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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pr 30. 2020

내가 보는 나, 남이 보는 나

양장피 앞에서 펼쳐진 진심

 작년에 오신 부장님 중 한 분이 마주칠 때마다 본인이 수업 들어가는 반에 나와 많이 닮은 아이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 한두 번은 그냥 "아, 그래요?"하고 넘어갔는데 같은 말이 계속 이어지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 기분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그 언젠가의 부장님은 그 아이가 아주 참하고 모범적이며 예쁘다는 말씀을 애써 덧붙이셨다. 그런데 나한테 이 말을 여러 번 하신 것처럼, 아이에게도 닮은 선생님이 있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시는 것 같았다. 어떤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 그런 말씀하시면 애가 기분 나빠할 것 같아요."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차곡차곡 쌓인 짜증의 소심한 분출이었다. 부장님도 늦게나마 이 말뜻을 이해하셨는지 이후로는 이에 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와 그렇게나 닮은 아이가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으니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아이인지. 비상연락망에 있는 아이의 얼굴에서 빨갛게 칠한 입술을 보는 순간, 다른 학년 선생님과 닮았다는 부장님의 말에 아이가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지 그 마음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다. 사춘기,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시기에 예쁜 연예인이 아니라 다른 학년 선생님과 닮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으며 싫은 소리도 못하고 속으로는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얼마 후, 그 아이가 우리 교무실에 심부름을 왔다. 증명사진으로 봤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는 척하지 않으려고 곁눈질로 봤지만 나도 모르게 이 아이가 정말 나랑 닮았는지, 어디가 닮았는지 찾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이 아이와 닮았다는 건가? 이 아이 역시 왔다 갔다 하며 나와 마주칠 때마다 내가 자신과 어디가 닮았는지 찾아보지 않았을까. 선생님들 앞에서는 모범적이고 예의 바른 아이라고 하더라도 친구들이랑 있을 땐 한두 마디의 욕을 섞어 짜증을 내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사춘기 시절의 나였다면 이렇게 말하고도 남았을 거다. 


 "우쒸, 저 쌤이랑 나랑 어디가 닮았다고! 기분 나빠!"   


 한동안 '남이 보는 내 얼굴'이라는 앱이 유행한 적이 있다. 나는 처음부터 해볼 생각도 없었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후기들을 읽어보며 절대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었던 기억이 난다. 후기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볼 땐 그래도 예쁘다 생각하는데, 사진에 찍힌 자기 얼굴을 보면 이상하다고 사진이 잘못 나왔다고 한다는 거다. 그런데 이 앱으로 자기 얼굴을 보니 충격이었다고. 남이 보는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을 줄이야.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서 거울로 봐온 스스로의 얼굴과 너무 달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나도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남이 보는 내 얼굴'을 꼭 내가 알 필요가 있나? 어차피 나는 평생 나로 살아갈 텐데 굳이? 그걸 해본다고 해서 내가 더 예뻐지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조금은 겁을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ㅎㅎㅎ)






 남편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8년이 지났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한 번도 목소리 높여 싸운 적이 없다. 날카로워져서 카톡으로 의견을 주고받거나 내가 삐쳐서 대답을 안 한 적은 몇 번 있지만 큰 소리를 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나는 기분이 나쁘면 입만 툭 튀어나와서 말을 안 하는 스타일이고, 남편은 둔해서 그런 나의 삐침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어쩌다 알았을 땐 어디서 배웠는지 일단 잘못했다고 사과를 한다. 그렇게 몇 시간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사이가 좋아지고의 반복이었다. 남편은 결혼하고도 반전 없는,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내가 보는 눈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운이 좀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도 꽤 착한 것 같다.


 남편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올 때 자주 보는 아저씨가 있단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것 같은데 그 아저씨는 차에서 바로 내리지 않고 휴대폰을 보고 있다고 한다. 나는 보고 들은 게 많은지라 그 아저씨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남편은 다른 방향의 추측을 했다. 가까이 지나다가 유리창에 비친 그 아저씨의 휴대폰 화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냥 인터넷 창이었다고. 회사에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동료들을 많이 봤다면서 그 아저씨도 그런 이유일 거라고 했다. 나는 또 이때다 싶어 그러니 이렇게 집에서 편하게 있는 게 다 내 덕인 줄 알라며 별 의미 없는 말들을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몇 주 동안 주말이 되면 남편은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남편의 친구들은 게임을 이렇게 해도 가만히 놔두는(?) 내가 천사 같다고 했단다! 하지만 실상은, 나는 자느라 정신이 없어서 남편이 게임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몰랐다.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자는 나를 보며 남편은 너무 많이 자는 게 아니냐며 놀라기는 해도 한 번도 깨운 적은 없었다. 나는 조용히 자기 위해, 남편은 편하게 게임을 하기 위해 의도치 않게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야채를 보충해야겠다는 핑계로 양장피를 시켜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겨자 소스를 다 들이붓고 나니 처음 한입씩 먹고는 둘 다 얼굴이 벌게졌다. 그릇에 겨자 소스를 조금씩 씻어내며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도 가져와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자기한테 한 번도 화낸 적이 없다면서 그게 너무 신기하고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조금은 예민하기도 하고 소심하고 날카로웠던 자기가 나를 만나 성격이 많이 둥글게 편안해졌다는 말을, 이 사람이 뻘건 얼굴로 하고 있었다. 내가? 우리는 그 숱한 시간 동안 이런 분위기의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 내용이라니! 


 주위 사람들이 우리 부부가 안 싸우는 이유를 물어볼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었다. 남편은 성격이 아주 둥글둥글해서 내가 서두르고 스트레스받다가도 어느새 이 사람한테 맞춰져서 그냥 편안해져 있다고. 이 사람을 만나서 소심하고 날카로웠던 내 성격이 많이 느긋해진 것 같다고. 몇 번이나 내가 했던 말을 거꾸로 남편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갑자기 양장피 앞에서 펼쳐지는 진심이라니! 깜짝 놀라서 내가 진짜 그렇다고 생각하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다가 그 진지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장난스럽게 내 뒤통수를 쓰다듬어버렸다. 


양장피 앞에서 펼쳐진 대화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 나무위키





 나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의 대부분을 다 남편에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남편은 우리 학교 선생님과 애들을 다 알 정도다. 있었던 일 중엔 물론 좋았던 일도 있지만 안 좋았던 일이 더 많아서 종종 뒷담이나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한바탕 털어놓고 나면 멋쩍어져서 남편에게도 오늘 일이 어땠냐고 물어보는데 남편은 회사 일을 이야기하는 법이 거의 없다. 남편 말에 의하면, 그 회사에는 성격이 이상하거나 일이 서툰 직원도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이게 내 입장에서의 사실인데 왜 남편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양장피의 겨자 소스에 취했던 건가? 그래도 사실이 어떻든 간에 남편의 말이 나쁘지 않다. 내 머리를 백 번 쓰다듬어도 될 만한 이야기였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얼굴만 해도 그런데 성격은 오죽할까. '남이 보는 내 얼굴'이야 앱을 이용해서라도 힌트를 얻을 수 있지만 '남이 보는 나란 사람'에 관한 내용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그 남이 언제 만난 누구냐에 따라 다 다른 말들을 늘어놓게 될 테니. 내가 신도 아닌데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로만 남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는 나란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할 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나는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게다가 말과 글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내 생각과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 뭐랄까.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내가 나란 사람에 대해 표현하기에는, 스스로의 언어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 한계를 점차 좁혀나가는 노력이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내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으로 틈날 때마다 열심히 연습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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