증'에서 시작한 검색은 '두드러기' '진드기' '집먼지 진드기'로 이어졌다. 알레르기 방지 침구, 진드기 방지 침구라는 말만 믿고 침구를 너무 오랫동안 빨지 않았던 건가? 주말마다 부지런히 침구 청소기는 돌리고 있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침구 청소기로 침대 매트와 베개, 이불을 평소보다 꼼꼼하게 누르며 지나쳤다. 내친김에 소파 밑에 있는 매트도 탈탈 털고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나의 정신적 지주와 다름없는, 오래된 인형들에 진드기 방지제를 뿌리고 햇볕에 말렸다. 침실에 놓는 가습기 물도 비우고 말렸다. 하루 종일 환기를 했다. 다시 밤이 되었고 나는 잠들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피곤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미칠 듯한 가려움에 다시 잠에서 깼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새벽 1시밖에 되지 않았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남편마저 원망스러웠다. 두드러기 증상은 상체에 집중됐는데 어제, 그제보다 훨씬 심해져있었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약 6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이 두드러기는 며칠 동안 신기하게도 해가 뜨면 가라앉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밤이 깊으면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새벽에 찍은 두드러기 사진을 들고 피부과에 갔다.


 "처음 증상이 있기 전에 뭐 먹었어요?"

 "처음 증상이 있기 전이라면 한정식을 먹었는데요. 그런데 음식 알레르기 같은 게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까지 친구였던 놈이 오늘은 나한테 사기꾼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한정식이라면 원인을 찾기는 어렵겠어요. 음식 때문이 아닐 수도 있고요."


 헉. 급한 마음에 가장 가까운 곳에 갔지만 인터넷 평점이 너무 안 좋아 가기 망설여지던 병원이었다. 의사의 이런 말투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그렇게 상처를 받고 후기를 쓴 건가 싶으면서도 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일까. 나는 웃음이 너무 헤프다. 해가 떠서 덜 가렵고 살 만하다 이거지. 병원을 나오면서 한정식 메뉴들을 돌이켜보는데 왠지 꿀 찍은 수삼이 마음에 걸린다. 다른 메뉴는 생각이 안 나고 계속 수삼만 생각이 난다. 그렇다면 수삼이? 콩알의 절반보다도 작은 약 몇 알에 두드러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가라앉았고, 그 기쁨에 며칠 만에 아주 오랜 꿈나라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기분이 저기압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긍정력으로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혼자 산책이라도 하며 마음을 달래 보겠는데, 요즘은 퇴근하고 대학원 수업을 듣는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니 기분이 나아질 새가 없다. 그 수업이 끝나고 나면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나가기도 어렵다. 갑자기 말수가 확 줄어서 소파에 앉아 폰만 들여다보니 앞에서 컴퓨터를 하는 남편은 수시로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살핀다. 왜 눈치를 보냐고 애써 웃으며 한 마디 했다가, 더 눈치를 보라고 무서운 척 눈을 흘겨보기도 했다. 손가락으로는 마음을 털어놓는 선생님 두어 명과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콜센터로 변해버린 학교에서 수업 준비는커녕 영상을 찍을 시간을 확보하는 일도 어렵다. 공문의 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자잘한 업무들은 계속 있고, 아이들은 생각만큼 따라오지 않으며, 서버는 그 무엇보다 먼저 터져버린다. 매일 안 하는 아이들, 학부모님들과만 연락을 하니 성실한 아이들에겐 역차별이 된 것도 같다. 어떻게 보면 다행인 건, 우리 반에는 역차별을 받는 아이들의 숫자가 드물다는 것이다! 과목별로 미제출 명단을 보고 연락을 하는 것도 결국 담임의 몫이라 수시로 명단을 확인하는데 늘 우리 반의 숫자가 가장 많다. 너무 힘들다면서 수화기를 내려놓던 앞반 선생님이 나를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을 때, 나는 왜 또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다가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유독 다른 반보다 온라인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다면, 담임의 잘못인 걸까. 나는 그대로인데 담임 반은 좋았다 나빴다 들쭉날쭉할 뿐이라며 아랫입술을 쭉 내밀어본다. 


 그렇다면 이 저기압의 원인은 온라인 개학 때문인 걸까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학을 했어도 다른 방식으로, 다른 원인으로 고통받고 있었을 것이다. 삶은 원래 힘든 거라며 스스로를 토닥이는 게 뭐 하루 이틀 일인가! 


 




 나는 원래 잡생각이 많은 편이었다.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 문제를 풀고 있어도 머릿속 혹은 마음속 일정 공간으로는 늘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험생 시절, 외부적으로는 분명히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컨디션은 끊임없이 오르내렸고 수시로 슬럼프를 겪었다. 더 속상했던 건, 어제보다 오늘 더 힘들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슬럼프의 감염경로 오리무중! 역시 공부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던가. 원인도, 해결방법도 모르니 입버릇처럼 '공부하기 힘들다'는 말만 해댔다. 그리고 힘들다, 힘들다 하니 정말 더 힘들었다. 어쩌면 그땐 그게 최선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공부하면서 딴생각하기 신공을 발휘하여 수업 준비를 하면서, 영상을 찍으면서, 전화를 하면서, 문자를 보내면서 내 기분의 감염 경로를 끊임없이 분석해봤다. 생각보다 많은 문장이 떠올랐다. 어떤 것들은 글자로 옮기는 것조차 너무 유치해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 우울한 기분은 어쩌면 내게는 코로나보다 감염 경로를 찾기 더 어려웠고, 어느 한 가지가 원인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이 원인들 대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대책을 마련한다기보다 또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올해의 나도 예외 없이, 나이 먹기는 두려워하면서 지금 이 시기는 후딱 지나가기를 바란다. 이런 시간들의 연속이 내 인생인가 보다. 두드러기가 싸악 가라앉았던 것처럼 우울한 기분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콩알의 절반보다도 작았던 그 약 몇 알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약발이 받는 느낌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ㅎㅎㅎ)


이 사진이 좋은 이유는 구름 때문일까, 갈매기 때문일까, 다리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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