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조 May 14. 2020

내 멋대로 꿈의 해석

좋은 꿈 꾸세요

 "어디선가 1,500원이 생겨서 이걸 빨리 써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파트 상가에 있는 분식집을 기웃거리다가 갑자기 선택한 게 오징어였어요. 오징어를 한 마리 집어 먹고도 여섯 마리인가 남아서 학교에 선생님들 준다고 챙겼어요."


 아침을 먹으면서 지난밤 꿈 얘기를 남편에게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얼른 검색해보고 해몽을 알려달라는 건데 남편은 눈치도 없이 듣고만 있다.


 "무슨 꿈인지 얼른 검색해보라니까요."


 검색을 해보더니 남편이 생각지도 못한 해몽을 찾아 읽는다.


 "마른오징어를 먹는 꿈은 정신적인 사랑보다 육체적인 사랑을 원하고 있다는 거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거나 키스를 하고 싶어 한다는~"


 휴대폰 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웃는 남편의 표정이 이상하다. 더 이상 들으면 안 되겠다.


 "뭐라는 거야. 아니에요! 반건조 오징어였어요!"





 거대한 무언가에 쫓겨 미친 듯이 달렸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었다. 길 모퉁이에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겨우 잠에서 깼다.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이마는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고 실제로 한참을 도망친 것처럼 숨이 찼다. 아직도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멍하니 있었다. 뭐 이런 말들은 내게 해당되지 않나 보다. 정말 생생한 꿈을 꿨다든지,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든지 이런 꿈은 아직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현실에서만큼이나 꿈에서도 둔감한 사람인 걸까.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다. 억압된 욕망이 꿈의 형태로 재현되고는 한다.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여러 번 제목을 들어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의식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의식 세계를 알고 싶어서 꿈 이야기가 기억 너머로 사라지기 전에 휴대폰으로 해몽을 찾아보는 편이다. 그런데 꿈이 생생하지 않은 것처럼 해몽 또한 분명하지 않다. 신기한 건,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희한한 내용의 꿈을 검색해도 대충 비슷한 구절이 검색 결과에 이어진다는 것. '오징어를 먹는 꿈'에 관한 해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이 습관의 시작은 약 10년 전이었던 것 같다. 임용을 준비하면서 합격을 원하는 마음이 워낙 간절하다 보니 '붙었다, 떨어졌다'와 관련된 온갖 단어들이 다 예민하게 다가왔다. 책상에 붙인 메모지가 떨어져도, 심지어 가을에 공원을 지나다 은행잎이 내 머리 위로만 떨어져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그런 시절이었으니. 어느 날 잠에서 깨고 나니 어떤 학교 이름과 종소리가 기억에 남아있었다.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그 학교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실재하고 있는 곳이었다! 내 마음대로, 합격해서 이 학교에 발령받는다는 예지몽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음 발령받은 학교 이름과 자음 모음 단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화장실에 가는 꿈을 여러 번 꾼 적이 있다. 어느 날엔 시원하게 일을 보기도 하고(다행히 실현되지는 않았다ㅎㅎ) 어느 날엔 급한데 일을 보지 못하기도 하는 등 꽤 다양한 내용의 꿈을 꿔본 것 같다. 화장실 관련 꿈 해몽을 보면 대체로 시원하게 일을 보는 게 길몽이고 일을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면 흉몽이라고 한다. 찝찝한 꿈을 꾼 날에는 잠시 입 속에 공기를 불어넣게도 되고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기려나 걱정도 됐지만, 다행히도 꿈이 현실로 이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반면 꿈속에서 시원함을 맛본 날에는 '아싸 길몽이다!' 속으로 외치고 무슨 좋은 일이 생길까 기대해봤지만 안타깝게도 별다른 일 없이 꿈의 유효기간이 지나버리곤 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내 꿈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정말 그런 걸까)




  남편이 읽어주는 해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오징어를 먹는 꿈'을 검색해봤다. 오징어를 사는 꿈은 이익이 발생되어 생활이 안정되고 기쁨을 만끽하게 될 꿈이란다. 물품이나 먹을 것을 장만하게 된다고. 오징어를 보는 꿈은 눈부신 성과를 보게 되고 출세하게 되는 꿈이라고 한다. 오징어를 얻는 꿈은 용돈이 생겨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게 되는 꿈이라 하고, 오징어를 선물하는 꿈은 누군가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게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반면 그냥 오징어를 먹는 꿈은 인간관계에 대한 흉몽으로 가까운 누군가에게 배신당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도 한다. 나는 공돈으로 오징어를 사서 손으로 잡아서 먹고 남은 걸 선물하겠다는 꿈이었으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검색을 마치고 양치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또 꿈을 꾸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고 출세를 하게 된다는 거지? 그럴 만한 부분이 없는데 생각하면서도 뭐가 좋은지 입이 자꾸만 벌어진다. 수많은 단어가 있던 검색창을 닫고 나니 기억하고 싶은 구절만 머릿속에 남았다. 출근하는 발걸음에 맞춰 오징어를 먹는 꿈에 대한 기억도 점차 희미해졌다.


 "이번 주에 로또 사야겠어요. 자기 오징어 먹는 꿈 꿨다면서요."


 그날 밤 자려고 누워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로또를 사야겠다는 말을 한다. 이 남자에게 오징어 꿈의 의미는 '이익' 정도로 정리가 됐나 보다. 자기는 결혼하는 데 행운을 다 써서 힘들 거라는 말로 또 한 번 남편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눈을 감아본다. 오늘은 더 좋은 꿈을 만났으면 좋겠다.


결국 또 마음대로 생각할 거면서


 * 오늘 교생선생님이 보낸 지도안을 확인하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교생선생님이 사용하시는 포털 사이트 닉네임이 '오징어'였다! 세상에. 오징어라는 닉네임의 교생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는 예지몽이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실패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