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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un 10. 2020

추억아, 그대로 거기 있어 주라

20대의 미니홈피 이제 진짜 안녕

 싸이월드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로그인을 시도했다. 아이디는 2000년대 초반 푹 빠져 있었던 MSN 메신저 hotmail. 아이디는 기억이 나는데 비밀번호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밀번호가 틀린 건지, 싸이월드가 없어져서 로그인이 안 되는 건지, 계속 로그인에 실패했다는 메시지만 나왔다. 20대의 추억이 이렇게 사라지는 건가 싶어 순간적으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하긴 어느 댓글에 쓰여있던 말처럼, 싸이월드가 없어질 예정이니 백업을 해놓으라는 말을 이전부터 듣고도 내가 안 한 거니, 게으른 내 모습을 탓해야 하는 걸까.


 로그인에 실패했습니다


 실패했다는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보다가 '싸이월드 클럽'을 눌렀는데 어엇, 로그인이 되어 있다? 나의 싸이월드를 클릭하니 그 시절 미니홈피보다 훨씬 큰, 모니터에 한가득한 낯선 페이지가 나온다. 이게 나의 싸이월드란다. 플래시와 동영상은 재생이 되지 않지만 감사하게도 사진과 다이어리는 아직 남아있었다. 미니홈피에 선명하게 담겨 있던 내 추억은 커진 모니터 안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흐릿해진 채로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싸이월드를 시작했다. 어쩌다 싸이월드라는 곳에 가입을 했는데 학교 친구들 이름이 다 보이는 걸 보고 신기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10대 끝자락의 나. 사춘기의 자아 중심성이 온라인 세계에도 적용되었던 걸까. 머리에 핀을 꽂고 컬러로션을 바르기 시작했던 실제 모습처럼 미니미의 표정과 옷차림 하나하나도 아주 정성스럽게 신중하게 선택했던 나. 별것도 아닌 일로 기분이 낭떠러지에 떨어진 날에는 누구라도 빨리 이 사실을 알아줬으면 싶은 마음에 미니미를 뒷모습으로 돌려놓고 프로필 글씨 색깔을 블루로 바꾸기도 했었다. 


 싸이월드에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남아 있었다. 사진첩에는 수없이 찍어댔던 셀카 중에 만족스러운 것만 골라 뽀샤시 효과까지 넣은 것들, 친구의 싸이월드에 올라온 내 모습 중에 좀 볼 만하다 싶어 스크랩한 것들, 그리고 그 시절 내 주위의 풍경들이 남아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얼굴이 하얗게 나온 내 셀카를 보며 '내가 이렇게 예뻤나?' 생각하다가 스스로에게도 '사진은 실물과 다르다'는 법칙을 적용하며 슬그머니 미소 지어본다. 내 실제 모습을 떠올려 보고 싶은데 죄다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선 사진들만 남아 있으니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런 사진들을 올린 게 다름 아닌 나니까 이게 바로 나의 실제 모습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대학교 3학년 때 블로그에 재미를 들이면서 싸이월드를 잠시 닫아놨던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싸이월드를 떠나는 이유를 '싸이월드는 너무 미니해서'라고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싸이월드는 너무 작기 때문에 내 생각을 담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몇 년 뒤의 나는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다시 싸이월드로 돌아와 신규 교사 시절을 꼼꼼하게도 기록해 놓았더라. 어느덧 그때의 나만큼 나이가 들었을 아이들의 중학교 때 모습이 내 싸이월드 안에 몰래 남아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싸이월드의 검색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소개팅 나가기 전에 싸이월드 검색은 필수였다. 그 사람의 미니홈피 bgm 목록을 열어보며 취향을 파악하고, 전체 공개로 보이는 사진을 찾아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키는 어느 정도인지, 다이어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치밀하게도 살펴봤다.(다 그랬던 거죠? ㅎㅎ) 이 검색 능력은 발령을 받고 더 꽃을 피웠는데, 이름이 특이한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파도를 타다 보면 교우관계를 파악하기 아주 좋았다. 어떤 쪽지 상담보다 싸이월드 탐색이 학급의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더 효과적이었던 그 시절.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대세 sns의 흐름이 변화하는 동안 나의 시간도 많이 흘렀다. 한때 최신 가요를 줄줄 꿰고 있던 나는, 교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에 그 사람들이 남자냐 여자냐고 물어본다. 아이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sns 용어를 못 알아들어서 되묻는 일은 다반사, 이런 나를 아이들은 꽤 나이 든 어른인 듯 바라보며 설명해준다. 매년 신조어를 찾아보기도 하고 10대 아이들과 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금도 쉽지 않고 앞으로는 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지금의 내 시간을 살아야 하니까. 


 더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가 달린 폰을 지금 몇 개째 사용하고 있는 건지 정확히 세기도 어렵지만 다섯 손가락은 훌쩍 넘어갈 것 같다. 이리저리 각도를 조정하고 정성껏 사진을 남겼지만 폰을 바꿈과 동시에 이전 폰의 사진은 서랍 속에만 있을 뿐이다. 다음에 켜서 다시 봐야지 늘 생각은 하지만 서랍에 넣은 폰을 꺼내 전원을 켜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지난 사진을 보지 않을 거라 해도 나는 정성껏 사진을 찍을 것이고 차곡차곡 저장해놓을 것이다. 어딘가에 기억 매개체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일까. 그런 의미에서 싸이월드에 담겨 있는 추억들아, 내가 다시 열어보지 않는다고 해도 그대로 거기 있어 주라.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문을 외우듯 다시 한번 말해본다.  


20대의 어느 겨울, 63 빌딩 전망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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